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리의 스폰지밥, 전태열 성우를 만나다

 지난 199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방영된 ‘네모바지 스폰지밥’.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고 노란 해면동물의 인기비결은 뭘까? 아마 캐릭터의 쾌활하고 명랑한 목소리가 한 몫 할 것이다. 1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한결같은 목소리로 스폰지밥을 연기해 온 성우 전태열(45)씨를 만났다.

전태열 성우

“저... 조개소년 같은 거 하면 안 될까요?”

 

 본인의 이름보다 ‘스폰지밥 성우’로 유명한 전태열 성우는 EBS 교육방송 공채 17기로 시작해 어느덧 20년 째 연기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동안 전 성우의 목소리를 거쳐 간 캐릭터의 숫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중 1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해온 스폰지밥은 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캐릭터다. 전 성우는 “당시에는 성우 오디션이 별로 없었는데, 운 좋게 니켈로디언에서 주최한 성우 오디션에 지원하게 됐다”며 “될 줄 모르고 지원했지만 본사의 선택을 받아 스폰지밥 배역을 맡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전 성우는 “프리랜서로 나온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가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며 “당시 너무 놀라 ‘저... 이거 말고 조개 소년 같은 거 하면 안 될까요?’ 하고 되물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운이 좋아 역을 맡게 됐다는 전 성우이지만, 그의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학생’ 전태열에서 ‘성우’ 전태열까지

 

 전 성우는 ‘성우는 자신의 천직’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성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성우를 꿈꾸게 된 계기가 독특하다. 학창시절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는 외교관을 꿈꿨던 그는 꿈을 이루고자 어문관련 학과를 지원했지만 원하던 대학에 낙방했다. 전 성우는 “재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며 “지도를 펼친 다음 집에서 제일 가까운 전문 대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예술학교 방송연예과에 진학하게 된 그는 그곳에서 운명처럼 교내방송국 연기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낮에는 학교에서 연기를 배우고, 저녁에는 연기부 선배들에게 맞아가며 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키웠다. 전 성우는 “TV 연기보다는 특히 라디오 성우 연기에 더 관심이 갔다”며 “라디오는 외모에 크게 관여 받지 않아 다양하고 어려운 캐릭터를 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내 얼굴로 티비 연기를 하는 건 아닌 거 같았다”며 웃었다. 연기부 생활을 통해 성우 연기에 재미를 얻은 그이지만, 막상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오랫동안 성우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 이후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려 6번의 시험을 친 끝에 그는 마침내 EBS 교육방송 17기 성우 공채에 합격했다. 이에 전 성우는 “그렇게 오랫동안 도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이 묵묵히 내 선택을 지지해줬기 때문이다”며 “나이 제한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오기가 생겨 더욱 열심히 한 덕분에 성우 공채에 합격했다”고 전했다.

 

‘성우’로 살아간다는 것

 

 전 성우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성우는 TV 연기자보다 폭넓은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다”며 “성대는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쉽게 노화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만 잘한다면 오래 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관리를 잘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전 성우는 감기를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했다. 감기가 걸리거나 몸이 아프면 목소리가 달라져 일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감기에 걸리면 목소리가 일주일 정도 아예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보다 튼튼한 성대를 가진 전 성우지만 밀려버린 일주일치 스케줄을 한꺼번에 녹음하다 보면 울고 싶을 때도 많다. 이렇듯 그에게 건강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만큼 그에게 소중한 존재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이다. 전 성우는 “밖에서 하루 종일 말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는 말을 아껴야 하는데, 아내는 아이들에게 동화를 많이 읽어주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이 읽어달라고 하면 읽어 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다음날 녹음을 위해 못해주는 경우가 많아서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으나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며 쓴웃음을 짓는 전태열 성우. 그에게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한 감정이 전해졌다.

 

청춘: 고민하고 흔들리고, 그래도 도전하고

 

 지난 2015년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0%가 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이에 전 성우는 “전공인 방송연예과와 성우라는 진로가 일치하는 나는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내 삶에 완벽히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성우 활동을 하며 시사*하고 연습한 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성우 일이 아닌 다른 일에 투자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며 “종종 다른 직업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전 성우에게 자신의 길을 못 찾고 헤매는 20대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없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전 성우는 2가지의 당부를 전했다. 우선 “다른 건 다 몰라도 여행은 하루라도 젊었을 때 가야한다”며 “열정적으로 스펙을 쌓으며 경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365일 중 15일 정도는 자신을 위해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 “남들의 시선에 너무 주눅 들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며 “하고자 하는 일만 잘하면 되고 그 외에 것 남들이 평가하는 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면 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대학시절동안 스펙을 많이 쌓았으면서도 진로문제로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보며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전 성우는 “대학은 4년이지만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남은 인생은 너무나 길다”며 “이 짧은 4년으로 인생 전체를 결정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실제로 제 주변의 성우들은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게 성우 일을 하고 있다”며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전공과 진로를 너무 일치시키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도전할 것을 권유하는 그에게서 갈팡질팡 헤매는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정이 느껴졌다.

 

 인터뷰 내내 전 성우는 익살스러운 목소리로 답을 했다. 진지할 땐 한없이 진지하지만 악동 같을 땐 최고의 장난꾸러기가 되는 전 성우. 어느새 자신의 분신이 된 스폰지밥처럼 영원히 우리의 청춘으로 남을 그의 유쾌한 행보가 기대된다.

 

*시사: 성우용어로, 더빙 전에 영상과 대본을 미리보고 맞춰보는 과정

천건호, 황시온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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