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망법」 개정으로 대학가 매크로 사용 근절되나

매 학기 개강 직전이면 대학가 PC방은 수강신청 특수를 누린다. 인기가 많은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서 서버가 열리기 두세 시간 전부터 컴퓨터 앞에서 대기하는 것은 예사다. 수강신청뿐 아니다. 캠퍼스 간 셔틀버스 신청, 학내 공연 티켓팅 등 ‘온라인 선착순 신청’은 대학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런 선착순 신청을 우회하는 편법이 존재한다. ‘매크로’로 알려진 단순 작업 반복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매크로, 대학가의 고질적 문제

 

매크로는 일련의 명령체계를 사전에 구축한 뒤 간단한 조작만으로 해당 명령을 실행하는 프로그램을 통칭한다. 인터넷을 통해 내려받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매크로 외에 키보드, 마우스 등에 매크로 기능이 내재된 하드웨어 매크로도 존재한다. 매크로를 이용하면 마우스 포인터를 특정 좌표로 이동시키거나 선택하도록 지정할 수 있으며, 같은 원리로 키보드에서도 특정한 키를 순차적으로 입력할 수 있다. 또 직접 클릭하는 사용자보다 월등히 빠른 속도로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점을 이용해 일부 사용자가 티켓팅 등 각종 선착순 신청 상황에서 매크로를 사용하는 것이다. 
선착순 방식으로 수강신청이 진행되는 타 대학의 경우 매크로 이용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충청권에 위치한 K대 교무처 관계자 A씨는 “최근에만 하더라도 수강신청 결과 의심이 가는 데이터가 발견돼 해당 학생에게 연락한 결과, 매크로 사용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학교 교무처 박찬우 직원은 “1초에 80회 클릭하는 비현실적인 신청시도가 학기마다 있다”고 전했다. 
우리대학교는 마일리지 제도로 인해 수강신청 매크로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하지만 신촌캠-국제캠 간 셔틀버스 예약 등의 영역에서 매크로가 사용된 전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총무처 총무팀 임경숙 차장은 “과부하 가능성 때문에 현재는 별도의 매크로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며 “학술정보원에서 지속적으로 셔틀버스 예약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매크로 사용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15년부터 2016년까지 1년여간 셔틀버스 예약에 매크로를 사용했다는 B씨는 “당시 룸메이트가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며 “원하는 셔틀버스 시간대만 선택하고 실행해두면 매일 자동으로 그 시간대 셔틀이 예약되는 방식이었다”라고 말했다. 역시 매크로를 사용해 셔틀버스를 예약했다는 C씨는 “지난 2016년, 셔틀 예약에 한차례 실패하고 매크로를 쓰기 시작했다”며 “그 후로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쉬워서 더 유혹적인

 

매크로는 작동 원리가 복잡하지 않고 접근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조작법까지 첨부한 개인 블로그를 찾아볼 수 있다. 가입자 수가 약 120만 명에 달하는 ‘전국 대학생 온라인 모임’이라는 커뮤니티에는 수강신청 매크로를 공유하는 게시판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조사 결과, 특정 대학 수강신청만을 위해 별도로 맞춤 제작된 매크로도 존재했다. 한 개발자는 회원가입 절차를 거쳐 수강신청 매크로를 판매하고 있었다. 블로그나 개인 페이지의 매크로 홍보 글에 첨부된 개발자와의 1:1 오픈카톡 링크로 연락해 가입절차를 거치고 사용료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2017학년도 1학기 기준으로 한 번 매크로를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5만 원이었다. 
이와 같은 대학가의 매크로 사용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우리대학교 신동연(언홍영・15)씨는 “특정한 프로그램을 사용함으로써 공정해야 할 선착순 신청에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금전적 사용료를 지불하고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A씨 역시 “수강신청 등은 학교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행사인데, 특정 학생들이 매크로를 사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은 규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가 매크로 사용에 대한 규제 및 방지는 주로 각 대학 차원에서 이뤄지며 그 내용과 방법도 대학마다 다르다. 임 차장은 “매크로 사용이 적발되는 경우엔 1차로 경고를 하고, 재차 적발될 시 예약 시스템 접근을 차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아직 구체적인 방지 시스템을 도입하지는 못했다”며 “추후 수강신청 기간에 매크로 사용 시 불이익이 있다는 내용의 공지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박 직원은 “단시간 내에 일정 횟수 이상의 클릭이 감지될 경우에 특수 코드를 입력해야만 다시 수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학교 차원의 매크로 제재가 일반 학우에게 피해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소재 S대에 재학 중인 D씨는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매크로 방지 프로그램에 걸려 수강신청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공정 경쟁 저해하는 매크로, 법적 규제는?

 

매크로 자체는 「정보통신망법」 제48조의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하지 않는 합법 프로그램이다. 정보통신망, 즉 예약·신청이 이뤄지는 서버 자체에는 위해를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매크로를 이용해 이익을 챙김으로써 경쟁자가 암묵적인 피해를 보더라도 현행법상 이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올해 초 국회에서 법률 개정 움직임이 나타났다. 온라인 상거래에서 매크로를 사용해 다수의 재화를 확보한 뒤 판매해 폭리를 취하는 행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월과 3월, 각각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의 대표발의로 복수의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안이 제출돼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들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단순 작업 반복 프로그램’의 사용 규제를 골자로 한다. 이와 같은 입법 움직임에 대해 매크로 개발자 E씨는 “수강신청 과목 자체가 재산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재산상 이득을 취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매크로를 사용한 수강신청에는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의원 등 14인이 발의한 개정안의 경우, 제48조에 ‘누구든지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명령을 수행하는 단순반복적 작업을 자동화하여 처리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부당하게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정보통신망 이용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있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대학 강의나 셔틀버스 승차권이 재산은 아니지만 개정안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매크로 사용을 통한 부당 이익 또한 규제 대상”이라고 전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설조항을 위반한 이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학가의 매크로 사용을 둘러싼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용자뿐 아니라 개발자 및 유포자에 대해서도 보다 체계적인 규제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 법률 개정안에서 명시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하드웨어 매크로 사용 또한 규제의 대상이 될 것인지도 쟁점이다.

 

 

*악성 프로그램: 정당한 사유 없이 정보통신시스템, 데이터 또는 프로그램 등을 훼손·멸실·변경·위조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대표한다. 

 

 

 

 


송경모 기자 
songciet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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