27년 전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군의 만행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이어졌다. 우리신문사는 그 노력의 자취를 쫓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정기수요시위를 다녀왔다.

 

역사 속 피해자를 위한 행동과 연대에는 기억이 전제된다. 수요시위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징집과 그 피해자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이는 자리다. 아픈 역사를 바로잡기에 앞서 그 상처를 잊지 않으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론장이다.

지난 2015년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맺으며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 결과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을 수행할 명목으로 화해치유재단이 설립됐다. 그러나 피해자가 원치 않은 방식의 섣부른 화해는 그 누구도 치유할 수 없었다. 수요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입을 굳게 다문 평화의 소녀상을 대신해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 반환을 외쳤다.

일본 정부는 ‘성노예(Sexual Slavery)’라는 표현에 대해 지속적으로 항의를 표출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연행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더불어 이미 한국과 일본 정부 간 합의가 이뤄졌으므로 위안부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언급하는 일을 멈추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늦겨울의 찬바람을 뚫고 수요시위에 모인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을 회복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어로 구호를 외치는 군중들 속에서 영어로 이야기로 나누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사진 속에서 리플렛을 들고 있는 사람은 미국 댈러스에서 온 박신민씨, 그 옆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일랜드에서 온 고든 게라티씨이다. 박씨는 “이 이슈에 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한국에 왔는데 마침 정기 집회가 열린다고 해서 참석했다”고 전했다. 고든씨는 한국을 여행하던 도중, 위안부 문제에 관해 친구에게 전해 듣고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대사관을 찾았다. 이어 “운이 좋게도 며칠 후에 열리는 나눔의 집 방문 행사에 초대받았다”며 “이런 피해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조금은 먼 곳에서 달려왔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이 날 시위에는 300명이 참석했다. 참가자들 중에서는 초등학생이 굉장히 많았다. 1323차 수요시위에서 이들은 그저 ‘기특한 아이들’이 아닌 ‘시위 참가자’였다. 그들은 맨 앞에서 목소리를 냈고, 시위 시작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사회자는 행사를 시작하며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혹은 참가 단체를 언급했다. 시위가 진행되면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어우러져 한 목소리를 냈다. 시위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사람들은 플래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초등학생들이 있었다. 수요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학생들 중, 카메라에 포착된 학생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 안에는 ‘수요시위는 계속돼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시위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 왼쪽 구석에서 들리는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학생들은 손수 준비한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고, 다가가 어디서 왔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그들은 시흥 노피곰 논술학원에서 견학 차 시위에 참석했다고 답했다. 이어서 참가한 이유를 묻자 학생들은 일제히 “일본한테 사과 받으려고요”라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이 문제에 관해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짧은 인터뷰를 끝내며 사진을 써도 되겠냐고 묻자 한 학생이 덜컥 “네 쓰셔도 돼요”라고 했다. 끝에 서 있던 친구가“야~”라고 핀잔을 줬고, 곧이어 웃음보가 터졌다.

월드컵북로에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벽화다. 나비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나비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풍선 위에 적힌 ‘평화’, ‘여성’, ‘인권’ 그리고 ‘전쟁반대’는 박물관이 관람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팻말이다. 팻말은 박물관 입구로 향하는 모퉁이를 돌기 전 박물관의 담벼락에 설치돼있다. 크기가 크지 않고 높은 담벼락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눈에 띄는 팻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무 재질의 팻말에 새겨진 나비 한 마리와 박물관의 이름은 충분히 단단하고 견고해 보여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팻말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기억하고 해결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벽화들을 지나 박물관을 향해 걷다보면 건물 벽 한 켠에서 수많은 노란 나비들을 볼 수 있다. 각각의 노란 나비들은 방문객들이 저마다 박물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쓴 것이다. 노란 나비모양 종이에는 ‘절대 잊지 않겠다’, ‘진정한 해방의 날까지 함께 싸우겠노라’,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문구가 가득하다. 노란 나비에 담긴 사람들의 염원이 이미 떠난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여성들에게까지 닿기를 바라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미래세대에게 알림으로써 평화와 인권의 배움터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지금도 만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전시 성폭력문제에 관한 다방면의 전시를 다루고 있으며 수많은 증언과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말할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릴 법한 평화의 소녀상.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내부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녀상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수요시위 1000회차에 제작됐다. 소녀상 어깨의 파랑새는 자유와 평화를 상징한다. 세상을 떠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과 남아있는 할머니들 그리고 시민들을 잇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기도 하다. 소녀상 옆의 의자는 먼저 떠나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표현한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해나갈 미래세대를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년 전 소녀상 훼손 문제부터 최근 홍대 앞 건립을 두고 대학과의 갈등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황까지, 우리의 아픈 역사를 기록한 평화의 소녀상은 아직도 빈 옆자리를 채우지 못한 듯하다.

박물관 내에 있는 추모관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얼굴, 이름, 사망날짜가 새겨진 벽돌과 기록 없이 희생된 피해자들을 위한 검은 벽돌이 한 쪽 벽을 채우고 있다. 벽돌을 마주하면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떠오른다. 추모관 입구에는 꽃이 마련돼 있어 관람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직접 헌화를 할 수 있다. 끝에는 지난 2월 14일 한 명의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 작은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이제 서른 명 뿐이다.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인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그리고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은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다.

 

김민재, 천건호, 박건, 하수민 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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