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어릴 때 치료를 미루다 이가 심하게 썩어 신경치료를 한 적이 있다. 그때의 잊지 못할 고통에 기자는 다소 ‘변태’ 같은 습관이 생겼다. 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치과에 가서 검진을 받는 것이다. 이때 의사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 이상 없음에 쾌감을 느끼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에 더 큰 쾌감을 느낀다.

 

이처럼 기자는 몸이 평소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에 무척 예민하지만 유독 성기에 이상이 있다고 느낄 때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뭐랄까, 내 성기의 상태를 남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고 자기 성기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성기는 의사의 진료 없이도 ‘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으니까.

 

문득 걱정됐다.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꽉 끼는 바지를 입고 오래 발기해 있으면 고환이 아플 때가 있었다. 직감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데 기자가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네이버 지식in’에서 기자의 증상을 검색했다. 기자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이 몇 없었고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도 못했다. 결국 고심 끝에 그토록 가기 꺼려졌던 비뇨기과에 가기로 했다.

 

무작정 신촌의 한 비뇨기과에 찾아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같이 탄 사람들이 기자가 누른 층 버튼을 보고 기자가 어디에 가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병원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했다. 점심시간 직전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은 없었다. 진료하기 전 문진표를 작성했다. 방문 목적을 세세히 적으면 병원 데이터베이스에 기자의 모든 것이 기록될 것 같아 ‘기타’에 체크했다. 문진표를 제출한 지 얼마 있지 않아 간호사가 나를 진료실로 불렀다.

 

쭈뼛쭈뼛 들어가는 기자를 남자 의사가 쾌활하게 맞이했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는 의사의 물음에 증상을 하나하나 말했다. 다 듣고 나서 의사는 기자의 증상이 전립선염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질환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기 때문에 전립선염 검진만 받기로 했다.

 

전립선염 검사는 소변 검사와 정액 검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남자 간호사가 기자에게 종이컵을 주며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아오라고 했다. 마침 오줌이 마려웠기에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소변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시 간호사는 플라스틱병을 주며 병원 구석에 있는 방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

 

간신히 누울 수 있을 크기의 작은 방.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속 유일한 폴더. 기자가 소장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폴더 속 ‘야동.’ 그리고 내 손에 들린 플라스틱병.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훌륭한 어포던스 디자인*이었다. ‘소변처럼 정액도 직접 받아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내 정액을 간호사가 대신 받아주는 것도 웃긴 일이지. 마음을 추스르며 모든 야동을 훑어봤다. 큰일 났다. 모든 야동을 다 훑어봤는데,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야동을 본 건 처음인데 기자의 성기는 놀랍도록 평온했다. 마치 『천지창조』의 아담의 그것과 같이.

 

우선 바지와 팬티를 내렸다. 병원에서 혼자 성기를 드러낸 채 앉아 있자니 뭔가 미묘하고 뭔가 짜릿했지만 성적으로 흥분되지는 않았다. 야동을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야동은 보지 않기로 했다. 정액은 받아야 했기에 혼자 조용히 ‘자위’를 시작했다. 자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기자는 전혀 위로받지 못했다. 어쨌거나 정액은 나왔다. 긴장했는지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당황했다. 그러나 더 나올 것도 없겠다는 생각에 정액을 받은 플라스틱병을 들고 나왔다. 정액을 이렇게 소중히 다룬 건 처음이었다.

 

정액을 받는 동안 모두 점심을 먹으러 나가 병원이 적막했다. 누군가가 뛰쳐나와 ‘몰래카메라야! 정말 거기다가 정액 받았냐?’고 할 것만 같았다. 남아있는 간호사에게 플라스틱병을 주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오기로 했다.

 

역시나 의사는 기자를 쾌활하게 맞이했다. 이미 기자의 정액을 현미경으로 보고 있었다. 정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화면으로 보며 설명을 들었다. 정자들이 꿈틀대는 걸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찼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느낌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쨌든 결론은 문제없음. 의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혹시 또 아프게 되면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병원을 나왔다.

 

전립선염 검사를 하며 쾌감을 느꼈다. 아, 오해 말라. 기자의 성기가 이상 없음에 쾌감을 느낀 것이다. 이제 생각하면 왜 성기에 관한 문제는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나 싶다. 건강한 삶을 위해, 더 나아가 건강한 섹스를 위해 비뇨기과 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길 바란다. 다만 다음에 있을 정액 검사는 순탄하기를.

 

*어포던스 디자인: 어떤 사물이나 환경의 행태나 이미지로 행동을 유도하는 디자인

 

글(필명) 카르마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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