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도 모르는 ‘공혈’동물의 이야기

 

 

사람이 다쳐 수술을 할 때는 헌혈로 혈액을 공급한다. 반려견·반려묘도 수술을 해야 할 때엔 수혈을 받아 진행하기도 한다. 과연 이 수혈용 혈액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대부분의 동물 수혈은 바로 ‘공혈’동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반려견·반려묘에게 피를 뽑아주기 위해 사는 공혈동물의 실상을 조명해봤다.

 

뽀삐와 나비의 행복 뒤에는
누가 있을까

 

공혈(供血)동물이란 병들거나 다친 동물의 수술·심한 출혈·혈소판 부족 시 혈액을 공급하는 동물을 지칭하며, 대표적으로 공혈견과 공혈묘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혈동물의 기준은 「세계동물혈액은행 지침」에 명시돼있다. 이에 따르면 공혈 기준은 몸무게 1kg당 16ml 이하이며 채혈 후 6주가 지난 뒤 다음 채혈이 가능하다. 공혈견은 체중 20~30kg 이상의 대형견으로, 모든 예방접종 완료·빈혈 및 개적혈구항원* 부작용 없음·마취 없이 수혈 가능한 온순한 성격이라는 기준이 요구된다. 또한 공혈묘는 체중 5kg 이상·1~6년령 이하·모든 예방접종 완료·수혈 경력이 있거나 및 임신 중인 고양이는 제외라는 조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혈동물을 보유한 곳은 민간 동물혈액 업체와 소수의 대학 동물병원이며 대략 300마리 이내로 추정된다. 대다수의 국내 동물병원으로 유통되는 혈액은 민간 업체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채혈된 것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 공식사이트에 따르면, 해당 업체는 지난 2003년 세계 2위 규모의 공혈견 육성 농장을 증축했고 현재 약 200마리의 공혈견을 사육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1년부터 공혈묘의 혈액 공급도 시행 중이다. 한국동물혈액은행 직원 A씨는 “대략 4천 개 이상의 국내 동물병원과 상당수의 대학 동물병원으로 혈액을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의 공혈동물은 대학 동물병원의 소유로, 직접 키우는 서너 마리 가량의 공혈견이다. 해당 공혈견의 혈액은 주로 소속 동물병원의 수술 과정에서 사용된다. 서울대 동물병원 황철용 교수는 “현재 수혈 수요에 따라 5마리의 대형견을 자체적으로 키우고 있다”고 답했다.
 

‘상처투성이’ 공혈동물,
수면 위로 떠오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혈동물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거의 전무했다. 하지만 지난 2015년 이후, 공혈동물 관리 실태와 관련해 ▲비위생적 사육 환경 ▲권장 횟수를 초과한 채혈 횟수가 파악되며 학대 논란이 불거졌다. 우선 2015년 동물보호단체 케어(아래 케어)와 한 방송국이 함께 한국동물혈액은행 소속 공혈동물의 실태를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공혈동물을 둘러싼 논란이 제기됐다. 당시에는 공혈동물 개체 수 파악을 비롯한 사육조건 및 채혈기준 등의 관리기준이 일절 없었다. 이에 해당 업체의 공혈동물들은 뜬 장**에서 이끼가 낀 물과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등 비위생적 환경에서 사육됐다. 또한 수의사가 상주하지 않은 채 뜬 장에서 채혈을 진행했다. 보도 이후 한국동물혈액은행 김희영 대표는 긴급공지에서 ‘뜬 장은 배설물을 위생적으로 처리하고자 돼지 등 기타 동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형태며 우리나라의 개 사육환경에서 음식물 재활용은 일반적이다’라며 ‘음식물을 이용한 것은 동물의 체중감소 현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케어 사무국 관계자 B씨는 “보통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뜬 장을 사용하면 동물의 발이 빠지는 등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며 “음식물 재활용과 관련해서도 이는 김 대표가 수의사임을 감안했을 때 버젓하지 못한 답변”이라고 말했다. 보도가 확산되자, 적지 않은 반려인들은 공분과 우려를 표했다. 반려동물 카페의 회원인 이루리 씨는 “당시 스토리펀딩을 통해 공혈동물의 관리 실태를 처음 접했다”며 “공혈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므로 그들의 복지를 위한 환경 마련이 시급해 보였다”라고 답했다. 

더불어 몇몇 대학 동물병원도 「세계동물혈액은행 지침」의 공혈 기준을 지키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새누리당 이상일 전 의원이 공개한 서울대 등 5개 국립대의 「공혈견 보유수 및 연간 공혈현황」에 의하면, 서울대 동물병원은 연간 평균 13.4회 채혈했으며 최대 18회를 기록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연간 최대 채혈 권장 횟수인 9회를 초과한 것이다. 당시 서울대 동물병원은 ‘이는 「서울대 동물병원 공혈동물 관리운영 세칙」의 ‘재채혈은 20일 이내의 경우 원칙적으로 금지하나 담당 수의사의 판정에 따라 월 2회까지 진행할 수 있다’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서울대 동물병원 황철용 교수는 “횟수는 많지만 평균 채혈량이 적으며 채혈 전 혈액검사를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 의원은 ‘현행법에선 동물혈액의 판매에 관한 영업을 규정하지 않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며 ‘법제화를 통해 관련 영업을 규정하고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어딘가 2% 부족한
가이드라인 

 

