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듣지 못했던, 듣지 않았던 우리의 이야기

뉴스 스튜디오에 앵커와 함께 낯선 인물이 앉아있다. 앵커는 그녀를 검사라고 소개한다. TV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 믿기 어려웠다. 검찰 내 성추행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1월 29일 한 매체를 통해 전해온 서지현 검사의 고발은 지금 우리 사회에 큰 돌을 던져왔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 정·재계 인사들이 너도나도 #위드유(With You) 혹은 #미 퍼스트(Me first)를 외쳤다. 서 검사의 터전인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은 누리꾼들이 보낸 꽃바구니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그동안 ‘서지현들’을 본 적이 없나요?

말하지 않았을까?
듣지 않았을까?

그 누군가에겐 이 고발 사건이 놀라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일이? 그것도 능력 있고 힘 있는 검사에게? 하며. 서 검사의 폭로는 이렇기에 더 특별하다. 여성은 똑똑하든 안 똑똑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능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젠더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폭로 글을 보며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서 검사가 성추행을 당했지만 바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점. 검찰이라는 ‘조직을 위해’ 서 검사 본인을 희생했던 점. ‘만약에 그 상황에서 내가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이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이라며 끊임없이 자기 검열하는 습관들. 하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의 일은 이미 나와 내 주변인들의 오마주이자 재현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겐 익숙한 것들이었고 만연한 것들이었으니까. 항상 피부로 마주할 수 있지만, 목소리로 내기 전까진 실체로 나타나지 않는 것. 그동안 우리는 말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당신이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던 것일까?

우리 주위에는 서지현들이 만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들에게 주목하지도 그들의 외침을 듣지도 않았다. 그들은 외치지 않았던 것일까? 서 검사의 말마따나 ‘불쾌감을 표현하면 예민하다고 손가락질’ 당하니까. 어느 검찰청 간부의 말대로 ‘여성들이 인정받으려면 술자리에서 친목 차원으로 있었던 일에 대해 예민 떨어서는’ 안 되니까. 우리는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분위기를 ‘어색하지’ 만들지 않게 고민하다가 나서지 못하는 게 일쑤였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 내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성을 보고도 ‘혹시 내가 잘못 본 거였다면 어떡하지?’, ‘나는 왜 하필 오늘 치마를 입고 온 거지?’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뿐이랴. 사람들의 눈은 가해자보다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쏠려있었다. 성폭력 사건에선 어김없이 가해자 이름보다 피해자 이름이 우선했다. 그 ‘사건명’에 내 이름이 회자될까 섣불리 나서지 못하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OO_내_성폭력,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왔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수많은 힐난과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이 사회에서. 서 검사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말한 것과 같이 ‘피해자가 만인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야지만 움직이는 야만 사회’에서 우리는 용기를 내서 계속해서 말해왔다. 그리고 싸웠다. 하지만 ‘한국에는 미투 운동 같은 게 없었죠?’라는 모 시사평론가의 말은 우리의 비명을 너무 쉽게 외면했다. 미투는 언제나 존재했다. 당신이 듣지 않았을 뿐.

#ME TOO를 넘어 #ASK로

서 검사의 고백으로 한국의 미투 운동은 전환점을 맞아 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불러일으켰다. 젠더 위계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목소리가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유명 배우, 문인, 연극·영화계 인사를 향한 고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지와 응원이 결코 한 사람만을 향해서는 안 된다. 이 연대가 용기 있는 개인만을 위한 연대로 이어져선 안 된다. 서 검사는 지난 1월 31일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가 겪은 일 말고 앞으로의 일들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밝혔다. 오늘날 서 검사에게 주어진 관심을 우리는 다른 모든 여성에게 돌려야 한다. 그녀가 검사이든, 아니든.

설령 미투라 외치지 않았다 한들, 그게 말하지 않은 여성들의 잘못인가.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말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나’의 경험을 ‘우리’의 경험으로, 그리고 피해자에게 던지는 질문을 가해자에게 함께 묻는 #ASK 운동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 스스로 안태근 검사 사건(사건의 초점을 성추행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맞추기 위해 이렇게 명명한다.)을 통해 내 주위 서지현들의 외침을 무시하지 않았는지 주변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피하지 않고 스스로 질문해보길 바란다. 피해를 토로하는 이들에게 ‘예민하다’고 눈살 찌푸리진 않았는가.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죄로 역고소 당하는 사례를 보며 ‘꽃뱀’이라고 비난하진 않았는가. 우리가 공범은 아닌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의 서지현과 서지현보다 더 약한 서지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그동안 ‘서지현들’을 본 적이 없나요?

 

글 신은비 기자
god_is_rain@yonsei.ac.kr

<자료사진 JTBC 뉴스, 책 『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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