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의 감독 이창재를 인터뷰하다

지난 5월 개봉한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손익분기점 20만 명 규모의 저예산으로 18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대성공을 이끈 주역은 바로 이창재 감독이다. 추위가 완연하던 지난 11월 23일, 이 감독이 14년째 교수로 재직 중인 중앙대 교수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선택 끝에서 만난 영화

이 감독은 대학 시절 군대를 제대하고 항상 새벽 다섯 시 반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 감독은 법학을 전공했지만 정작 법학 공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내키지 않던 전공 공부를 한 뒤, 그의 관심사였던 문학, 한시, 역사를 공부하고 밤이 돼서야 도서관을 빠져 나와 술을 마시곤 했다. 이 감독은 “사학과를 가고 싶어서 다니던 공대를 그만뒀는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법대로 진학했다”라고 말했다. 한때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법학 공부를 했던 이 감독의 꿈은 사람들이 흔히 그리는 ‘법조인’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내겐 사법고시를 패스한 선배들이 말하는 ‘탄탄한 미래’가 내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배들에게서 원치 않는 미래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 감독의 삶의 경로는 바뀌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언론사,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이 감독은 그가 재직 중이던 광고회사가 만든 케이블 TV의 다큐멘터리 PD를 맡게 됐다. 영상 제작에 문외한이던 그는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고 이른 나이에 팀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감독은 “팀장이 되고 나서 팀장실 옆을 보니 늘어선 임원실이 보였다”며 “거기서 법대 선배들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임원들의 회의에는 돈, 시청률 문제밖에 없더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 때 이 감독은 영화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감독에게 영화는 처음 만난 난제 같은 것이었다. 이 감독은 “영화는 한 사람에게 스토리텔링과 같은 인문학, 프레이밍 같은 미학과 더불어 기술까지 요구하기에 그만큼 어려운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결국 손에 잡히는 미래 대신 손에 쥘 수 없는 영화를 택했다.

삶에서 출발한 그의 작품들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하기 전 이 감독은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했다. 무당의 삶을 조명한 『사이에서』, 비구니의 수행을 담은 『길 위에서』, 호스피스 병동의 일상을 기록한 『목숨』이 그것이다. 이 감독은 “비록 세 편 모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내 가치가 투영된 영화들이기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세 영화를 통해 이 감독은 간극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신과 인간, 성(聖)과 속(俗), 삶과 죽음. 이 간극에 서 있는 이들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 감독은 “간극에 서 있는 사람들은 삶의 가치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극단과 마주하며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호스피스에서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환자의 삶에 대한 고찰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고찰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가치가 투영된 삶은 ‘실존’이고, 그렇지 못한 삶은 ‘생존’이라는 것이 이 감독의 생각이었다. 이 감독은 세 편의 영화에서 ‘실존하는 삶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생존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 감독의 ‘간극 3부작’과 『노무현입니다』는 언뜻 보면 다른 감독의 작품처럼 보인다. 간극에 서 있는 삶을 파고들어 이를 직접 촬영한 전작들과는 달리 『노무현입니다』는 이미 촬영된 영상을 사용했다. 극적인 편집, 화려한 CG효과도 이 영화에서 처음 시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이 몰두했던 생존과 실존의 문제는 ‘인간 노무현’의 삶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그가 바라본 노무현은 항상 실존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이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럴 때마다 이 감독은 “글쎄요. 뭘까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노무현을 ‘업적이 뛰어난 대통령’이라 정의하지 않았다. 이 감독이 정의한 노무현은 ‘가치지향적인 사람’이었다. 이 감독은 “노무현은 가시적인 업적에 치중하기 보다는 사회 정의라는 가치의 씨앗을 사회 곳곳에 심어놓았다”며 “설령 그 꽃이 자신의 임기 내에 피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가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길 소망했다”라고 덧붙였다. 

‘선생(先生) 이창재’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지만 동시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하다. 14년 동안 학생들에게 영화학을 가르치면서 반대로 그들에게 배운 것도 많다. 그는 교수라는 호칭보다 선생이라는 호칭이 좋다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내 경험을 전달하는 역할이고, 오히려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매년 같은 수업을 개설해도 매번 다른 질문을 받곤 한다”며 “학생들의 다양성이 선생인 내게도 굉장히 큰 자극을 준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감독은 작은 규모의 강의를 개설할 때마다  학생들 개개인의 개성을 발견하기 위해 학생들과 꼭 한 시간씩 면담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시나리오가 좋은 시나리오인지 가르쳐주는 것보다는  개개인의 개성을 발견하고 이를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다”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 감독은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학생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이 감독은 우선 자기중심부터 찾기를 권했다. 이 감독이 말한 자기중심은 그가 항상 고민해왔던 ‘실존’과 ‘생존’, 그 삶의 가치와 관련 있었다. 이 감독은 “자기가 주체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살면 굉장히 허무하다”며 “스스로에게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위해 뭐가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활에서 농땡이를 피우더라도 자기중심을 잡는다면 인생에 필요한 큰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이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인생의 천재’라는 말을 사용하곤 했다. 이 감독은 “결국 인생의 천재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자신의 삶과 일치시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며 “엄밀한 의미에서 인생의 천재는 없지만 삶의 방향성을 빨리 찾는 사람들이 인생의 천재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학시절부터 나의 가치와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했고, 40대가 돼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정의를 빌린다면 그는 인생의 천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본인에게 삶의 가치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던졌고, 이에 영화로 답했다. 

글 문영훈 , 박건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사진 윤현지 기자
hyunport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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