이렇듯 공혈동물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동물보호법 위반 검토와 ▲공혈동물의 복지를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는 공혈동물에게 ‘살아있는 상태에서 동물의 신체를 손상하거나 체액 체취 및 이를 위한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학대로 규정하는 「동물보호법」 제8조 2항 2호의 위반을 적용하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아래 농식품부) 축산환경복지과 김광회 사무관은 “해당 조항에서는 ‘질병치료와 동물실험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이 정하는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지난 2016년 9월 농식품부·한국동물혈액은행·대학동물병원·동물보호단체가 모여 「혈액나눔동물의 보호·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에는 ▲공혈동물의 명칭을 혈액나눔동물로 변경 ▲영양균형이 맞는 사료와 깨끗한 물 제공 ▲뜬 장 사용 시 동물의 발이 빠지지 않아야 하며 두께는 3.2mm 이상 및 몸을 뉠 수 있는 널빤지 같은 바닥재의 추가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동물혈액은행 직원 A씨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존의 사료로 전면 배급을 시작했고 사육시설을 개조해 발판을 마련했다”며 “폐수처리장 시설의 완충 및 채혈실 재공사도 완료해 현재 농식품부에 개선 사항을 전달한 상태”라고 답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위에 대해 ▲가이드라인의 내용이 허술하다는 점 ▲가이드라인 자체가 제대로 공포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일부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내용의 실효성을 지적한다. 케어 사무국 관계자 B씨는 “혈액나눔동물로의 명칭 변경은 사실상 공혈동물을 미화하는 것이다”라며 “제대로 된 사료와 깨끗한 물을 제공하는 것도 가이드라인으로 규제하기엔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B씨는 “공혈동물의 고통은 외면한 채 사람의 노동력을 줄이고자 만든 뜬 장을 허용한다는 점도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지 1년이 지났음에도 공포조차 되지 않았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B씨는 “적지 않은 동물보호단체 및 동물병원들도 위 가이드라인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 사무관은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둘러싼 일부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와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보완이 맞물려 공포가 늦어졌다”며 “올해 안으로 공포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B씨는 “가이드라인이 공포되더라도 이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명확한 법제화를 향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법 테두리 밖에도
문제는 있다

 

이처럼 공혈동물 관련 현안을 법적 테두리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자, 국회에서는 법제화를 향한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공혈동물의 법적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의 내용엔 동물혈액 취급업종에 대한 법적근거 마련·공혈동물 분양근거 신설 등이 있다. 담당 박철우 비서관은 “이번 개정안으로 동물혈액 분야의 법적근거를 마련해 공중위생상의 관리사각지대를 해소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특정 민간업체에 의한 독점적 공급구조라는 점 ▲국내의 헌혈견·헌혈묘 제도가 미흡하다는 점 ▲윤리적 문제는 늘 존재한다는 점이 거론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혈동물의 혈액공급에 있어 전적으로 민간업체 한국동물혈액은행에 의존한다. 하지만 공혈동물 관리실태 보도논란 당시 해당 업체가 일시적으로 혈액공급을 중단하자 국내 동물병원의 혈액공급이 마비된 바 있다. 반려인인 고형숙씨는 “당시 인터넷에 글을 올려 직접 수혈동물을 구했다”며 “생명과 연관됐음에도 공급업체가 한 곳이라면 위험성을 안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동물자유연대 서울본부 관계자 C씨는 “동물 혈액공급 경로를 늘려야 한다”며 “해외의 사례처럼 영리기업에서 공혈동물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 정부에서 비영리기관을 설립해 공적체계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급구조 개선과 더불어 반려인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헌혈견·헌혈묘 제도가 보완책으로 제시되고는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이다. 실제로 전국 9개 수의대학 동물병원 중 서울대 동물병원만 헌혈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울대 동물병원 황철용 교수는 “미국·캐나다 등 해외에선 헌혈견·헌혈묘 제도가 정착돼 기부헌혈로 수혈용 혈액을 공급 한다”며 “비영리 목적으로 자발적인 기부에 의해 행해지며 참여 동물에게 건강검진 및 예방접종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대두 된다”고 답했다. 이어 황 교수는 “다만 채혈에 적합하지 않은 소형견을 주로 키우는 국내의 반려동물 문화 상, 헌혈견·헌혈묘 제도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것은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동물의 채혈 자체가 사람의 선택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C씨는 “공혈동물이라는 제도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질병치료와 동물실험’이라는 동물보호법 적용 예외의 조항 또한 공혈동물 사육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C씨는 “그들의 희생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명확한 실태조사와 지속적인 입법 노력 등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반려동물 가구 수가 급증하면서 해당 의료분야의 규모가 커지고 이에 따라 동물혈액의 수요도 늘고 있다. 반면 동물복지에 대한 의식 수준과 증진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반려동물 관련 산업의 활성화와 동물복지의 가치는 서로 균형을 이뤄나가야 한다. 공혈동물의 복지 향상을 위한 명확한 법제화와 적절한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개적혈구항원 : DEA(Dog Erythrocyte Antigen)라고도 하며, 개의 혈액형을 분류하는 지표. 이에 따라 개의 혈액형은 DEA1.1·DEA1.2 등으로 나뉜다. 

**뜬 장 : 사육하는 동물의 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이 뚫려 있으며 지면에서 떨어져 있는 형태의 철창.

 


글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그림 김지연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