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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연세문화상] 아틀라스

[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가작]

아틀라스

정원석(사학·14)

 

1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매미소리.

 

팔과 다리가 후들거렸다. 언제나 그렇듯 깔딱 고개를 넘어갈 땐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뒤에서 펠리컨이 까악하고 울었다. 자전거 앞바퀴가 계속해서 들렸다. 핸들을 쥐고 있는 두 손을 놓으면 자전거와 짐들이 그대로 굴러 떨어지겠지. 그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돌돌돌돌. 나는 규칙적인 자전거 체인 소리에 맞춰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아기가 으앙하고 울었다. 오늘 오후 6시까지 건담 프라모델을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한다. 장소는 서울역 4번 출구. 나는 자전거의 짐 중에서 프라모델의 위치를 가늠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것은 두 번째 층 가운데에 놓여 있을 것이다. 일주일 간 신경이 많이 갔던 물건이었다. 절대 부서뜨리면 안 된다는 주인의 부탁에 밤마다 아크릴 통 안의 프라모델을 확인하곤 했었다. 건담은 주인이 조립한 그대로 한 손을 펼친 채 위엄 있게 서 있었다. 펼친 손. 뻗어나가는 꿈과 희망. 그렇게 뻗어나가는 꿈과 희망은 다른 짐들과 함께 자전거 위에 단단히 매여 있다.

 

2

 

“엄마 이게 뭐에요?”

나는 책 속의 남자가 이고 있는 커다란 구형(球形)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녀는 재봉틀을 멈춘 채 한참 동안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도 자전거 어딘가에 놓여있을 책. 『그리스 신화 이모저모』. 이건 말이지, 그녀는 남자 위의 구형에 새끼손가락을 가져다댄 채 뜸을 들였다. 이건 ‘세상’이야.

“세상?”

응, 세상. 이건 세상이야. 이 남자는 몸이 엄청나게 큰 거인인데 신들의 왕 제우스의 미움을 받았데. 그래서 세상을 들고 있어야하는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아….”

과연. 남자는 온 몸이 뒤틀린 채 괴로운 표정으로 세상을 떠받치고 있었다. 엄마는 그의 이름이 아틀라스라고 했다. 그녀는 아틀라스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웃어보이고는 빙글 몸을 돌렸다. 돌돌돌돌. 재봉틀이 소리를 내며 다시 돌아갔다.

 

3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허리까지 오는 프라모델을 돌려받은 남자가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보증금 5만원 보관료 5만원. 남자는 프라모델이 들어있는 아크릴 통을 가볍게 두드렸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올라오셔서 숨겨야 했거든요. 딱히 맡길 곳도 없고. 삼십대 초반의 남자는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자신의 프라모델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한 것을 수줍은 듯 이야기했다.

마음에 걸려서일까, 짐에 대해, 짐을 맡기는 이유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손님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먼저 짐에 대해 물어서는 안 된다. 저마다 사정이란 게 있는 거니까. 서울역 비둘기들이 새장 속의 펠리컨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헤어질 시간. 나는 돈을 챙겨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이제 시청 쪽으로 가야한다. 보관기간 한 달, 보증금 5에 보관료 30.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특히 요즘처럼 손님이 귀한 시기에는 더더욱. 또 다시,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매미소리.

 

4

 

영수야. 돌돌돌돌. 응. 팔락. 아빠 식사하셨는지 확인해볼래? 대충 틀어 올린 머리. 바랜 와이셔츠. 두툼한 안경. 우리 엄마. 팔락. 나 책 읽는데. 영수야, 얼른. 돌돌돌돌. 아이 참.

나는 마루를 건너질러 아빠의 방 앞에 서 있었다. 입을 꾹 다문 미닫이문. 선선한 바람. 팔랑이며 무릎에 닿는 사각팬티.

“식탁을 앞에 놔두라니깐.”

나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어느 정도 들렸기를 바라며, 문을 열었다. 드르륵. 아뿔싸. 벌린 입에 이어, 갈 곳을 잃은 총각무에 이어, 바닥에 앉아 밥을 먹는 아빠의 눈.

나는 내달리듯 방으로 돌아왔다.

“식사하셨어?”

지금 먹고 있어. 그래? 엄마는 다시 미싱기를 돌렸다.

 

돌돌돌돌. 어느 날 아빠는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뒤에 빛바랜 책들 몇 권과 허리까지 오는 종이 뭉치들을 싣고. 엄마와 나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었다. 갈 곳을 잃은 아빠의 눈동자. 갈 곳을 잃은 아빠의 자전거.

“…….”

엄마는 말없이 마루에서 일어나 창고로 쓰던 방을 정리했다.

“영수야 잘 있었어?”

