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종 교수 (우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방문을 시작으로 APEC 정상회의를 위해 베트남 다낭을, APT와 EAS정상회의을 위해 필리핀을 각각 방문했다. 동남아 순방 중에 밝힌 ‘신남방정책’ 은 ‘신북방정책’ 과 함께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주요 구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과의 관계를 4강 수준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아세안은 이미 교역액 기준으로 중국에 이어 제2교역 상대국이며 투자와 관광 등에서도 주요 경제 파트너이다. 올해 창설 50주년을 맞은 아세안은 10개 동남아시아 회원국 간 신뢰구축과 역내 평화를 이끌었다. 2015년 말에 공식 출범한 아세안공동체는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를 축으로 평화, 번영, 진보를 목표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아세안은 아세안안보포럼(ARF), APT, EAS 등 지역협력체의 설립을 주도했으며  참가국 간 이견 조율 등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동남아 순방기간 동안 한국은 한-아세안 공동체 협력을 위해 ‘3P’(people, peace, prosperity)를 강조했다. ‘사람중심(people-centered/people-oriented)’ 접근은 아세안공동체의 핵심적 가치이기도 하다. 평화(peace)는 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긴밀한 연관성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며 번영(prosperity)은 상생성장을 위한 협력을 강조한 것으로 한-아세안 미래공동체의 지향으로 손색이 없다. 한-아세안의 협력 강화는 강대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에 중견국가(middle power)의 역할 모색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아세안과의 파트너십은 한국 외교의 당면과제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북정책, 4강 외교, 국제인권 등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 주요 사안들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있다. 특히, ‘3P’의 실현을 위해 다음의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람중심의 원칙을 위해 아세안 회원국 전반의 인권과 민주주의 현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주요 아세안 회원국의 민주주주의 퇴행에 따른 인권, 법치, 거버넌스의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부정부패, 태국의 군부집권,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독단적 행보에 따른 인권 침해 우려, 미얀마의 로힝자를 비롯한 소수종족에 대한 인종청소적 탄압 문제 등은 아세안의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주요 강대국들은 지역 내 인권 상황보다 강대국 간 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국제기구의 영향력도 한계를 가진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현 정부의 외교적 지향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아세안이 추진하는 아세안정치안보공동체의 핵심 사안이기도 하다.  

둘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아세안의 역할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세안이 북한과의 우회적 대화채널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표명했다. 분단 이후 남북한 외교는 서로에 대한 견제를 위해 ‘외교전’을 벌였고 동남아시아는 대표적인 남북한 외교의 각축장이었다. 한국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아세안과 대화관계 수립을 위해 외교력을 총 동원했으나 당시 대화 관계 수립에 실패한 바 있다. 한국의 경제력은 상대적으로 유인이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대 아세안 정책의 핵심이 대북 견제에 있음을 인지했던 아세안 국가들은 한국과의 대화관계 수립이 한반도 정치문제에 원치않게 관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1983년 한국 외교부는 대화관계 수립 추진을 잠정 중단하며 “아세안으로부터의 푸대접 사례” 문건으로 정리한 바 있다. 한반도 문제에 이해관계를 갖는 강대국 중심외교 일변도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일방적 편들기를 벗어나 정직한 중재자로 아세안을 인식하고 대화의 장 마련을 위해 협력해야할 것이다. 

셋째, 경제관계의 강화에 있어 균형과 상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해결하기 위해 아세안과의 경제관계를 중국의 수준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러나 아세안과의 경제관계 확대는 베트남에 대한 집중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2017년 기준 베트남은 이미 단독으로 한국의 제3교역 상대국으로 성장했으며 국제개발협력에 있어서도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세안경제공동체의 목표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회원국 간 개발격차의 해소에 있다. 경제통합의 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격차와 각종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해야한다. 아울러 교역량의 증가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기업 내 교역에 기반한 수직적 분업만을 심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아세안공동체 건설과 신남방정책은 강대국 주도의 국제관계와 경제 중심적 국가이익을 넘어서는 새로운 협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아세안이 우리를 원하는 것보다 우리가 아세안을 원하는 것이 보다 크다. 동남아에 대한 우위적 관점을 벗어나 동남아의 관점과 동아시아적 관점을 통해 한-아세안 관계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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