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단, 약으로도 가능하다” ‘페미당당’의 모두를 위한 미프진 자판기

지난 10월 30일,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아래 임신중단권 청원)이 30일 만에 20만 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해당 청원자들은 ‘한국이 미프진 합법 국가라면 올바른 처방전과 정품 약을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원치 않는 임신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임신중단, 먹는 약으로도 가능하다
한국, 먹는 약도 불법이다

 

미프진은 그 자체로 자연유산 유도약을 일컫는 동시에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자연유산 유도약의 브랜드명이다. 우리나라에선 임신중절수술이 가장 익숙한 임신중단법이지만 임신중단이 수술로써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약물적 임신중단법인 미프진도 임신중단의 한 방법이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로 구성돼있다. 임신중단을 원하는 여성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순차적으로 복용하면 된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분비를 차단한다. 이때 자궁이 수축하게 되는데, 미소프로스톨은 자궁 수축을 촉진해 자궁 내의 수정체가 몸 밖으로 배출되도록 돕는다. 이러한 약물적 임신중단은 임신 초기에 시행되는 방법으로, 미국 FDA에서는 임신 70일까지의 자연유산 유도약 복용을 허가했다. 약물적 임신중단은 그 시행 시기가 빠를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은 WHO의 필수 의약품에 명시돼 있고 프랑스·미국·중국·베트남 등 61개국에서 승인돼 판매되는 중이다.

그러나 임신중단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유산 유도약인 미프진의 유통 역시 불법이다. 현재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정하고 이외의 상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형법 제269조(아래 낙태죄)에는 ‘약물 등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여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프진 자체가 불법인 상황에서 오히려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미프진’들이 온라인상에 유통되고 있다. 당장 구글에 미프진을 검색하면 손쉽게 미프진 판매사이트에 접근할 수 있다. 대다수의 판매사이트는 정품 미프진을 팔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후기 글까지 번듯하게 작성돼있다. 

하지만 미프진의 수입 자체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선 ‘정품 미프진’이 정말 믿을 수 있는 정품인지 검증할 길이 없다. 실제로 지난 2015년 한 인터넷 사이트는 정품 미프진을 취급한다며 159명에게 가짜 약을 속여 판매해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합법화되지 않은 약물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식 검증 절차를 거쳤을 리 없다”며 “불법 미프진 판매와 관련해 사이트 차단 등의 조치를 계속 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 지난 19일 낮 2~4시 페미니즘 단체 ‘페미당당’이 ‘왜 우리는 ‘낙태약’을 자판기에서 살 수 없을까’ 캠페인을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좌측 앞 인도에서 진행했다.

 

왜 우리는 ‘낙태약’을 자판기에서 살 수 없을까?

 

이에 미프진 합법화 요구가 임신중단권 청원과 더불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페미니즘 활동 단체 ‘페미당당’이 미프진 합법화를 요구하는 캠페인인 ‘왜 우리는 ‘낙태약’을 자판기에서 살 수 없을까?’를 진행한 것이 하나의 예다.

페미당당은 캠페인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 입구 좌측 앞 인도에 설치한 ‘모두를 위한 미프진 자판기’(아래 미프진 자판기)를 설치했다. 참여자가 미프진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자판기에서 미프진 대신 캠페인 관련 소책자와 비타민, 젤리가 나온다. 페미당당 관계자 A씨는 “미프진 자판기 캠페인은 여성들에게 미프진의 존재를 알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며 “자판기는 안전하고 간단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밝혔다. 캠페인에 참가한 고려대 한국사학과 재학생 김성하씨는 “우리나라엔 비수술적 임신중단법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프진의 존재가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성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임신중단 과정에서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이충훈 회장은 “안전한 임신중단 의료서비스는 여성의 건강권 보장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의사들이 여성들에게 합법적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미프진 자판기 캠페인에서 페미당당은 리플렛을 통해 ‘가짜 미프진이 인터넷을 통해 불법 유통되고 있다’며 ‘전문가에게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에 노출된 여성들이 출혈, 불완전유산, 패혈증과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어 여성들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알렸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임신중단에 대한 선택권 또한 보장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미국 산부인과의사협회는 미프진이 수술적 임신중단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임을 인정하며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산부인과 전문의 B씨는 “여성들에게 약물적 임신중단 등 과학적으로 입증된 치료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프진의 국내 도입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 회장은 “미프진의 부작용을 고려해 신중한 도입 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전문의 B씨는 “약물적 방법과 수술적 방법은 각각 다른 장단점이 있다”며 “두 방법 모두 안전성이 검증된 상황에서 여성에게 어떤 방법을 택할지 선택권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글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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