나는 또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몇 년간 하늘의 새도 땅의 쥐도 들을 수 없었던, 나를 안고 있던 엄마의 조용한 울음. 아빠는 말없이 짐을 풀었다.

 

5

 

“이게 무엇인가요.”

나는 책 모양의 기계를 받아들고 무심결에 물었다. 기계 주인은 사십대에 접어든, 어딘가 너구리를 닮은 인상의 남자였다.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물건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 아니었나요?”

맞는 말이었다. 업계의 첫 번째 규칙. 물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외부인이 업계의 규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단골손님인가. 마주친 기억이 없는데. 쓰임새를 알 수 없는 검은색 기계와 그보다 짙은 색을 띠는 주인의 눈가가 어쩐지 찜찜하게 느껴졌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고개를 까딱 기울이고는 사람들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멍하게 서 있다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오늘 일은 이걸로 끝이다. 여름의 한 가운데. 골목골목의 뜨거운 바람이 훅하고 불어왔다. 온 몸에서 쉰내가 난다.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매미소리. 뒤에서 아기가 으앙하고 울었다.

 

6

 

글 쓰는 사람. 엄마는 아빠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글은 나도 쓸 수 있는 걸.”

엄마는 따뜻한 눈으로 내 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빠가 쓰는 건, 음, 아빠가 쓰는 건, ‘세상’에 대한 거야.

“세상?”

응, 세상. 나는 아빠의 하얗고 앙상한 팔을 생각했다. 엄마는 가볍게 얼굴을 찡그렸다 웃어 보이고는 유럽 대륙처럼 생긴 원단과 아시아 대륙처럼 생긴 원단을 재봉틀로 이어 붙였다. 과연. 책과 원고지에 둘러싸여 세상을 쓰고 있었던 아빠는, 옷감에 둘러싸여 원단을 이어 붙였던 엄마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무언가 기다리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하염없이 하염없이 글을 쓰고 재봉틀을 돌리고 있었다.

 

7

 

감사합니다. 위층 끝 방의 여자가 아기를 받아들고 살며시 웃었다. 엄마와 닮은 얼굴. 아기 아빠는 내 방 맞은편 방에서 살고 있었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아기 아빠는 대리운전을 끝내고 새벽녘에 돌아와 늦은 저녁일지 이른 아침일지 하는 것을 먹는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는 아기의 볼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아이가 보채지는 않던가요. 네 너무 순해서요. 얼른 집을 구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이가, 좀 더 크는 동안만. 이십대 중반의 여자는 아기에게 하는 말 같기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한 것을 작게 이야기했다. 미싱기 소리가 환청처럼 귀에 맴돌았다.

―어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여자는 앞으로도 집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어떤 기적적인 일에 의해― 집을 구한다 해도 그것은 또 다른 어려움의 시작일 것이다. 멀리서 펠리컨이 ―펠리컨도 여자의 계획을 기적적이라고 생각했을까― 까악하고 울었다.

이상한 것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여자가, 그 때 너무 행복해 보여서.

문득. 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이라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지만. 내가 가진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에 대해서, 자전거에 대해서, 매미에 대해서. 음, 그러니까, 세상에 대해서.

 

8

 

밖으로 나오니 주변이 어두워져 있었다.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는 고시원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형광 빛을 내는 ‘미래고시텔’의 ‘미’자는 눈에 먼지가 들어간 사람 마냥 쉴 새 없이 깜박였다. 어느새 가로등 밑으로 나와 같은 모양의 자전거를 끄는 소년들이 모여들었다.

영수야. 종민이가 손을 흔들었다. 늑대를 닮은 아이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우리들에게 비슷한 냄새가 난다. 땀이 섞인 먼지 냄새. 담배냄새와 매연냄새.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삶의 냄새. 회색의 냄새. 소년들은 자전거를 한쪽으로 세워두고 담배를 나눠 피웠다. 찰칵. 종민이가 자신의 라이터를 자랑스레 꺼내보였다. 야영지 근처에서 폭죽을 파는 종민이는 어디서든 라이터 모으는 것을 좋아했다. 언젠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불꽃축제를 벌일 거야, 하는 종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9

 

소년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업’에 관한 이야기였다. 종로구, 중구, 용산구 모두 손님이 줄어들고 있었다. 사정은 강북과 강서, 강동도 마찬가지여서 지부장 회의에서의 지부장들 역시 처음으로 맞이하는 불황을 팔자눈썹을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도 자전거 위의 짐들은 그 크기가 줄어들어 있었다.

“짐을 전부 팔아 치우고 이곳을 뜨는 건 어떨까?”

무리 중 한 명의 말에 아이들이 조용해졌다. 사실, 본업이 일용직 노가다인 소년들이 많은 이곳에서 부업 삼아하고 있는 ‘자전거 일’을 그만둔다고 생계에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못해도 일 하나를 더 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갈 때까지 잠시 사업을 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터였다. 아마도 모든 소년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짐을 살 사람은, 있을까?”

