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경제·11)

“할 수 있다고요?”, “아니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피 터지는 노력에도 학력의 벽을 넘지 못해 번번이 불합격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한 지방대생의 말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 결코 현실을 바꾸어주지는 않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이죠. 

비단 학력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성별, 나이, 출신지와 같이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 혹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지표가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인사담당자는 언론사 인터뷰에서 일정한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 지원자의 지원서는 온라인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검토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폐기된다고 밝혔습니다.

학력, 성별, 나이, 출신지와 같은 것들이 개인의 능력과 직무 적합성을 온전히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면 그러한 측면도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여 일부 연관성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한 사람을 오롯이 규정하여 자신을 드러내 볼 일말의 기회조차 박탈해버리는 상황은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너무도 많은 아픔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블라인드 채용제도는, 이렇듯 부당한 현실을 변화시키고 개개인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단초가 되어줄 것입니다.

현재 공공부문에 한하여 블라인드 채용제도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려와는 달리, 긍정적인 효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도입한 뒤 전체 합격자 중 지방대생의 비율이 15%p 증가했다고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과거 15%p만큼의 차별이 존재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한국체육산업개발 인사팀은 과거 신입사원 대부분이 회사와 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인상만으로 입사하여 2년 안에 절반가량이 퇴사한 반면, 블라인드 채용을 거친 입사자는 지금까지 단 1명만 이탈했다고 밝혔습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몇몇 지표들에 의해 가려져야만 했던 지원자들의 능력과 자질이 보다 폭넓은 기회를 통해 드러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기업 차원에서도 보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익이 됩니다. 이렇듯 블라인드 채용제도는 기업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욱 투명하게 구직자를 바라볼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안개를 걷어내는 데 주안점이 있습니다.

이제 작은 시작입니다. 공공부문에 제한된 지금의 블라인드 채용제도를 추후 여건이 되는 민간 기업에 점진적으로 확대 도입하여, 구직자들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 경제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은 곧 보다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나이 또래, 학력 사회를 거부하겠다며 입시를 치르지 않고 꿈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은 고졸이란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고 푸념합니다. 십수 년을 열심히 공부하여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에 직면해야만 합니다. 빠른 취업 대신 더 큰 꿈을 좇던 구직자는, 그 나이 먹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건 곧 무능력의 징표라며 또다시 불합격이란 결과를 감내해야만 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네가 더 노력했어야지?”라는 말이 아닌, 정말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선물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라인드 채용제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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