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효성 있는 실천방안 뒤따라야

▶▶ 지난 22일 낮 2시 스팀슨관 대학원 회의실에서 ‘연세대학교 대학원생 권리장전 및 명예선언문 선포식’이 있었다.

 

지난 22일 낮 2시, 스팀슨관 2층 대학원 회의실에서 ‘연세대학교 대학원생 권리장전 및 대학원생 명예선언문 선포식’이 진행됐다. 이번 대학원생 권리장전(아래 권리장전)은 ▲윤리인권위원회 인권센터 ▲신촌캠 대학원 총학생회 ▲원주캠 대학원 총학생회 ▲대학원 교학팀이 협력해 작성하고 발표했다. 권리장전은 이전까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대학원생들의 권리를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권리장전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권리장전과 명예선언문 동시에 선포

 

권리장전은 일반대학원 내 개설된 모든 전공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며, 대학원생의 ▲권리 ▲의무 ▲보호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특히 권리장전에는 대학원생의 ▲부당한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 ▲연구결과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에 대한 규정이 명시돼있다.

 

선포식에는 대학원 연구본부장 겸 대학원장 최문근 교수(이과대·유기전이금속), 윤리인권위원회 윤리인권위원장 최중길 교수(이과대·광음향 분광학), 신촌캠 대학원 총학생회장 정수민(응통·석사3학기)씨, 원주캠 대학원 총학생회장 이행수(수학·석사4학기)씨 등이 참석했다. 선포식은 ▲최문근 교수의 인사말 ▲최중길 교수의 격려사 ▲최문근 교수의 권리장전 낭독 ▲신촌캠·원주캠 대학원 총학생회장의 명예선언문 낭독 순서로 진행됐다.

 

▶▶ 권리장전에서 일부 발췌.

 

 

이날 행사에서 최문근 교수는 “이번 권리장전 선포는 대학원생들의 권리 보장 실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고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학원 부원장 장용석 교수(사과대·조직이론)는 “우리대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다”며 “오늘 권리장전 선포식은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고 말했다.

이날 우리대학교는 타 대학들과 달리 권리장전과 함께 대학원생 명예선언문(아래 명예선언문) 또한 발표했다. 명예선언문에는 학교와 학생 상호 간의 의무와 책임이 명시돼있다. 이는 해당 권리장전이 교육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일부 교수들의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신촌캠 대학원 발전전략팀 이왕섭 차장은 “대학원생의 권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교육에 대한 교수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부 있었다”며 “대학원생들 스스로 의무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권리보호, 수면 위로 올라
대학원생 고충처리 process 통해 해결? 

 

대학가에서는 대학원생과 교수의 갈등이 계속해서 불거져왔다. 우리대학교에서도 관련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지만, 권력구조 상 대학원생들이 적극적으로 교수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 등의 이유로 대학원생들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특히 우리대학교는 지난 6월, ‘제1공학관 사제폭탄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수와 대학원생 간 마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 우리대학교 신촌캠 이공계열 대학원생 A씨는 “교수의 연구실에서 지내며 생활하는 대학원생의 경우 교수들이 자잘한 개인적 업무를 부탁하기도 한다”며 “많은 인력들이 시간을 쏟는 만큼 계약서와 같이 관계에 대한 정립이 명시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대학원이 있는 대학의 총장들에게 권리장전의 도입과 인권전담기구를 설치하도록 권고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대학교를 포함해 60여 곳의 대학들이 권리장전을 선포했다. 이행수씨는 “지금까지 일부 대학원생들은 심각한 모욕과 신체적 폭행 등을 당하며 헌법이 보장한 인권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며 “권리장전의 선포는 이러한 현실에서 대학원생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대학교는 제1공학관 사제폭탄 사건 이전부터, 대학원생의 권리보호를 위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해당 사건 발생 이후 산재하던 권리보호 활동들을 하나로 통합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우리대학교는 ‘연세 대학원생 안전 및 고충처리 개선 TFT’(아래 TFT)를 구성했다. TFT는 활동 중 하나로 ‘대학원생 고충처리 process’(아래 대학원생 고충처리 시스템)를 도입했다.

우리대학교의 대학원생 고충처리 시스템은 권리장전만 제정한 타 대학과 달리 단계적으로 권리 보호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대학원생 고충처리 시스템은 ▲고충상담 프로그램 신설‧산재된 신문고의 단일화가 포함된 1단계 ▲권리장전 및 명예선언문 제정의 2단계 ▲대학원생 인권교육 실시의 3단계로 이뤄져 있으며, 현재 2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2단계에는 권리장전 발표 외에도 ▲명예선언문 낭독 ▲인권센터 신설이 포함돼 있다. 윤리인권위원회 인권센터장 방연상 교수(연합신학대학원·선교학)는 “2단계 고충처리 시스템 중 하나로 권리장전 선포에 앞서 지난 3월 인권센터가 설립됐다”며 “고충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이 성평등센터, 단과대, 과별로 흩어졌을 때보다 학생들이 고충을 처리하고 상담을 받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리장전, 대학원생 권리 지킬 수 있겠어? 
 

그러나 일각에서는 ▲권리장전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점 ▲권리장전의 선포가 많은 교수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권리장전은 교수 또는 대학원생이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가해지는 제도적 강제성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놓지 않았다. 이는 권리장전이 형식적인 선언에 그치게 될 가능성을 야기한다. 신촌캠 문과계열 대학원생 B씨는 “권리장전이 없었을 때보다는 낫겠지만 권리장전이 대학원생의 권리보호를 단기간에 크게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A씨 역시 “선언문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다양한 배경과 연령을 가진 대학원생을 모두 보호하기는 어렵다”며 “권리장전을 어길 시 가해질 조치에 대한 제도가 미비한 점 역시 아쉽다”고 말했다. 이에 이왕섭 차장은 “사실상 권리장전은 대학원생 스스로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만 명시하고 있으므로 강제력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권고한 표준안이 있고 각 대학교는 약간의 수정을 가할 뿐이기 때문에, 권리장전의 차별성은 부족하다”며 권리장전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권리장전 제정 및 선포에 대해 알고 있는 교수가 적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교수가 권리장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거나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면 권리장전은 형식적 선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왕섭 차장은 “인권센터의 보직 교수 등이 내용을 감수한 것 외에 교수들이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윤리인권위원회 인권센터 홍주영 실무위원은 “이메일과 공문 등을 통해 교수들에게 지속적으로 권리장전에 대해 알릴 계획”이라며 홍보 계획을 설명했다. 이에 권리장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우리대학교 이공계열 C교수는 “권리장전이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그 주체인 교수에게 알려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바쁜 교수들은 홍보 이메일도 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편,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식 변화를 통한 교수와 대학원생 간의 근본적인 연구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방 교수는 “대학원생과 교수들 간의 문제가 발생한 후에 처벌 등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사전 예방을 위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며 “대학원생들의 공정한 연구와 연구결과가 보장받는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서정민 교수(사과대·비교정치)는 “권리장전을 발표한 것은 좋은 시작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며 “대학원 연구 문화 자체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리장전 선포는 대학원생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이행수씨는 “권리장전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그러나 이는 대학원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학문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학원생들의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아직 선포 단계인 만큼, 권리장전이 대학원생 권리를 실제로 보호할 수 있을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전예현 기자
john_yeah@yonsei.ac.kr
김유림 기자
bodo_nyang@yonsei.ac.kr
서혜림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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