석희였다. 나와 종민이와 함께 나이가 가장 많은 축에 속하는 석희는 과묵한 성격에 생각이 깊어서 따르는 아이들이 많았다. 석희는 멀찌감치 앉아서 술이 아니라면 생수를 꼴깍꼴깍 마셨다.

석희의 말에 소년들의 시선이 그가 가진 짐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석희의 짐에는 책들이 유난히 많았다.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연도별, 유형별 기출문제집. 검정고시 기출문제집. 공무원 기출문제집. 고시 기출문제집. 한 권 완성. 단기 완성.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 개중에는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는 책들도 많았다.

 

9―1

 

“여기 이 책들, 맡아 줄 수 있어?”

 

옆 방 형의 부탁이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종민이와 언덕 위 고시원에 살았었다. 그곳은 벽이 너무 얇아 차라리 벽이 없는 게 낫겠다고 느껴지던 곳이었는데, 형의 방에서는 언제나 돌돌돌돌. 볼펜 움직이는 소리만 들렸다.

공무원 지방세법. 세무직 공무원 면접가이드. 세법개론 기출문제. ……. 돈에 대해 공부하던 형은 돈이 떨어져서 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다시 오겠다고 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고 했다.

저마다의 사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 뒤, 여전히 형은 오지 않았고,

나는 언덕 위 고시원에 연락처를 남겨두고 이곳으로 왔다.

 

9-2

 

“…….”

석희의 자전거 짐 너머, 담벼락 구석의 또 다른 자전거에 눈이 닿았다. 그곳엔 새장을 꼭대기로 하는 짐들이 자홍색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었다. 새장 속 펠리컨은 부리를 몸에 묻고 잠들어 있었다.

 

“뭐, 방법이 있겠지.”

종민이 정적을 깨고 일어섰다. 다른 소년들도 서둘러 담배꽁초를 땅에 묻고 하나둘 샤워장으로 향했다.

 

후우. 담배 연기가 물색 빛을 내며 조용히 퍼졌다.

간간히 이어지는 매미 소리. 끈적이는 온 몸. 미싱기 소리.

 

“무슨 일 있어?”

석희가 물었다.

“그냥. 날이 더워서 그런가, 조금 지치네.”

“다른 지부도 어렵다지?”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석희가 하얀 연기를 입 밖으로 흘렸다.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나는 석희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맡길 짐이 줄었거나, 또 다른 업체가 생겼거나.”

그렇겠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 그만해야할 때가 온 걸까.”

석희는 나에게 하는 말 같기도, 자신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한 것을 중얼거렸다. 나는 사라지는 담배연기를 눈으로 좇았다. 석희는 나와 함께 ‘자전거 일’을 시작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9―3

 

먼 미래에 이 글을 읽고 있을, ‘자전거 일’에 대해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전거 사업은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일종의 ‘짐 보관 사업’이었다. 우리들에게 짐을 맡길 사람이 있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에게 펠리컨을 맡긴 동물원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많은 짐들을 맡겨 왔다고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짐을 맡기면 나중에 찾지 못할까봐 걱정될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 역시 가졌던 생각이었는데 ―우리도 우리가 얼마나 끈기 있게 짐을 가지고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으므로― 의외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결론지은 것은, ‘짐을 찾지 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에게 짐을 맡긴 이유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맡기는 짐은 어떻게든 그들의 꿈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자신의 짐과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그 후에도 일부러 짐을 찾으러 오지 않거나, 고시원 형이나 동물원 할아버지처럼 짐을 맡겼지만 찾으러 올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일을 하면 할수록, ‘공간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꿈이나 희망을 품는 것이 벅찬 사람들이 짐을 맡기러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을 수 없다면…, 음, 아냐,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서로의 사정을 알기에 보관료도 크게 부를 수가 없었다. 다른 의미로 사업을 그만두어도 큰 지장이 없는 이유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의 아이들이 자전거 사업에 남아있는 것은.

 

“재미있지 않냐?”

종민이 김치를 얹은 라면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공치는 날. 비가 와서 노가다를 하지 않는 날. 그런 날에는 방으로 돌아가 두어 시간 더 자고 오후 아르바이트를 나가지만, 그 날은 잠도 안 오고해서, 라면을 끓였다.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 새벽.

“뭐가?”

“자전거 일.”

…재밌다니 다행이네. 아삭아삭. 물론 짐을 찾으러 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후루룩. 자기 짐을 찾을 때 사람들의 표정이. 후루룩. 표정이? 아삭아삭. 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달까? 후루룩.

 

9-4

 

“뭐, 방법이 있겠지.”

