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차별 없이 열려있는 공간, ‘성중립’ 화장실

일상생활에서 화장실만큼 성별 이분법이 명확히 드러나는 공간은 없다. 누군가는 별다른 의문 없이 화장실을 이용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성별이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멈춰서야 한다.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인 화장실이 과연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곳이 있다. 바로 ‘성중립’ 화장실이다. 최근 성공회대학교에서 성중립 화장실 도입을 발표하는 등 이는 우리 사회의 화제로 떠오르고 있다.

 

▶▶ ‘인권재단 사람’ 건물 내부에 설치된 성중립 화장실의 모습.

 

‘ALL GENDER’ RESTROOM,
차별 없이 열려있는 공간의 확장

 

성중립 화장실은 성별 정체성·성적 지향·장애 여부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영어로는 ‘all gender restroom’이라고 표기된다. 즉, 성중립 화장실은 기존 화장실에 적용됐던 남성·여성·남녀공용의 이분된 젠더 규범에서 벗어나 모든 젠더와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는 기존의 화장실을 사용할 때 성소수자들이 겪는 심리적 혼란이나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과 동행하는 장애인들의 불편을 배려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실제로 지난 2016년 9월 전미(全美)트랜스젠더평등센터(NCTE)에서 미국 내의 트랜스젠더와 젠더퀴어*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에 의하면, 이들 중 약 59%는 공중화장실의 사용을 꺼려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스스로를 젠더 디스포리아**라고 밝힌 A씨는 “종종 화장실 앞에서 주저한 적이 있었다”며 “나의 경우엔 디스포리아를 느끼는 정도이지만, 트랜스젠더는 일상에서 수군거림을 겪거나 내쫓기기도 하며 심지어 신체적 폭력까지 당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이어 A씨는 “성중립 화장실은 젠더퀴어에게 절박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행동하는 성소수자인권연대’(아래 성소수자인권연대) 나라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시설 이용과 사회서비스 접근이 성별 이분법에 따라 구별 된다”며 “성중립 화장실은 성소수자들이 사회적으로 배제 당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성중립 화장실의 어제와 오늘

 

일부 국가에서 성중립 화장실의 설계와 운영은 익숙한 현상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사회적으로 성중립 화장실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한 국가 중 하나다. 지난 2015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이후, 성중립 화장실은 정부기관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2015년 기준, 미국 내 150여 개 대학에 성중립 화장실이 도입됐을 뿐 아니라 지난 2016년 미국 행정부에서는 모든 공립학교 내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그들의 성정체성에 따라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하는 연방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성소수자까지 포용하는 성중립 화장실이 비교적 낯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다양성연구소’와 ‘인권재단 사람’을 비롯한 몇몇 시민단체들은 성별에 따라 이분된 화장실 사용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자체 건물에 성중립 화장실을 마련하고 확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다양성연구소 관계자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그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며 “이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성평등 프로젝트팀 꼬막’(아래 꼬막)이 ‘성중립 화장실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성평등 화장실 캠페인 포스터를 배포 및 부착해 시민들에게 성중립 화장실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당 포스터는 성평등 도서관 ‘여기’, ‘청년허브’ 등 몇몇 기관에 부착됐으며, 지난 6월 퀴어문화축제 당시 설치된 화장실에도 사용됐다. 꼬막 관계자는 “어느 곳보다도 성별 이분법이 공고한 공간인 화장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젠더 문제와 화장실 문제를 같이 공론화 시켜보자는 것이 우리의 취지”라고 전했다. 또한 꼬막을 지원했던 서울시npo지원센터 변화지원팀 김유리 팀장은 “화장실 입구에 포스터를 붙여놓음으로써 ‘당신은 두 화장실 사이에서 고민해 본 적 없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답했다.

성소수자인권연대 나라 사무국장은 “성별 이분법과 성별표현 고정관념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성소수자의 존재와 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고 평가했다.

 

대학 사회, 그리고 성중립 화장실  

 

#성중립 화장실, 대학 사회의 문을 두드리다

최근 성공회대학교에서 국내 대학 가운데 최초로 학내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공표하면서 성중립 화장실 도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공회대 32대 총학생회 ‘바다’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이행 중이다. 총학생회 ‘바다’ 측에 따르면, 성공회대의 성중립 화장실은 성소수자 뿐 아니라 장애인·노약자·보호자 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해당 화장실은 1인 화장실 구조이며 내부에 좌변기와 장애보조시설 등을 포함한다. 총학생회 ‘바다’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는 우리가 생활하는 학교가 모두에게 평등하고 편안한 장소가 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의 취지에 공감하는 성공회대학교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성공회대학교 허예린(경영·17)씨는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며 “함께 생활하는 구성원들의 불편함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이새해(신방·17)씨는 “사회적으로 성을 이분화하는 과정에서 배제되는 젠더가 존재한다”며 “성중립 화장실은 선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 필수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라 답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대학교 총여학생회 <around>는 “대학 사회 내에서 성중립 화장실 설립 논의가 시작된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아직 성중립 화장실과 관련된 계획은 없으나 앞으로 학내에서 논의돼야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한 생활과학대학 학생회장 김정윤(생디·15)씨는 “이번 총여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선본의 공약 중 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우리대학교가 퀴어-프렌들리(queer-friendly)한 변화를 선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중립 화장실을 향한 엇갈리는 시선들   

한편 일각에선 성중립 화장실의 도입을 두고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화장실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및 불법촬영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성별의 구분 없이 함께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재학생 B씨는 “언론에서 보도됐던 강남역 살인사건의 경우, 같은 화장실을 양성 모두 이용할 수 있었던 구조인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성중립 화장실 이용이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사건 이후, 공중화장실 내 성별 분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이에 행정자치부에선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해 ‘바닥면적 2000㎡ 이상인 근린시설을 설립할 때 성별 분리 화장실을 설치할 의무’를 적용하기로 한 바 있다. 또한 우리대학교 학부모 윤순기(52)씨는 “남성의 범죄 노출도에 비해서 높은 여성의 범죄 노출도가 감소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입장에서 딸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조용인(노문·16)씨는 “최근 들어 몰래카메라 범죄 등 화장실 범죄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르는 피해자들이 염려 된다”며 “남녀 모두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의 설치가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성중립 화장실을 긍정하는 입장에선 성중립 화장실의 설치는 화장실 범죄와 별개의 사안이라고 지적한다. 즉, 범죄의 책임은 성중립 화장실 자체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총학생회 ‘바다’는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어떠한 화장실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라며 “성중립 화장실에만 책임을 국한시킬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대학교 총여학생회 <around>는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 및 상품화하는 몰래카메라 범죄의 경우, 여성의 몸에 관한 잘못된 인식과 몰래카메라 유통시장 그리고 몰래카메라 판매에 대한 규제 부족 등에 책임의 소재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별 이분법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성중립 화장실의 도입은 여러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성소수자를 위한 배려를 넘어 모두의 권리가 존중되는 생활환경의 개선을 의미한다. 성소수자의 권리가 자유로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관심이 요구된다.     

 

*젠더퀴어 :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종류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젠더 디스포리아 : 정신적 성별(gender)과 신체적 성별(sex)의 불일치로 인해 성적 불쾌감을 겪는 사람.


글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사진 김민재 기자
nemomem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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