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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X Story] 자궁에게 안녕을 묻다, 나의 첫 산부인과 방문기
  • 유채연 기자
  • 승인 2017.12.2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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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아프면 바로 치과에 가는데, 이상하게 성기가 아프면 바로 병원에 가기 망설여진다.
기자의 첫 치과 방문이 네 살이었던 것에 비하면, 첫 산부인과 방문은 스물한 살이었으니 썩 늦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난 2016년부터 무료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이 만 20세 이상으로 확대되면서, 홀수년도 출생인 기자에게도 올 초 한 장의 통지서가 날아왔다. 자궁경부암 검진을 하라는 내용이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칠칠치 못해 병원 신세를 자주 져온 기자로서도 산부인과 경험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단순히 이가 아파서 치과에 가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처음'으로 가는 곳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일명 '굴욕 의자'라 불리는 곳에서 남에게 성기를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 임신은 저주받은 일이 아님에도 기자를 철없는 미혼모로 볼 것 같은 데스크의 시선까지…. 기자의 모든 편견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이 기자를 사로잡았다. 


검진 날짜를 잡았다. 장소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동 학원 근처, 시간은 오후 세 시. 날이 뜨겁다. 병원 초입에서는 은근한 두근거림까지 느껴졌다. 병원 안에는 우리 엄마 또래거나 그보다 더 위 정도로 보이는 환자들이 있었다. 가뜩이나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왔건만, 대기 중인 환자들은 안 보는 척하며 자꾸만 기자에게로 흘깃거리는 시선을 보내왔다. 아 그냥 자격지심일거야, 내 옹졸한 편견일거야, 하며 넘기고 싶었는데, 진짜로 기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의미심장하고도 불쾌한 눈빛을 쏘고들 있더라. 속으로야 '아,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건 아닙니다' 하고 무던한 변명을 했다. 기자가 만약 임신과 관련해 병원을 찾았다면 아마 주눅 들어서 땅만 보고 있었겠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님에도 죄 아닌 죄가 어떻게 각인되는지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중이었다.


첫 방문이라고 하자 데스크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게 했다. 성관계 경험, 피임약 복용 여부, 마지막 생리일 등을 물어봤다. 여의사와 남의사가 있는데 여의사에게 검진받기 위해서는 약 40분을 대기해야 하고, 남의사 검진실에는 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도 했다. 시간도 빠듯했고 대기실에 오래 있기도 싫었지만, 어쨌든 같은 성별에 대한 편안함을 이유로 여의사 대기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기다렸다. 자궁암 검진을 받겠다고 말하고 세포진 종합검사와 초음파, 자궁경부 확대 촬영 등의 절차를 확인한 뒤 다시 그 대기실로 돌아가야 했다. 


검진 전 의사와 잠깐 동안 기자의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생리 주기가 짧고 양이 많으며 생리통이 심하다고 말하자 의사는 검진을 신경 써서 해야겠다는 말을 전했다. 곧바로 검진을 준비했고, 검진실에 딸려있는 작은 탈의실에 들어갔다. 하의를 완전 탈의하고 고무줄 치마를 입으면, 치과 의자만큼이나 아주 아래로 내려가는 의자에 누워 다리를 광각으로 벌려야 한다. 천 하나가 허리 아래쪽의 상황을 차단했고, 기다림의 시간동안 평생을 남에게 보이지 않게 학습된 성기에 대한 교육이 슬슬 기자를 압박했다. 기구들은 매우 불친절해서, 기자의 안으로 자꾸만 차가운 금속성의 물질들, 솔 같은 것들이 예고 없이 들어왔다. 기자는 입술을 질끈 물고 발발 떨었는데, 젤을 바른 초음파 스틱을 마지막으로 검진이 끝나갔다. 비록 초음파를 통해서였지만 기자의 난자, 자궁, 나팔관 같은 것들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 썩 신기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활동하고 있구나,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검진 끝에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했고, 생리통이 심한 것은 자궁 쪽에 용종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한 정도는 아니니 평소처럼 관리를 잘 하면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병원을 찾았는데, 다달이 그렇게 큰 고통을 안기면서도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다행스러웠다.
     
20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산부인과에 방문하는 일은 이상하게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주변에는 생리 불순과 심한 생리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3개월씩이나 생리를 쉬어가도 산부인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이들의 자궁을 쉽게도 집 안에 묶어두더라. 기자 또한 검진과 처방에 목말라있었지만 기사 작성이라는 큰 동력이 없었으면 쉽게 포기했을 거다. 데스크에서의 민감한 질문과 몇몇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고서도 검진 결과가 값졌냐면 물론 그렇다. 생리 불순이든, 질염이든, 임신이든, 내 몸의 건강을 위해 산부인과를 찾는 일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숱한 산부인과 방문으로 그 '자연스러운' 일이 '빈번해질' 내일을 만들어보자.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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