 

나는 일어나 담배꽁초를 땅에 묻었다. 한마디 남은 모기향도 끔벅끔벅 거리다 이내 땅에 떨어졌다.

 

10

 

엄마의 몸이 눈에 뛰게 나빠진 것은 내가 열네 살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전형적인. 끊길 듯 끊이지 않는 기침과, 덜덜거리는 미싱기 소리와, 물색 빛의 엄마와, 어쩐지 우울하고 말수 적은 소년과, 방안에 틀어박힌 아빠가, 책의 한 장면처럼 그 곳에 있었다. 어쩌면, 엄마와, 아빠와, 나는, 그곳에서 그 책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니었는지. ―어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당연히 일어날 일과, 그 다음에 일어날 당연한 일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끝나는 이야기. 첫 장과 마지막 장이 같은 이야기. 그런 이야기의 결말을.

아빠는, 종종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마을 주변을 돌았다. 흙을 닮은 마을 사람들. 넘실대는 갈대밭과 뺨을 스치는 바람. 마른 나뭇가지 냄새가 나는 아빠의 셔츠. 그렇게 아빠는 아빠의 생각에 빠진 채, 나는 나의 생각에 빠진 채, 마을 주변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았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기다리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라도 해도, 딱히 놀랄 것이 없는, 그런 일들을 기다리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딱 한 번, 예외적인 일이 있었다. 엄마와 내가 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아빠의 방에서 환호 섞인 고함이 들렸다. 조만간 방문을 열고 나온 아빠가 마루에서 뛰어내려 폴짝폴짝 뛰었다. 여보 해냈어! 뭐를요? 소설! 소설이 당선됐다구! 저, 정말요? 정말! 어머나! 엄마도 폴짝폴짝. 덩달아 나도 폴짝폴짝. 파란하늘 폴짝폴짝. 세상도 폴짝폴짝.

엄마는 나를 불러 장롱 앞으로 데려가더니 흰 보자기로 싼 돈을 꺼냈다. 영수야. 응. 이 돈으로 떡집에 가서 떡을 해오렴. 이걸루 다? 응. 마을 어른들 드릴 거니까 이걸루 해서 떡 사면 될 거야.

그 후 몇 번, 아빠는 서울을 오가며 책을 다듬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지역 신문에도 아빠의 이름이나 인터뷰 같은 것이 실렸고 마을 사람들도 집 주변을 기웃거리다 밭에서 난 과일이나 음식 같은 것을 집에 놓고 갔다.

나는, 그 즈음부터 부지런히 아빠의 자전거를 탔는데, 바람을 맞으며, 마을 주변을 돌며, 엄마와, 아빠와, 세상이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부지런히 부지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픈 엄마가 걱정되어 그랬을까, 들뜬 아빠가 신경 쓰여 그랬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음속엔 언제나 땅거미가 진 마을의 밥 짓는 연기 같은 것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폴짝폴짝 뛰던 아빠는 몇 달 뒤에, 그러니까 책이 마침내 팔리려던 참에 뛰기를 멈췄다.

표절!

표절! 이라고 어쩐지 호들갑인 신문과, 어쩐지 신나 보이는 세상과, 어쩐지 어쩐지, 하던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건넨 신문엔 아빠의 자전거 뒤에 실려 있던 책들이, 고개 숙인 아빠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

아픈 엄마는 말없이 미싱기를 돌렸다. 나는 또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달이 지나고, 그러니까, 엄마가 죽었다. 같은 곳 같은 자리에서 미싱기를 멈추고 죽었다. 어쩌면, 너무나 전형적인.

며칠 뒤 새벽, 나는 전날 밤 챙겨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불 꺼진 아빠의 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또한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 불 꺼진 엄마의 방과 재봉틀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열여섯 겨울이었다.

 

11

 

불을 끄고 누우면,

 

엄마 생각이 났다. 가슴이 불편해서 돌아누우면 먹먹한 게 조금은 가셨다. 손으로 벽을 쓸었다.

 

어쩐지, 마을의 연기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산 떡이, 물색 담배 연기가, 끔벅끔벅 모기향이, 가슴 속에 탁하고 걸려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몸이 자꾸자꾸 커져서 세상과 자꾸자꾸 가까워지는데, 그 세상을 어떻게 들어야할지 어떻게 대해야할지.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지고 이어지다 어떻게 되는 건지.

 

무너져 내리는 세상을 떠나서 이곳으로 왔는데, 밤이면 밤마다 이 비좁은 방이, 그보다 더 작은 마음이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밤, 그렇게 해결된 것 없이 새벽이 오면, 다시 아무렇지 않게 일을 나갔다.

 

12

 

종민이가 사라졌다. 다음날 오후, 병원에서 일하는 아기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13

 

스탠드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몇 년간 함께 검정고시를 공부하다 합격한 뒤로 이번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내 말에 종민이가 픽 웃었다.

