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관심’ 앞에 사라진 개인의 프라이버시

정준식 (언홍영·16)

며칠 전,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이국종 교수를 ‘인권 테러범’이라는 과격한 표현을 사용해 가며 비판한 것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김종대 의원은 이국종 의원이 판문점에서 귀순한 북한 병사의 건강상태를 브리핑하며 ‘장에서 기생충이 수없이 발견되었다’거나 ‘옥수수가 가득 차 있었다’ 등 민감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브리핑한 것이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국종 교수는 ‘브리핑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줄 몰랐다’ 며 당혹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인터넷 여론은 이국종 교수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발언 직후, 김종대 의원의 페이스북과 정의당 게시판에는 비난 댓글이 폭주했다. 심지어 ‘(귀순 병사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드러난 게 싫은 게 아니냐’ 라며 색깔론을 씌우려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김종대 의원의 발언이 비난에 가까운 어조였기에 물의를 빚었지만, 필자는 그의 비판이 충분히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국종 교수의 브리핑으로 인해 환자가 감추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그의 신체적 특이사항과 기호까지 전부 공개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감추고 싶은 자신만의 사생활이 있다. 그것이 남에게 이해받기 힘든 종류의 취미일 수도 있고, 성 정체성이나 본인의 신체적 비밀일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서,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내과에 다녀왔는데 본인의 몸에 촌충이 있어서 기생충 약을 일정 기간 복용하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해 보자. 당장 다음날부터 약을 먹는데 친구들이 그게 무슨 약이냐고 물어본다면, 여러분은 선뜻 ‘나 기생충 있어서 약 먹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필자는 그럴 용기가 없어 감기약이라 둘러댈 것이다. 아픈 게 잘못은 아니지만, 때로는 숨기고 싶은 질병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의료인들은 환자의 상태에 대해 세세하거나 부수적인 정보는 환자와 보호자에게만 알려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국종 교수는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에서 ‘기생충 다량 검출’ 이나 ‘옥수수가 나왔다’ 등의 민감한 정보는 물론, 환자의 건강 상태와는 크게 상관없는 특정 콘텐츠에 대한 개인적 선호까지 언론에 직접 노출했다. 보호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해야 할 정보를 언론에까지 제공한 것이다.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해 고민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인지, 다소 경솔한 행보였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 이러한 일련의 문제를 전부 이국종 교수의 책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이국종 교수보다 언론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다. 이국종 교수는 이후 있었던 3차 브리핑에서 환자와 관련한 가십거리에만 집착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더 이상 환자 팔이 안 한다. 여러분 북한군 때문에 오신 거죠? 환자 괜찮을 거다. 안 죽을 거다.”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언론이 귀순 병사와 관련한 가십거리에 얼마나 집착해 왔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번 북한 귀순 병사 사건은 취재 대상의 프라이버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제성에만 집착하는 한국 언론의 옐로 저널리즘적 행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언론은 이번 사건 관련 보도에서 사건의 원인이나 환자의 상태 경과에 대한 정보 대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정보를 주로 수집하고 보도했다. 게다가, 그로 인해 취재원인 이국종 교수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지만, 이에 대해 책임지거나 사과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귀순한 병사는 그저 북한 체제에서 더 살기 힘들어 목숨을 걸고 내려온 한 개인일 뿐이다. 언론에 의해 속속들이 파헤쳐져 구경거리로 전락해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국민적 관심의 대상’ 이나 ‘공인’이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보도 행태가 정당화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저 새로운 삶을 찾아 사선을 넘어온 한 개인이 언론에 의해 사생활을 박탈당한 삶을 살아간다면 이는 개인에게 더 큰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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