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과 자긍심

이동근 (인예철학·11)

어렸을 때부터 많이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 이야기이다. 나르키소스는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과 소녀들의 흠모를 받았으나 그 누구의 마음도 받아주지 않았다. 그에게 실연당한 숲의 님페 에코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 몸은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게 된다. 나르키소스는 결국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부터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벌을 받게 된다.

결론적으로 그는 호수에 비치는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 호수에 빠져 죽는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개념은 자기애(나르시시즘)이다. 자기애의 정의는 자기 자신에게 애착을 갖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자기애는 자존심과 자긍심으로 나눠진다.

먼저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위의 이야기처럼 자기 자신 속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다. 결과는 비참하다. 주변에서 사랑을 줘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음은 자긍심이다. 자긍심은 다른 사람들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찾는 것이다. 자긍심은 스스로에게 긍지를 가지는 마음이다. 세상에 나 혼자만 있으면 자긍심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긍지는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인데 능력에 대한 당당함은 비교 대상이 없으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사회’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국가’를 만들었다. 국가에는 사회구성원들이 지켜야할 규칙인 법이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틀 속,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휴전국이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남자들은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자의든 타의든 군대를 가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은 자존심만 지킨다. 자신이라는 섬에서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직장도 구하고 복지 혜택을 받으면서 살 것이다. 하지만 당당할 수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의무를 지키지 않고 권리만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한다. 종교적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에도 책임이 있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기애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자기애가 있어야 도전의식, 꿈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애 열풍이다. 서점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자존감 수업』, 『엄마의 자존감 공부』, 『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자존감 대화법』, 『지금 나에게 필요한 용기』, 『자기 긍정감을 회복하는 시간』 등 자기애에 관한 책들이 수도 없이 출간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지 나름대로 분석해 봤다. 이유는 현재 한국사회가 통일 이후 성장만 바라보다가 마음이 지쳤는데 치유할 방법을 몰라서이다. 치열한 성장과 경쟁 속에서는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나르키소스의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음에는 육체의 죽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죽음도 있다. 사회적 죽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시키는 자존심만 고집하는 것이다. 자존심이 아니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노력이 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필자도 자긍심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사회에 무엇이 도움이 될까 고민하면서 지내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만약 통일이 돼 전쟁이 끝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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