“이젠 가출 청소년도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는고만.”

 

통.

 

당연히. 덜 힘들고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노가다를 하고 자전거를 끌 순 없으니까. 그러니까. 가출 청소년도, 공무원 시험공부를.

 

통-통.

 

스탠드 앞에 앉았지만 책을 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펴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진 지난 몇 주간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대신, 이번에는 책이 아닌 종이 뭉치를 꺼내들었다.

 

통통통.

 

꼴깍. 떨리는 손으로 종이 위에 펜을 갖다 댔다.

 

나는

 

나, 는, 이라고 쓰고 나는,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 한줄기 바람이 일었다.

 

나는 자전거를….

동물원 할아버지에게 펠리컨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글을 썼다. 느껴졌던 건 나 자신이 막연히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뿐. 마음이 일렁거렸다. 처음으로 쓰는 글은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파란색 바다를 뛰어넘어 무언가가, 폭발하듯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펜을 떨어트렸다. 숨이 잦아들길 기다렸다. 통통.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내가 쓴 글을 찬찬히 읽었다. 아주 오랫동안,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그리고, 농어.

 

14

 

농어, 농어라면.

처음으로 주유소 월급을 받은 날, 나는 종민에게 자전거를 사겠다고 했다. 자전거는 왜? 그냥, 타고 싶어서.

 

통. 통.

 

그날 저녁, 월급을 손에 쥐고 시장에 갔을 때 녀석을 마주했다. 통-통. 횟집 앞. 높이가 긴 직육면체의 물통 속. 물통의 대각선 길이만한 커다란 물고기가. 통. 통. 실제로 그런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머리를 구석에 댄 채 계속해서 계속해서 바닥을 머리로 박아대고 있었다. 따라온 종민이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으 불쌍해. 저렇게 좁은 곳에….”

통통. 빠르게 지나쳤지만 그 모습이, 그 소리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그건, 동정이 아니었다. 그건, 어떤, 경외감이었다. 그래서.

 

그거 사야겠어. 나는 자전거 집 앞에서 횟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앞에 있는 제일 큰 물고기, 제가 살게요.”

제일 큰 거? 농어? 횟집 주인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다.

 

농어. 네 이름이 농어였구나. 통-통. 회로 먹게? 좀 많을 텐데. 아니요. 산 채로 사겠습니다. 통-통. 횟집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던 종민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길로 종민이의 자전거에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고정시키고―처음으로 ‘짐’이란 걸 싣는 순간이었다―물과 농어를 담아 시장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하려고. 종민이 낑낑거리며 물었다. 풀어줘야지. 어디에? 강에. ……이거 바닷물고기래. ……소금기를 찾아 바다로 갈 거야.

 

나는 시장 앞 문구점에서 멈춰 섰다. 뭐해. 얘 풀어준다며. 잠깐만. 나는 농어를 사고 남은 돈으로 원고지와 종이와 펜 한 자루를 샀다. 자전거를 사면 꼭 사고 싶었던.

 

“종이랑 펜은 왜?”

“그냥, 사고 싶어서.”

 

그날 밤, 낑낑대며 한강에 도착한 우리는 강에다 녀석을 풀어주었다. 움직임이 없던 농어는 꿈틀, 하더니 물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자전거는, 안 살거야? 이마의 구슬땀을 훔치며 종민이 물었다. 나는 사라지는 농어를 좇으며 말했다. 다음 달에. 다음 달에 살 거야. ……그래. 그때도 같이 가자.

 

15

 

종민이가 사라진 날 밤, 한 아이가 풀이 죽은 채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와 종민의 자전거를 함께 끌고 들어왔다.

 

종민이는? 잘 모르겠어요. 사라졌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저녁에 용산에서 마주쳤는데, 갑자기 자전거 좀 맡아 달라 그랬어요. 알아볼게 있다면서. 무슨 일이지 하면서 기다렸는데,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연락도 안 되고…. 숙소로 바로 올 줄 알고 왔는데, 형 아직 안 왔어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응 아직 안 왔어. 뭔가 이상한 건 없었어? 음, 누구를 따라가는 것 같았어요. 아, 그리고 손에 검은색 기계 같은 걸 들고 있었어요. 네모난 거. 종민이가? 네. 나는 무엇인가 생각나 자전거에서 기계를 가져왔다. 혹시 이렇게 생겼어? 어라, 네, 그렇게 생겼어요. 근데 형 잠깐만. 나도 색깔은 다른데 그렇게 생긴 게 있거든? 아이는 짐을 뒤적거리더니 회색의, 똑같이 생긴 기계를 꺼내 들었다.

