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 교수 (우리대학교 철학과)

알파고의 승리는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이다. 체스와 달리 엄청난 변수를 안고 있는 바둑에서 이세돌이 패배한 이유는 무엇인가? 알파고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바둑이 무한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다지만 역시 유한한 게임이다. 시작과 끝이 있다. 그리고 바둑을 진행하는 규칙이 정해져 있다. 이런 경우 결국 중요한 것은 계산을 누가 더 빨리 더 정확하게 하는가이다. 1천202대의 컴퓨터와 한 개인의 브레인 싸움에서 결국 인공지능이 이긴 것이다.

둘째, 협업할 줄 아는 알파고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1천202대의 CPU가 서로 다투지 않고 협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1천202명의 훈수쟁이와 한 명의 인간이 싸우는 것은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한다. 이런 비판은 본질을 놓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인간이 1천202명의 훈수쟁이를 데리고 슈퍼컴퓨터 한 대와 싸우면 이길 것 같은가? 아마 인간들 같으면 서로 욕질하고 싸우느라고 볼 일 다 볼 것이다. 의견수렴을 잡음 없이 한다는 것이 인간사에서는 불가능하다.

셋째, 알파고의 학습능력은 대단하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세돌에게 도전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하루에 몇만 번의 학습을 통해서 일취월장한 것이다. “인간은 배우기를 원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 형이상학』이란 책 1권 1장 1절 첫 문장에서 하는 말이다. 이제 인간보다 더 잘 배우는 인공지능 앞에서 인간은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배우려고 마음먹은 존재를 이길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3명이 길을 걸어가면 그중 한 명은 나의 스승이다.” 공자가 말하는 평생교육론이다.

이제 우리는 알파고에게서 승리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 협업할 줄 아는 능력, 배우려는 자세를 말이다. 그러면 이제 알파고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것인가? 시간 문제가 아니라 알파고가 앞으로도 영원히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알파고는 활동에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전기에서 얻는다. 반면 인간은 바이오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알파고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줄 모른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빅데이터를 넣어두고 센서를 달아두면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쾌락을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런 흉내는 잘 내는 감성 로봇들이 인간의 반려자 역할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흉내내기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다. 고통과 쾌락을 스스로 느낄 줄 모르면 감정도 모두 FAKE다. 진정한 감정을 느낄 줄 모르는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만약 “인간 중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라고 중국의 철학자 맹자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네 가지 감정,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바로 그것이다.

둘째, 생식세포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증식시켜 나간다. 자신과 다른 존재의 DNA를 반씩 나눔으로써 새로운 자손을 이어나가는 것이다. 완벽한 복제도 아니고 완전한 변이도 아닌,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존재자가 다양성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인간은 돌연변이를 한다. 실수도 한다. 실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존재는 발전할 여지가 있다. 자신의 실수를 먼저 알아차리고, 스스로 고치고, 다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바로 군자라고 공자는 갈파한다. 다양성과 실수 가능성이 인간의 미래를 밝게 해준다.

셋째, 인간은 자의식을 갖는다. 인간은 자신을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 그리고 그것을 왜 하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존재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경고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지혜다. “나는 누군가?”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대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 질문들을 끊임없이 던지는 사람만이 깨어있는 자의식을 가진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세 가지 능력이 있다. 첫째, 로고스(LOGOS)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알파고가 점점 인간을 능가하는 로고스를 가지게 되어서 ‘슈퍼인텔리전스’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하는 닉 보스트롬과 같은 옥스퍼드 대학 철학자가 있다. 둘째, 파토스(PATHOS)는 정서적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과 불행, 쾌락과 고통이 바로 이 영역에 속한다. 셋째, 에토스(ETHOS)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능력이다. 만약 로봇이 이 세 번째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인간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니 능가할 것이다.

전기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자아의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로봇은 인간이 시키는 일은 스마트하게 수행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간은 로봇을 통제할 수 있을까? 나쁜 인간이 로봇과 결탁해서 인류에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