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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 우리대학교 학부대학 김학철 교수
  • 승인 2017.11.05 00:28
  • 호수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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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교수
(우리대학교 학부대학)

사회기능주의에서 주목하는 세 감정이 있다. 분노, 혐오, 경멸이다. 분노는 좌절되거나 목표 성취가 방해받는 데에서 오는 반응으로, 자아나 자아와 가까운 것이 모욕을 당하거나, 침범을 당했을 때 일어나는 정서 상태다. 이때 공격성이 일어나 분노 대상을 제거하려 한다. 혐오는 더러운 것이 입에 닿을 수 있다는 불쾌감을 기초로 하고, 나아가 악덕이나 비열한 행동에 반응하는 정서다. 이것은 혐오 대상과 자신을 분리하는 데로 이끈다. 기본적 혐오 정서는 위생적인 더러움, 곧 불결함과 떨어지고자 하는 감정이다. 이후 인간은 도덕적 더러움에도 혐오의 감정을 갖게 되었다. 경멸은 공동체의 (신성한) 질서를 위반하는 것에 대한 정서 반응이다. 인종주의적 감정이 대표적인 것인데, 이질적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의 열등함을 깔보는 정서다. 경멸은 배제와 차별의 기능을 수행한다.

분노와 혐오와 경멸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것은 자연스레 일어나는 생물학적, 사회적 감정이고 순기능도 크다. 권리를 침해당하고도 분노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비굴한 굴종이나 자기기만에 익숙한 상태이다. 혐오를 통해 더러운 것과 자신을 분리해내지 못한다면 사람은 병들 것이고, 도덕적인 악덕에서 혐오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미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이 세 감정을 불순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 감정은 선동의 주요 기제가 된다.

선동은 개인이 좌절하고, 사회에 희망이 없으며, 역사의 갈피가 올곧지 못 할 때 얼굴을 내민다. 절망한 개인이 사는 희망 없는 사회에 대고 역사와 민족과 국가를 들먹이는 이들은 왜 개인이 좌절하고 사회가 혼란하며 국가가 풍요롭지 않은지를 두고 ‘악의 무리’들을 발견 혹은 발명해 낸다. 바로 그 대상이 우리의 권리를 침해했는데, 이들은 공동체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바쁘고, 본질적으로 더러워서 우리 선배들은 아예 상종도 안 했었다. 그런데 무능하고 타락한 이들이 그들을 우리 공동체에 편입시켜 우리를 타락시켰고, 우리 후손의 미래를 어둡게 했으며, 지금의 궁핍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확증 편향은 선동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설득의 방식이다. 선동가들이 지목한 ‘악의 무리’가 우리의 분노와 경멸과 혐오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들을 긁어모은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 붙이면 완벽한 사탄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내 강의 시간에 종종 하는 놀이가 있다. 한 학생에게 묻는다. 부모님을 미워한 적이 있는가? 친구에게 적의를 느낀 일이 있는가? 선생님을 욕해 본 적 있는가? 사회 질서(교통 법규라도)를 범한 일이 있는가? 성인이 된 사람치고 그런 일을 안 해 본 사람은 없다. 학생은 모든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 단 하나의 말도 내가 덧붙인 게 없지만, 그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변한 학생에게 “이 학생은 상종 못할 사람이다”라고 선언해도 무방하게 된다. 이내 나는 질문을 바꾼다. 부모님을 사랑하는가? 친구를 위해 희생한 적이 있는가? 선생님에게 존경의 표현을 한 적이 있는가? 공중도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그 상종 못할 학생도 모두 “예”라고 답한다. 이제 그 학생은 놀랍게도 매우 모범적인 인물이 된다. 그 학생은 모범적인 인물인가 아니면 되먹지 못한 인간인가? 위의 질문과 대답으로 얻은 사실로는 이 물음에 올바르게 답할 수 없다.

선동꾼들의 목적이 있다. 공동체 내의 경쟁자를 ‘악의 무리’와 공조 및 동조하는 자로 낙인찍고, 악의 무리를 물리치기 위해 나서는 자신들에게 힘과 돈을 달라는 것이다. 그 선동에 동원된 이들은 자기 발등인지도 모르고 도끼를 내려치기도 한다. 사회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으로 갈등하며, 그 에너지를 받아 자라는 분노와 혐오와 경멸의 부정적 정서가 우리의 사랑과 평화와 정의를 잠식한다.

우리와 세계를 둘러본다.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던 한국 교회의 주류 세력이 성 소수자를 ‘악의 무리’로 단정하고, 차별과 혐오와 배제의 칼을 들이민다. ‘빨갱이’와 ‘꼴통’이 주고받는 경멸이 지저분하게 뉴스를 채우고, 고성으로 욕지기를 해대는 이들이 지도자라고 어깨에 힘을 준다. 불의한 체제에서 비롯된 고통과 혼란의 토양 위에 자라난 괴물들이 곳곳에서 활개 치며, 분노와 경멸과 혐오를 먹고 쑥쑥 자라난다. “논문은 쓰지만 연구하지 않는 교수와 학점은 따지만 공부하지 않는 학생”이 모였다는 대학에서, 이곳에서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대학교 학부대학 김학철 교수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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