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연고전이 열린다. 1945년 연세대와 고려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 간에 열린 축구 경기를 그 기원으로 삼으면 햇수로는 72년의 역사이다. 지금처럼 5개 종목으로 승패를 겨루기 시작했던 1965년의 경기를 첫 경기로 보더라도 52년째가 된다. 전자의 경우, 연고전은 한국이 일제 강점기를 벗어난 직후 열린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고, 후자의 경우라도 한강의 기적이 본격화되던 시기 양교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대학스포츠의 시초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분명 연고전은 양교의 화합과 경쟁의식을 동시에 고취시키는 전통적인 대학축제를 넘어 사립명문으로서 연세대와 고려대가 가지는 한국 사회에서의 상징적 위상을 표상한다. 양교의 명성은 연고전의 역사와 함께 진화돼 왔고, 그 역사가 깊어질수록 연고전은 한국 스포츠 태동의 산증인이 되어 왔다. 그러나 연고전이 개최되어 온 그 세월 동안 한국사회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경험해 온 것만큼이나 대학의 위상 역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어 왔다. 그 변화 속에서 사회가 바라보는 연고전에 대한, 더 나아가 두 명문 사립에 대한 시선 역시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으며, 연고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러한 변화된 대학 위상의 부침을 상징적 차원에서 실증하는 예가 된다.

작년 이 시기 연세춘추에 실린 기사만 보더라도 연고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언급되고 있다. 몇 가지를 보면, 대학교육의 영역에서 남녀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된 지금 왜 여전히 연고전은 남자들만의 경기로 치러지고 있는가? 과거와 달리 대학구성원들이 선호하는 스포츠 종목이 다변화되어 왔음에도 왜 여전히 5개 종목에 한정돼 있거나 또는 그 종목들만을 고수하고 있는가? 양교 축제로서의 연고전에 대한 대표성의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근래에 와서는 연고전이 대학의 공간을 넘어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에서도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혹자는 연고전이 더 이상 애교심을 고취하고 양교 간 화합을 위한 스포츠 축제가 아니라 상대 학교를 향한 자극적인 표현이 난무하고 사회적으로 불쾌함을 야기하는 변질된 라이벌 의식의 표출이라고 한다. 실제로 연고전이 승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심판매수나 편파판정 같은 도덕적 타락에 빠져든 반지성주의적 추문에 휩싸인 경우도 심심찮게 있어왔다. 또는 매년 성대하게 펼쳐지는 연고전이 갈수록 한국 사회 내 위화감을 조성하는 엘리트주의의 산물이 되고 있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더 이상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에 기반을 둔 대학공동체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학교 인근 상권에 피해를 주거나 혹은 오히려 지나친 상업적 이벤트로 전락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고전을 둘러싼 이러한 논란이나 지적들은 이 축제가 의미하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상황적, 주변적, 비본질적 해석일 수 있다. 경기 종목이나 방식은 오랜 역사적 전통의 이름으로 이해될 수 있고, 과도한 라이벌 의식이나 엘리트주의, 그리고 상업주의 등의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유일무이한 대학스포츠 제전에 대한, 혹은 한국스포츠 태동의 산 역사에 대한 외부의 시기나 질투의 시선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승부집착에 따른 심판매수나 편파파정 역시 한국 사회에서 어디 연고전만의 문제이겠는가. 대학은 학문과 교육의 영역에서 고유의 상아탑 이미지를 상실하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학생들의 취업 관문 역할을 주문받은 지 오래다. 게다가 교육, 행정, 연구 등 대학운영 전 부문에 걸쳐 경쟁적 지표에 따라 국가의 지나친 관리, 감독,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캠퍼스 환경에서 승부집착에 따른 파생적 문제는 현 대학의 모습을 요구하고, 동시에 닮아있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노출된 모순의 지점이자 반복적으로 곪아 터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로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고전을 둘러싼 논란 중 진정 간과할 수 없는 본질적 문제는 외부의 시선이 아닌 연고전을 향한 괴리된 내부의 ‘정서’에 있지 않을까.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연고전을 비롯한 학교 차원의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줄고 있다. 어디 비단 연고전만의 현상이겠는가. 동아리 등 대학의 공동체 문화 역시 과거에 비해 현저히 위축되어 왔다. 경제난에 따른 취업에 올인하는 분위기와 함께, 소위 혼밥족으로 대표되는 학생들의 개인주의 문화는 ‘대동단결’의 단일한 하나가 아니라 이질적 개인의 다양성, 차별성, 자율성의 집합체로서 대학 공동체의 이미지를 다시 그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연고전에 대한 학생들의 저조한 참여율이나 무관심은 위에 언급된 여러 문제를 잘 나가는 연고대의 행사에 거는 외부의 딴죽만으로 치부할 순 없게 만든다. 

연고전에 대한 즐겁고 뿌듯한 추억을 가진 동문이라면 안타까울 작금의 현상과 그로 인한 대학문화의 개인주의적 변화는 결국 안티연고전 등의 내부적 저항이자 분열의 형태로 전이되고 있다. 한 가지 위안이라면, 연고전에 저항해 실험적 시도였던 안티연고전 등의 분열적 현상이 반상업주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다양한 구성원과 내용을 담기 위해 응원단과 몇 개의 운동부 중심에서 벗어나 장애우 등 소수자도 함께하며, 투명한 재정, 깨끗한 축제, 그리고 지역주민과 교감을 깊이 할 수 있는 문화 운동의 차원에서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즉, 연고전의 분열적 전이가 외부의 곱지 않는 질책과 비난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의 자성적 움직임으로 작동할 가능성과 잠재성은 늘 상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 자율성, 포용성, 투명성, 공공성 등의 관점에서 ‘하나 된 연세’와 같은 가족주의적 대학 문화를 고집할수록 연고전은 더욱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양성, 개방성, 포용성 위에 새로이 연세의 문화가 정립이 된다면 작아진 연고전은 실망감이 아니라 어쩌면 더욱 ‘대학생’다운 진정한 스포츠 축제의 장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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