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경제·16)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가 과연 바람직한가?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 상대평가 제도에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순응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점수보다는 석차를 먼저 보는 잔인한 상황에도 무감각해졌다. 한두 문제 차이로 다른 대학에 들어가 열등감에 빠지는 사람, N수를 결심하는 사람, 나아가 친구를 경쟁자로 간주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입시 제도의 피해자다. 수능에서 몇 문제만 더 맞히면 대학이 달라지고,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사회에서의 지위도 달라지고, 소득분위도 달라지고, 배우자의 얼굴(?)이 달라질 수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자습실 책상에 앉아 오늘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온갖 사설 문제집과 EBS와 사투를 벌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시의 비율을 늘리는 게 옳을까?

우리나라의 정시 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학수학능력평가 시험은 1등부터 N등까지 성적순으로 번호를 매기기 위한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모든 문제가 객관식 문제이기 때문이다. 채점을 통해 정해진 답을 맞힌 개수에 따라 사람들을 줄 세우면 된다. 나는 그러한 객관식 문항들이 과연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답을 찍어서 맞힌 학생과 깊은 계산과 성찰 끝에 정답을 고른 학생의 지적 수준은 같다고 수능은 판단한다. 또한, 객관식 선지들은 학생의 생각이 담겨있지 않은 답이다. 1번에서 5번 선지까지 모두 출제자가 제시한 정답과 오답이다. 학생들은 수동적으로 남이 적어준 답을 고르는 것에서 그친다. 과연 이러한 시험을 통해서 창의력이 넘치는 좋은 인재를 선별할 수 있을까? 수능 원점수 총점 450점(2015년 수능 기준) 중에는 과연 나의 재능과 창의성도 평가됐을까? 

정시는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표준점수를 가지고 희망하는 학교와 학과에 지원한다. 개인의 적성에 맞거나 학생 스스로 관심을 갖고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순위가 높은 학교의 인기학과에서 비인기학과로, 그다음 좋은 학교의 인기학과에서 비인기학과 순서로 지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자신의 장점을 살려 좋은 학교의 원하는 과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의학에 큰 관심은 없지만, 일단 점수가 높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의대에 진학하고, 경제와 경영을 고등학교 때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했지만 나중에 취업에 유리하다고 하니까 일단 지원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교 간의 서열이 정해지고, 학교 안에서도 전공 간의 서열이 암묵적으로 정해진다. 학과, 학교에 서열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은 결국 학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수시는 비록 완벽하게 공평한 잣대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다양한 학생들을 다양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다. 즉, 내가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유능하다는 것을 더 자유롭게 어필할 수 있고, 대학들은 여러 수시전형을 통해서 그들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유능한 학생들을 선택할 수 있다. 수능점수가 평가요소의 하나로 채택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12년간 쌓아온 능력을 수능 점수로만 나타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활동과 독서, 동아리, 개인연구를 통해 얻은 경험을 고루 평가해서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정시가 수시보다 공평하니까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려면 정시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정성’때문에 ‘다양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 입시 제도에서 지나치게 공정성만을 강조한 결과, 많은 학생들은 불필요한 경쟁에 시달리게 됐다. 다양한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의 정착이 시급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