이상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물어보자 소년들은 신기해하면서 자신도 비슷한 모양의 기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순간, 짙은 눈가의, 너구리를 닮은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들켰구먼.”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기계에서, 이런, 들켰구먼, 이라는 소리가 났다.

 

16

 

“뭐하고 있어?”

식당 옆, 창고로 쓰던 공간을 석희와 종민이 치우고 있었다.

“아, 이거?”

종민이 책상 위에 스탠드를 연결하며 대답했다.

“애들 독서실 만들어 주려고.”

“독서실?”

“응. 우리 검정고시 합격했다는 거 듣고 자극받은 애들이 있어서. 처음부터 혼자서 공부하면 어렵잖아. 좀 가르쳐 주려구.”

“고시원 주인도 웬일로 별 말 없더라. 전기 아끼라는 말 말고는.”

석희가 옅게 웃었다.

 

“어떻게,”

종민이 코드 선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잘돼 가?”

“으응. 뭐, 그냥.”

“뭐야. 대답이 시원찮네.”

종민이 스위치를 누르자 스탠드 불이 반짝 켜졌다.

“완성.”

종민과 석희가 씩 웃었다.

 

“영수야.”

종민이가 식당을 빠져나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왜?”

“너도 하고 싶은 거 해. 공무원 시험, 네가 하고 싶었던 거 아니잖아.”

“…….”

 

종민의 말에 뜬금없게도, 어렸을 적 보았던 한 거인의 찡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17

 

병원에서 그를 보았다는 아이 엄마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택시를 탔다. 나는 어제 저녁 기계에서 나온 말을 떠올렸다.

 

기계: 생각보다 일찍 들켜버렸군. 어쩔 수 없지. 거기 녀석들은 들어라. 한 번만 이야기할 테니 잘 듣도록. 내일 오후 6시까지 너희들의 자전거와 짐 모두를 가지고 용산구 xx동 xx단지 앞 xx공장으로 와라. 어딘지 알겠지? 너희들에게 썩 괜찮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 기계도 모두 챙겨서 오도록. 참, 그 라이터 들고 다니던 녀석 일은 유감이야. 그럼.

 

라이터라면. 그런데 유감이라니. 너구리와 종민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병원 앞에서 내려 안으로 달려 들어가자 두아기 엄마가 초조해하며 서 있었다.

“종민이는요?”

“저, 저기 응급환자실에 있어요.”

어수선한 분위기의 병실 구석. 종민이가 누워 있었다. 몸의 이곳저곳에 붕대와 반창고가 감겨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자는 듯 누워 있는 종민의 얼굴이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종민아. 나 영수야. 내 말 들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종민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뭐야, 너 괜찮아?”

“안 괜찮지. 나 좀 일으켜 세워주라.”

종민이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갈아입는 것을 ‘이게 무슨 일인가’ 하며 바라보는데 그가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영수야. 너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 읽어봤어? 읽어봤지. ‘고도’라는 사람 기다리는 이야기 아니야? 응 맞아. 나는 그 책을 읽기 전까지 그 고도가 해발고도 할 때 그 ‘고도(高度)’인 줄 알았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힘으로 나는 새처럼 어떤 높이를 기다리는, 세상에 나갈 최고의 순간을 기다리는, 그런 이야긴 줄 알았던 거지.

 

…갑자기 왜 그 얘기를 하는 건데?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옷을 갈아입은 종민이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 ‘고도’가 찾아 온 것 같다.”

 

18

 

내가 오기 전, 그는 아이들과의 전화로 어젯밤의 일을 들어 알고 있었다. 나는 너구리의 말대로 자전거를 가지러 가면서 종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계 주인이 하도 수상해서 뒤를 밟았지. 그 녀석, 엄청 큰 창고에 ‘짐’들을 쑤셔 넣고 있었어. 아무튼, 뭐하냐고 물어보니까, 뻔뻔한 놈, 자기도 짐 보관 사업을 시작했데. 그럼 우리한테 왜 기계를 맡긴 건데? 그러니까. 나도 똑같이 물었지. 그 때 기계를 들고 있는 게 아니었는데. 그놈, 갑자기 뒷걸음질 치더니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기계가 터진 거야. 난 떼굴떼굴 구르고. 구급차 오고. 잠깐만. 그러면 그 기계, 위험한 거면 전부 치워야 하는 거 아니야? 놀란 나와 다르게 종민이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 보였다. 아니. 그 녀석 어차피 기계로 우리를 도청하고 있었어. 애들 말 들어보니까 위치추적도 되는 것 같고. 일단, 그 녀석 말대로 공장으로 가자. 애들은 먼저 출발한 거지? 어, 응.

 

고시원 앞에 도착했다.

“영수야.”

공장으로 가기 전, 그가 다시 나를 불렀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오늘 일이 어떻게 되던, 그 다음부턴 너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그만 미안해하고…. 그 대상이 누가 됐든.”

