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고려대를 놀려야 할까. 왜 우리는 고려대에 라이벌 의식을 느껴야 할까.
이유를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니까, 늘 그래왔으니 ‘그냥 그러는 것’이라는 재미없는 답밖에 나오지 않는다.
연고전에는, 연세대와 고려대 사이에는 사실 그다지 내용(contents)이 없다. 조금 삐뚤어진 시선으로 보면, 지금의 연고전은 고등학교 시절 힘들게 공부해서 재수, 삼수까지 해서 대학에 온 학생들이 ‘연뽕’, ‘고뽕’을 마음껏 분출하는 장이다. 성적순으로 대학들을 줄줄이 늘어놓은 입시 배치표에서 꽤 위에 위치한 대학에 왔다는 자부심, 그리고 역시 배치표에 비슷하게 위치한 대학이기 때문에 서로 놀리고 함께 어울릴 자격이 있다는 그 특권 의식. 어쩌면 특별한 콘텐츠 없이도 양교 사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것들 때문은 아닐까.
물론 우리들끼리라도 재미있게 노는 것, 정말 중요하다. 각박해지는 현실 속에서도 그나마 아직 낭만이 남아 있다는 대학 생활에서 연고전은 그 시절 우리들의 추억이다.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멋진 ‘연뽕’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특히 전통적인 연고전의 뒤풀이라고 할 수 있는 기차놀이도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매년 이맘때쯤 SNS에서는 상인들이나 외부 손님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개념’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된다. 길거리에 가득 찬 쓰레기들이나 그릇된 음주 문화로 인한 여러 사건․사고들 또한 마찬가지다. 기차놀이가 있던 신촌, 안암은 항상 시끄러운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지만, 단지 잠시의 아우성으로 남을 뿐이다. 그 이상은 없다.
교류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신촌에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은 한 상인은 ‘예전에는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교류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 기차놀이를 하면서 상인들과 만나고, 먹을 것을 나눠 받지만 우리가 그들과 진정으로 ‘교류’하고 ‘소통’했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외려 학생들의 일방적인 요구는 ‘교류’보다는 ‘폭력’의 모습과 닮아있다
응원, 소리통, FM 등과 같은 문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배제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 학문에 정진하며 사회에 새로움을 불어넣는 대학생들이 좀 더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특히 기차놀이는 양교가 캠퍼스 바깥으로 나와 저마다의 대학가인 신촌과 안암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신촌, 안암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우린 대학 안에서와는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지역 상권과 함께 우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대학생 스타트업 기업과 지역 상권이 협력해 일일 식당을 열고, 요리 배틀을 할 수 있다. 연세로를 런웨이로 연고전 패션쇼가 열릴 수 있다. 쓰레기가 아닌 미술 작품과 음악으로 거리를 채울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시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격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학생회와 학교 본부 등의 정책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대학만의 특별한 학풍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지역사회와 대학 문화가 어우러지는 캠퍼스타운과 같은 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름이 연세로라고 해서 바로 그 길이 연세의 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드는 기차는 연세대와 고려대를 잇는 것뿐만 아니라 연고대와 그 바깥 세계인 지역사회를 연결할 수 있다.
기차놀이를 비롯한 연고전이 콘텐츠 없는 ‘연뽕’의 장보다는 사회적인 콘텐츠를 통해 일반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진정한 축제의 모습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