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 (PSIR·14)

근래에 들어 북한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심심치 않게 보이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정부가 “대화를 구걸한다”는 문구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정치인들만의 주장이 아니라 일반인들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 기사 댓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화전양면전술’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나 북한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한 번쯤은 봤을 단어다. 이 전술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향해 뭔가 정치적으로 화해 제스처를 취한 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무력도발을 저지르는 패턴을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정치인, 학자, 언론인 및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대화요청이 화전양면전술에 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남북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드러내고 오직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압박, 그리고 국제사회의 공조만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도 잇단 북한의 도발로 인해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며 대화는 신뢰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화는 상호 간에 하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통해서 조건을 만들고 신뢰를 쌓는 것이지 신뢰와 조건이 갖추어지면 대화를 하겠다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대화는 국가 간의 평화적 해결 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며 이 채널을 닫는 것은 북한을 막다른 길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의 선택지도 스스로 줄이는 행위다.

혹자는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 한국정부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 겁먹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를 제시하는 것은 제발 대화 좀 해달라는 구걸도 아니고 막다른 길에 도달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절박함의 요청도 아니다. 오히려 대화를 제시하는 것은 우리가 북한과의 공멸을 원하지 않으며 북한의 지속되는 무력도발이 더욱더 북한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궁극적으론 정권의 붕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절대로 우리가 북한 정권을 무조건 신뢰하거나 북한의 지속되는 도발을 묵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분명히 북한의 핵실험과 ICBM 개발은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북한의 최근 행보는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평화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 9년간 우리 정부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제재·압박으로 일관했지만 결국 북한의 도발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쳐 오면서 악화되어온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복권될 것이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전략적 인내의 필요성을 우리 동맹국들에게 납득시키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오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한반도 문제해결의 운전자석에 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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