 

말을 마친 종민이 앞서서 자전거를 몰았다. 그의 자전거가 뒤뚱뒤뚱 움직였다. ……. 나는 따라서 자전거를 움직였다. 뒤에서 펠리컨이 까악하고 울었다.

 

19

 

약속 장소인 공장 앞에는, 원래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넓어서 마치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광활한 공터가 있었고,

 

그 중심에 소년들과 확성기를 손에 쥔 남자가 서있었다. 석희는 보이지 않았다.

 

“여어, 네가 중부 지부장 맞지?”

역시 너구리였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확성기에 입을 대고 말했다.

“자, 이제 올 사람들도 다 온 것 같으니 내 말을 전하겠다. 먼저 이거 한 장씩들 받아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건 계약서다. 자전거 사업 그만두고 그 일을 전부 나에게 넘긴다는.”

소년들에게 동요가 일었다.

“아아. 너무 걱정하진 마. 돈은 넉넉히 챙겨 줄 테니까. 사실 너희들, 요즘에 일 그만둘 생각도 했었잖아.”

 

그의 뒤로, 멀리 떨어진 곳에 커다란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야. 근처에 내가 새로 운영하는 공장이 있다. 너희같이 힘쓰는 애들이 필요해. 숙식제공에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울 수 있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시작할 기회라구.”

“……이유가 뭐야?”

종민이었다.

“이유라니?”

“이렇게까지 하는 거,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아. 그 이유를 묻는 거구나. 당연한 거 아니야? 이게 되거든.”

너구리는 손을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이젠 돈 많은 사람들이 가출 청소년이 하는 일까지 빼았는고만.”

“…중부지역을 접수하면 다른 지역에도 같은 사업을 진행할거야. 서울의 모든 짐을 한 사람이 관리한다, 이거, 멋지지 않아?”

“……그 무게는, 감당할 수 있고?”

“…뭐?”

“아니야. 혼잣말한 거야.”

“아무튼, 자, 어서 나오라구.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어. 어차피 너희가 그만두지 않더라도 이 사업, 내가 잡게 되어있어. 가격도 더 싸지, 더 안전하지. 물론, 다시 비싸지겠지만.”

“…뻔뻔하군.”

종민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어쩌면, 아니 확실히, 남자의 말이 맞았다. 정말, 이번이 일을 그만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아이들이 자전거 사업에 남아있는 저마다의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이 일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먹고 살아보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새 형이 되고 무리의 장으로서 있게 되었지만, 아이들만큼은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섰으면 했다. 짐에 눌리고 눌리다 연기처럼 사라질까봐. 어쩌면, 어쩌면.

 

엄마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엄마에게 새로운 일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조금 더 꿈에 가까운, 조금은 덜 현실적인, 선택할 수 있는, 그 무게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빠라면.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빠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꿈을 좇다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그래서 이미 많은 현실을 잃어버렸지만, 다시 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확성기가 꺼진 후의 적막. 그 적막이 강물처럼 밀려드는 찰나.

 

“우린.”

 

통―통.

 

“우린 이 일이 좋아.”

은채였다.

“맞아. 이건 우리가 선택한 일이었어.”

재희였다.

“나도야.” “그래 맞아.”

동희, 경호, 정우, 영옥, …, 그러니까, 모든 아이들이었다.

 

통통통.

 

그리고 ―나만큼이나―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반응에 너구리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너, 너희들! 너희들도 꿈은 있을 거 아냐. 그, 그래. 남들처럼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남들 짐만 옮기다 살래. 응. 꿈을 가지라구. 내가 도와준다니까.”

 

또 다시 찾아온 적막. 그 적막이 바다처럼 밀려드는 찰나.

 

“이젠.”

멀찍이서 석희가 걸어오고 있었다. 돌돌돌돌. 언제나처럼 자전거와 함께.

“이젠, 이게 우리들의 꿈이야.”

 

“맞아.” “맞아요.” “맞아.” “맞습니다.” “맞아요.”

석희의 뒤로, 강북, 강서, 강동의 지부장을 필두로 수 없이 많은 소년들이 맞아, 맞아요, 를 외치며 끝없이, 끝없이 이어져 넓고 넓은 공터를 가득 채워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 없이 많은 자전거와 그 위의 짐들을 보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이젠 정말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공터를 마저 채우고 있었고,

 

그 중심에 나와 너구리가 서 있었다.

 

통통통통.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이런.”

너구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확성기를 들었다. 너, 너희들이, 이런다고 이, 이런 영화적인 연출을 한다고 해서, 뭐, 뭔가 바꿀 수 있을 것 같나? 마, 말했지만 나한테 고객들이 몰리는 건 시간문제라고.

