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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를 부축하던 ‘그 사람’의 이야기우리대학교 이종창 동문을 만나다
  • 김민재 기자
  • 승인 2018.03.02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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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우리대학교 학생회관 앞에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린다. 바로 6월 항쟁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이한열 열사(경영·86)와 그를 부축하는 학생 이종창 동문(도서관학·86)의 모습이 담긴 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문구와 함께 이한열 열사를 부축하는 학생의 모습은 1987년 6월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많은 관심을 모았던 사진인 만큼 이종창씨도 일찍이 세간에 알려져 왔다. 오랫동안 ‘이한열 열사를 부축하던 그 학생’으로 기억되던 이종창씨. 이번에는 한 사람으로서의 이종창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생운동? 빨갱이들 아닌가?’

 

이종창씨가 대학교에서 받은 첫인상은 ‘매움’이었다. 이씨는 “정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최루탄 가스 때문에 눈이 매웠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당시 우리대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데모가 있었다. 전경들이 쏘는 최루탄에 캠퍼스는 온통 연기로 가득했다. 수업을 듣던 강의실 창문을 깨고 최루탄이 날아 들어온 날도 있었다. 최루탄은 사방으로 연기를 내뿜었고, 강의실 옆 화장실은 가스를 씻어내려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이씨는 “시골 촌놈이었던 탓에 휴지도 없고 손수건도 없었다”며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시면서 데모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생활의 시작을 최루탄 가스와 함께한 이씨는 공부에만 열중해 얼른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데모하고 학생운동하는 사람들은 철없는 ‘빨갱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주변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이씨는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유인물을 읽어 보며 사람들을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다. 이내 이씨의 눈에는 그동안 자신이 등졌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실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이씨는 점차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구경만 하던 집회에 합류해서 구호도 한 번 외쳐봤다. 학생회에 가입해 집회도 계획해봤다. 그렇게 이씨는 학생운동에 발을 들였다.

이씨는 누구보다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씨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밀려오는 고민에 잠을 자기란 쉽지 않았다. 막막한 마음에 새어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기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이씨는 학생운동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민주화 운동가 이종창’은 이렇게 첫 걸음을 뗐다.

 

1987.6.9.

 

유난히 탄압이 심한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이씨는 시민들에게 나눠줄 유인물과 플래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있을 전국 단위의 ‘6·10 국민대회 출정식’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크(SOC)조’라는 일종의 사수대를 꾸려서 집회 시작 전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했다. 사수대에 속해 있던 이씨는 시위가 시작되자 전경들이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화염병과 돌을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며 정문 안으로 들어왔다.

정문 맨 오른쪽에 서서 시위를 하던 이씨는 전경들을 피해 뛰어가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이씨의 눈에 아른거린 것이 있었다. 쓰러져 있는 학생이었다. 눈앞에선 전경들이 학교 안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이씨는 이 학생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에 쓰러진 학생을 안고 한참을 올라갔다. 이씨가 옮긴 학생은 다름 아닌 이한열 열사였다. 이씨는 “전경들을 주시하면서 학교 안으로 안고 들어왔다”며 “내가 맨 마지막으로 뛰어 들어갔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를 못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루가스가 걷히자 학생 두 명이 이씨와 이한열 열사를 발견했다. 이한열 열사를 두 학생에게 넘겨주고 이씨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이어 조금 정신이 들자마자 이씨는 다시 집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곧 이씨의 머리에도 돌이 날아들었다. 정신을 잃은 이씨는 중환자실에 5일 동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씨가 퇴원하던 날, 이한열 열사는 눈을 감았다.

 

학생운동, 역사, 그리고 도서관

 

졸업 후 이씨는 조직 사건에 연루돼 약 1년 반 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지냈다. 경찰을 피해 공장에 취직해서 살았다. 그러던 중, 자신을 수배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씨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도서관을 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도서관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곳이 아니었다. 개인 공부를 하는 독서실로 전락해 있었다.

그때 이씨는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에 관해 생각했다. 그는 “역사가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지식과 정보가 알려져야 한다”며 “도서관은 이런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민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지식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힘쓰던 중, 이씨는 우리대학교 도서관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이씨는 최루탄 냄새를 맡던 그곳, 우리대학교에서 20년가량 일했다. 다름 아닌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을 위해서였다.

이씨에게 도서관은 학생운동의 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이씨는 “학생운동을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4·19 혁명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며 “지식과 정보는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해 준다”고 말했다. 1980년대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이 지식과 정보의 해방구 역할을 하면서 시민들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6월 항쟁도 성공했다. 이씨는 당시 대학이 했던 역할을 도서관이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주민 도서관 봉사, 우리대학교 사서를 거쳐 현재 가람도서관 관장으로 재직하기까지 이르렀다.

 

『1987』.. 그 이후

 

사회에 대한, 그리고 역사에 대한 이씨의 열정은 1987년에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 2016년, 이씨는 또 다른 민주화를 위해 촛불을 들었다. 그는 “촛불 시위도 6월 민주 항쟁과 같은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라며 “결국 정치에 관한 시민들의 관심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애정은 청년기와 다를 바 없었지만, 언론에서는 좀체 이씨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동안 인터뷰를 거부해왔던 것이다.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도 우리대학교 학술정보원에서 재직하던 당시 짧은 멘트 하나가 전부였다. 이씨는 “그동안 인터뷰를 거절했던 것은 ‘이종창’이라는 개인이 노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사진 속 자신의 존재에 집중하기보다는 사진이 말해주는 시대상에 집중하고 싶어 했다. 그는 “사진 속에 서 있던 것은 이한열 개인과 이종창 개인이 아니라 그저 민주화 운동가 2명”이라며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이한열 열사 서거 30주년은 이씨에게도 새로운 울림을 줬다.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겠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하기 시작했다. 역사가 올바르게 기억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굳게 먹었지만 그때의 기억을 곱씹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다. 이씨는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뜻으로 활동하던 친구가 운명한 기억이 썩 편한 기억은 아니다”라며 그 이유를 전했다. 이어서 그는 “작년에는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를 붙들고 울기도 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씨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먼저 떠난 이한열 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이씨는 “그때 생각은 잘 안 해요...생각하면 힘들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어느새 붉어진 이씨의 눈시울 속에는 역사의 무게와 개인의 아픔 사이에 놓인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글·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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