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면 결국 사케가 맛있다’

어두운 조명의 일본식 선술집에 들어가면 조명 따라 세상을 보는 명도도 좀 낮아진다. 오붓하고, 따뜻하고,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술자리에 묻어있다. 한 병에 몇 만 원쯤은 가볍게 뛰어넘는 사케 병을 떨리는 손으로 빼 내오고 나면 회 한 점에 술 한 잔도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맛은 청하 같은 것이 가격과 출신지는 다르다던데, 술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맛이 나는 것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술썰, 그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사케’의 매력을 담았다. 신촌의 이자카야 ‘이마리’의 최주섭 사장님과 함께했다.

“이자카야 술집에 가서 주눅 들지 않고 술을 시키는 방법을 알려 줄게요.”

어둑한 조명, 창가에 늘어진 사케 병들. 이마리의 모든 것은 일본과 그 문화를 담고 있었다.

 

“일본 술은 크게 소주와 사케로 나뉘어요. 오늘은 사케 얘기를 해 줄게요. 일본 사케에는 등급이 있어요. 가장 등급이 낮은 ‘혼조죠’부터 준마이, 긴죠, 다이긴죠 등을 거쳐 가장 높은 등급의 ‘준마이다이긴죠’까지. 쌀을 발효시키면서 맛이나 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쌀을 정밀하게 깎을수록 등급이 높아지는 거에요. ‘다이긴죠’ 급의 사케는 쌀알을 50% 정도까지 깎아내요.”

정미도에 따라 그 등급을 나누는 사케는 등급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그 맛도 가격에 비례할까, 얼마만큼이나 맛있는 술을 마실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에는 ‘취하면 결국 혼조죠가 맛있다’는 말이 있어요. 사케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부드러운 맛은 강해지지만 다소 비린 느낌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람들이 혼조죠를 많이 찾아서 그래요. 이름에 '준마이'가 붙으면 쌀 누룩을 발효시켰다는 뜻이고, 그렇지 않으면 양주 알코올을 넣어 발효시킨 거예요.”

꼭 등급이 높을수록 맛있는 술은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등급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쿠리’는 술의 종류와는 관계없이, 큰 사케 한 병을 다 먹을 수 없을 때 간단하게 작은 술병에 덜어먹는 걸 뜻해요. ‘히레사케’는 술을 데워서 복어 지느러미 말린 걸 넣어 먹는 방식인데, 비릿한 맛이 강하죠. ‘아즈카’는 뜨거운 술이라는 뜻이고, ‘냉사케’는 차가운 술이라는 뜻이에요.”

일본식 술집에서 그 뜻을 제대로 모르고 어렴풋이 짐작으로만 짚어가던 용어들의 뜻을 제대로 알아가게 된 순간이었다.

 

“사케의 달고 매운 맛도 중요한 구분 기준이에요. ‘아마구치’는 달다는 뜻인데, 설탕의 단 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달달한 느낌을 뜻해요. 반면 ‘카라구치’는 맵다는 뜻으로, 고추의 매운 맛을 뜻하는 게 아니라 술 맛이 진하고 강하게 느껴진다는 거에요. 와인의 맛을 따질 때 단맛의 정도에 따라 '드라이하다'는 말을 붙이는 것과 비슷하죠. 메뉴판에 등장하는 ‘+, -’ 표시는 –6이 가장 아마구치스럽다는 거고, +6이 가장 카라구치스럽다는 뜻이에요.“

사장님은 이후 ‘준마이 750’와 ‘아마구치’를 차례로 내주셨다. 준마이와 아마구치 모두 깔끔한 맛을 자랑했지만 아마구치는 ‘-6도’라는 수식어를 자랑하듯 훨씬 달달하고 술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목 넘김을 선사했다.

 

“안주에도 순서가 있어서 회, 샐러드 같은 맛이 강하지 않은 안주부터 튀김, 조림류로 나아간 후 탕류나 식사류로 마무리하는 게 좋아요. 사케와 소주가 어울리는 안주가 조금씩 달라요. 향이 거의 없는 회나 샐러드 같은 안주는 사케와 잘 어울리고, 튀김류는 소주와 보다 잘 어울리죠.”

토닉워터에 탄 보리소주와 삿포로 생맥주도 추가로 내주셨다. 안주와 여러 술을 음미하다 보니 “사실 사케는 모든 안주와 다 잘 어울리긴 하지만, 알고 먹으면 또 느낌이 다를 거다”는 사장님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맥주는 에일 종류였기 때문에 탄산이 강하게 느껴져서 안주의 맛을 처음부터 음미하기는 힘들었다. 소주 또한 토닉워터를 타긴 했지만 워낙 그 자체에 알코올 향과 센 맛 이 배어있기 때문에 안주보다는 술 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 두 술과 일본식 닭튀김인 가라아게를 먹으면 처음에는 술 맛이 입 안을 완전히 감싸다가, 이에 질세라 안주의 향과 맛이 다시 강하게 치고 올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잘 어울린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이나 맛의 분리가 일어나기도 한다. 회처럼 향이나 맛이 다소 약한 안주의 경우에는 그 맛이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미미했다.

반면 사케는 달랐다. 탄산이나 맛 모두 세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향을 품고 있었다. 회를 곁들이면 사케의 향과 안주의 질감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기 때문에 그 ‘어울린다’는 표현이 무엇보다도 제대로 느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라아게처럼 맛이 진한 안주를 먹을 때는 또 그대로 안주의 맛을 모두 느끼면서도 깔끔한 마무리를 가능하게 한다는 데서 사케의 진정한 매력을 찾을 수 있었다.

 

외국의 음식과 술을 먹는 자체는 그 문화를 느끼는 것과 같다. 알 수 없는 단어의 뜻과 사케의 등급과 안주와의 궁합 같은 것들이 혀와 눈, 목에서 쌓이면서 술에 대한 이해는 심도를 더해갔다. 이를 기반으로 이자카야에서 당당히 사케를 즐길 수 있게 된 당신을 축하하며. 오늘의 술썰은 여기서 마무리한다.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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