흥분한 너구리의 말은 점점 빨라졌다. 바보 같은! 이런 기회를 져버려? 그래, 차라리 잘됐어. 다들 돌아가라구. 머릿수로 밀어붙이겠다? 어, 어, 밀치지 말라구. 이거 보여? 나 지금 경찰서에 전화할거야. 너희들이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구리는, 하여튼 다음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뭐? 이런 일이 꿈이라고? 되지도 않는 소리! 그런 걸 꿈이라고 가지고 있으니 너희가 여태까지 그 모양인거야. 이것저것 안 되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어, 어, 나 때리려구? 그 기계, 폭탄인거 몰랐어? 가만히 있는 게 좋을 텐데? 뭐, 그런 눈으로 보면 어쩔 건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이기는 건 나야. 다들 꺼지라고. ―어떤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너희들은 결국….

그 순간, 모두가 입을 떡하고 벌렸다.

너구리 뒤에서, 살금살금 걸어오던 펠리컨이 ―까악하고 우는 대신― 입을 쩍하고 벌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가 입을 닫자, 너구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구리는, 그러니까 펠리컨의 입 안에 있었다.

 

그리고 펄럭.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 첫 번째 짐이자 새였던 펠리컨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통-통-통-통-통.

 

그날, 공터의 모든 사람들은 펠리컨이 날아오르는 것을 목격하며, 아무튼 어떻게든 너구리를 먹은 새가 점점이 작아지는 것을 말없이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리고,

새가 없어진 그 곳엔 늦은 오후의 오렌지색 노을과, 파란색 하늘과, 바닐라색 구름이 몽실 떠있었고,

 

그 아래엔,

끊길 듯 끊어지지 않는 매미 소리와, 프라모델 주인과, 으앙하는 아기와, 병원에서 일하는 아기 엄마와, 대리 운전하는 아기 아빠와, 고시원 주인과, 다시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한 고시원 형과, 횟집 아저씨와, 나에게 펠리컨을 맡긴 동물원 할아버지와, 묵묵히 자전거를 끄는 석희와, 이런 상황에 불꽃놀이가 빠질 수 없다는 종민이와, 수없이 많은 소년들과, 수없이 많은 물건 주인들과, 수없이 많은 자전거와, 그 위의 이루지 못한 꿈과, 이루고 있는 꿈과, 이루게 될 꿈과, 누군가를 위한 꿈과, 나를 위한 꿈과, 모두를 위한 꿈이 있었고,

 

그 중심에 내가 서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숨이 멎을 듯한 광경에 정말 숨이 멎었다고 생각한 순간.

 

통.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수없이 많은 ‘무언가’가 마침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파란색 바다를 뛰어넘어, 마을의 밥 짓는 연기를 뛰어넘어, 엄마의 심부름으로 산 떡을 뛰어넘어, 물색 담배연기를 뛰어넘어, 끔벅끔벅 모기향을 뛰어넘어, 아니 그 모든 것을 폭파하며 터져 나왔다.

그것은, 그것은 농어. 수만 마리의 황금빛 농어. 농어들이, 꽉 막힌 가슴을 뚫고 하늘로 하늘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하늘로 뻗어간 농어는 햇살에 잔잔히 부서져 지상의 ―그래, 그 때 그 거인― 모든 아틀라스를 비추었고, 그렇게 나는, 깨끗하게 뚫린 가슴으로, 실로 오랜만에, 먼지 섞인 서울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었다.

“뭐야, 너 우냐?”

종민이었다.

“울긴. 눈에 뭐가 들어가서.”

 

20

 

그렇게, 우리의 ‘고도’는 일단락되었다.

 

지는 노을. 자전거를 타고 뒤뚱뒤뚱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길, 종민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돌돌돌돌. 종민의 얼굴이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종민아. 돌돌돌돌. 응. 나, 글이 쓰고 싶었나 봐. 글? 응, 글. 돌돌돌돌. 그날, 종이랑 펜을 사기 전부터, 농어를 보기 전부터, 음, 서울에 오기 전부터, 자전거를 처음 탈 때부터, 아빠 방에 들어갈 때부터,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말이야. 돌돌돌돌. ……그렇게 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았데? 돌돌돌돌. ……‘고도’를 기다린 거지.

 

21

 

다음날 새벽, 전날 밤 챙겨둔 가방을 메고 나는 고시원을 나왔다.

“돌아올 거지?”

문 앞에 석희와 종민이 내 자전거를 세워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짐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위가 한풀 꺾여 아침 공기가 선선했다. 나는,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아 고시원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럼, 가 볼까.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돌돌돌돌. 잠시 자전거의 관성에 몸을 실었다 다시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관성. 다시 힘차게. 다시 힘차게. 자전거에 속도가 붙고 있었다. 웃음이 났다. 다시 힘차게.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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