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심사평

정명교
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좋은 시들이 많았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해마다 투고작들의 기교가 복잡해진다. 독서 인구의 비율이 줄어들고 작품을 읽기보다 조각구절을 읽는 경향이 심해지는 문화적 정황 속에서 이런 기교화 현상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우선은 개성적 표현의 욕구가 점증해왔다는 점을 가리킬 것이다. 그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소통적 맥락을 긴밀하게 구축하는 일이다. 그게 부족하면 여운 없는 아우성이 되어 소음의 대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강새봄의 「반사」, 오세원의 「광어스토리」, 이유정의 「적이 없다」, 조현지의 「방어」, 지희진의 「살리는 마라톤」 , 한두희의 「비누에게」는 독특한 언어감각을 보여주었다. 공감의 확보를 위해 좀 더 갈고 닦길 바란다. 신민영의 「사랑에 관한 짧은 고찰」, 안혜림의 「축척을 좁히다」, 이성환의 「그림」, 임현경의 「휴양」, 탁수연의 「교회 첨탑은 일곱 시마다 종을 친다」는 자기만의 표현을 짜임새 있게 자았다. 그러나 그런 뜨개질이 정말 필요했는지에 대한 호소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이건희의 「숲, 생태계」는 인간세계를 위협과 공포가 지배하는 곳으로 파악하고 그런 인식을 환경의 파괴라는 지구적 상황과 조응시켰다. 그러다 보니 언어가 돌발적이고 표현이 강하다.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아 설득력이 약한 흠이 있다. 박소영의 「서시(恕詩)」역시 태생과 생장의 시간을 억압과 굴종의 과정으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부정적 깨달음으로 이루어진 성장의 과정을 맞세우고 있다. 존재와 인식이라는 두 줄기의 동시적 제시는 시적 긴장을 형성한다. 다만 표현들이 감각적이기보다 관념적이다. 윤종환의 「너무도 잘 익은」은 계란이 프라이로 요리되는 과정을 의연한 존재의 장렬한 최후로 은유한 재미있는 시다. 묘사가 매우 차분하고 사실적이어서 실감을 준다. 황윤상의 「해감」은 해감물에 담긴 조개에 죽음에 이르는 감옥에 갇힌 수인의 상황을 실어 그 심정의 미묘한 변조를 꼼꼼히 묘사하였다. 묘사의 치밀함 덕분에 비유체가 환기하는 수인의 마음이 긴박하게 독자에게로 전이된다.

심사자는 「너무도 잘 익은」과 「해감」을 두고 오래 망설였다. 전자는 잘 짜여졌으나 시의 문면 이상을 말하고 있지 않다. 후자는 시의 사건을 통해 현실에 대한 성찰을 환기하지만 지나친 기교들이 거슬렸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대학생문학에겐 실험성에 더 큰 비중이 실린다고 판단하였다. 「해감」을 당선작으로 정하며 두 사람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둘의 문학적 가능성은 공히 두텁다고 할 것이다.

 

[박영준 문학상-소설분야] 심사평

신형기
우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0편의 응모작 가운데 다시 눈여겨 볼 만했던 것은 [아틀라스]와 [숨, 쉬다]였다. 그 가운데 [아틀라스]를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선정했다.

[아틀라스]는 우화적 구조를 세워냈다는 점에서 이채로웠다. 하늘을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 형벌을 받은 아틀라스의 신화를 바탕으로, 글쓰기라는 행위를 ‘세상을 들고 있어야 하는’형벌이자 그렇기에 내면에서부터 요구되는 회피할 수 없는 책무로 본 점 역시 진부하지만 진지했다. 소설이 비춘 자전거 소년들이 남들이 보관하지 못하는 꿈과 희망을 대신 맡아줌으로써 힘겹게‘무너지는 삶—세상’을 받쳐주고 있었던 것이라면 그들은 이미 아틀라스이고 작가였던 셈이다. 그러나 스스로 출사표를 던진 이 소설을 굳이 가작으로 내린 이유의 하나는 서술이 일방적이고 빈약해서 이야기의 짜임이 위태롭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들메끈을 잘 조여야 긴 여정에 나설 수 있는 법이다.

[숨, 쉬다]는 ‘예쁘다’라는 인정이 진입의 조건이면서 그런 만큼 훼손과 유린의 신호가 되는 현실에 대한 여성주의적 분노를 표했다. 소설 속의 희생자가 남성적 폭력에 대한 분노를 새기는 길로 일종의 감정적 자해를 선택한 점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물뿐 아니라 서술자까지 모노톤의 감정에 빠져 형상들의 의미 있는 복합적 관계들을 조성해내지 못하고 이야기를 단조롭게 만든다면 이는 글쓰기의 전략으로선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여타 응모작들에 대해서 역시 대체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아쉬웠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야말로 단편(斷片)을 제시하는 데 그친 경우가 여럿이었다. 이야기의 힘도 공력을 쌓아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정진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오화섭 문학상-희곡분야] 심사평

윤민우
우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올해도 작년처럼 희곡 부문에는 세 편밖에 응모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 중 「그들의 방」은 문체의 정교함이 엿보이지만, 대학생활에 겪는 공허함의 반복이라는 흔한 주제에 머물러 있다. 「요적」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수십 년이 지난 시기를 병치하는 점에서 조금 더 복잡한 플롯을 선보이고 있으나, 70년대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남북관계에 천착하는 수준에서 별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이런 소재에서 벗어나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니나, 글쓰기를 위해 선택한 상황과 마주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인식이 선명해질 때까지 사유를 과감하고 집요하게 밀고 가 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Otroki」의 전체 주제는 탐욕, 음모, 복수, 그리고 모성애와 부성애를 위반하는 이기적 동기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주된 줄거리가 치정(癡情) 관계로 모아지고 끝맺음한다는 점에서 글쓴이가 의도한 주제의식을 고양시키는 원동력이 어느 순간 풀려버린 듯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얽힌 관계를 형성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동동기가 완벽히 해명되지는 않는다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과 물상의 디테일에 대한 세심한 배려, 등장인물에게 주어진 뚜렷한 개별적 성격, 흔치 않은 사유에 기반한 대사 내용의 강점이 이런 약점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화와 낯선 역사적 인물에의 연구에서 비롯된 대담한 인유(引喩), 극중에 등장하는 문제의 그림에 관한 다각도의 해설 시도 등의 요소가 이 작품이 가지는 해석의 잠재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어린 대학생이 이 정도로 어른스런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으며, 이를 세심하고도 대담하게 구상화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나 집중력이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Otroki」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큰 불만이 없다. 글쓴이에게 축하해 마지 않으며, 기왕이면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나서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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