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 나고 처음 도전하는 채식주의 이야기

『The Y』 기자들이 직접 채식에 도전했다. 지난 5월 10일부터 23일까지, 총 2주간 네 명의 기자가 각기 다른 단계의 채식을 실시했다. 기자들의 각양각색 채식주의 체험기를 들어보자.

 

채연, 지천에 널린 라면을 외면하

 

채식을 하며 가장 절실하게 아쉬웠던 음식은 고기로 육수를 내는 라면이었다. 다른 이들과 식사를 할 때 메뉴 정하기에 따르는 어려움도 컸다. 육식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냉면은 알고 보니 고기로 우린 육수로 만들어졌고, 고기소가 들어가지 않는 만두는 없었으며, 햄이 안 들어가는 샌드위치를 찾아내기가 그렇게도 어려웠다. 그저 짐작만 하던 ‘채식인’들의 고통이 이다지도 진지하고 고된 종류임을 알게 된 것이다. 세미 베지테리안 축에 드는 페스코 단계도 이렇게 힘든데, 김치와 참치를 못 먹는 더 높은 단계의 채식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그 짧은 2주간에도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냈다는 것이었다.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해 초밥을 주 메뉴로 선택했다. 가격 부담이 크기 때문에 ‘기꾸스시’의 점심특선(8천 원)과 ‘연어상회’의 점심특선(7천900원)을 애용했다. 이러한 점심특선 메뉴들은 합리적인 가격에 높은 질을 자랑했는데, 특히 연어상회의 경우 초밥과 우동, 김치전을 모두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채식의 효과일까. 2주간 채식의 결과로 몸이 꽤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는 앞으로도 유동적인 채식을 지속할 계획이다.

 

혜인, 난 다이어트 중! 탄수화물 중독이 되지 말자

 

채식을 시작하기 전부터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서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채식을 하며 세운 목표는 ‘건강한 다이어트’였다. 고기를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균형 잡힌 식사를 하며 탄수화물 섭취도 줄여보자고 다짐했다.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 채식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다이어트를 할 때 먹던 음식에도 고기가 들어있어 먹을 수 없었다. 몇몇 사람들에게 채식을 한다고 알렸는데 주위에 소문이 많이 퍼졌다. 덕분에 혹시라도 몰래 고기를 먹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학교 주점에 놀러가 메뉴를 살펴보니, 먹을 게 감자튀김뿐이었다. 일단 침착하게 무슨 식용유를 쓰는지 물어봤다. 다행히도 콩 식용유란다. 난 진상 손님처럼 보였을 것이다. 안주만 문제가 아니다. 보통 술을 마신 다음날은 해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웬만한 국물은 다 육수라 불가능했다. 대체 어떻게 해장을 해야 하는가. 결국 해장을 포기하고 쓰린 속의 고통을 잊지 위해 잠을 택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다. 친구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하지 않았다. 생선을 먹지 못하니 김치도 불가능했다. 삼각 김밥조차 참치 아니면 고기 일색이라 먹을 수 없었다. 결국 커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채식을 통해 얻은 효과도 있다. 보통 두부, 과일, 샐러드, 요플레를 먹다보니 기름진 음식과 자극적인 음식은 거의 먹지 않게 됐다. 피부가 좋아지고 살도 좀 빠졌다. 아침도 챙겨먹었다. 주위 사람들은 외형적으로 보기 좋아진 나를 보며 계속 채식을 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사회생활하기도 힘들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내게 ‘성격 파탄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했다. 진짜로 예민해졌다.

채식이 끝났다. 첫 주는 식단관리를 잘 하지 못해 쓰러지는 줄 알았다, 둘째 주 부터는 식단 관리를 잘 하면서 잘 먹었다. 좋은 효과를 경험하니 채식을 계속 해보고는 싶지만, 김치를 못 먹는 락토오보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승원, 바나나 우유의 행복, 그러나 난 달걀을 잃었다

 

첫날은 괜찮았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은 있었다. 열무비빔밥 위에 얹혀 나온 반숙 계란을 앞자리 친구에게 건넬 때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후식으로 바나나 우유를 마실 땐 행복감마저 느꼈다.

둘째 날, 볼품없는 자취생은 밖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고, 채소는 너무 비쌌다. 모 패스트푸드점에선 햄버거를 4000원 이내에 세트로 먹을 수 있는데, 샐러드는 세트 가격이 7000원이라니. 고기가 제일 쌀 줄 누가 알았겠는가.

셋째 날엔 밥 먹는 게 귀찮아졌다. 찌개, 탕 그 어디에도 고기 육수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었다. 과자 하나를 고를 때도 성분을 살피게 됐다. 평소 좋아하던 새우 맛 과자는 당연히 패스.

넷째 날. 성분 따지는 게 귀찮아진 나머지 매 끼를 빵과 우유로 때우기 시작했다. 채식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현실은 탄수화물 폭탄. 몸이 힘들어졌다.

다섯째 날. 결국 ‘빵순이’가 됐다. 세상에 빵이라는 게 존재하는 게 너무 감사했다. 물론 락토는 계란을 먹을 수 없으므로 모든 종류의 빵을 먹을 순 없었지만, 치즈 피자를 먹을 수 있음에 행복했다. 락토는 유제품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섯째 날엔 학식을 먹어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연세대 학생식당 ‘고를샘’에서 전 메뉴를 베지테리안으로 만들어주던 것! 학교에 세심한 배려에 감동했다.

채식 일주일째. 탄수화물도 지겨웠고 밥을 굶는 것도 지겨웠다. 고기의 씹는 맛이 그리웠고,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생선이 그리웠다. 결국 2주를 못 채우고 내 채식 도전기는 끝이 났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 하나만으로 이 모든 것을 버티는 채식주의자들이 존경스럽다.

 

서인, 마요네즈가 그렇게 소중한 줄은 처음 알았네

 

고기나 어류, 달걀, 유제품은 물론 양봉 과정에서 벌의 생명을 해치기 때문에 꿀도 먹을 수 없는 비건. 채소를 즐겨 먹던 나였기에 별 것 아니라고 큰소리쳤으나, 채식 생활 1일차에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평소의 ‘반의 반’도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문제는 어류. 엄마가 물김치를 큰 통으로 하나 보냈지만 젓갈이 들어간 탓에 묵혀두는 수밖에 없었다. 김치볶음밥을 비롯해 김치가 들어간 음식은 전혀 먹을 수 없었고, 따라서 한식과는 권태기에 접어들었다. 어묵 육수를 부어 만드는 포장마차 떡볶이도 못 먹게 됐다. 집에서 다시마로 육수를 우려 콩나물국을 끓여 먹었다.

무엇보다 그리웠던 것은 요리에 달걀과 크림을 넣을 때 생기는 부드러운 감칠맛이었다. 마요네즈 한 숟갈이 그렇게도 간절했다. 빵을 못 먹게 되자 떡 소비가 늘었다. 꿀이 들어간 떡은 먹을 수 없었지만 곡식으로 만든 조청이라면 먹을 수 있었다. 우유의 대체재로는 두유를 많이 먹게 됐다. 2주 동안 시판 두유 중 안 먹어 본 것이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는 아직 채식주의자에게 매우 불친절한 나라라는 것이다. 일단 외식이 거의 불가능하다. (소개팅에 나갔는데도 고기를 먹을 수 없어서 소개팅남과 함께 비빔밥을 먹어야 했다. 그마저도 고추장에 소고기가 들어 있어 간장에 비벼 먹었다.) 지갑을 들고 집 밖을 나서 봤자 먹을 것은 감자튀김과 바나나뿐이며, 실제로 거의 매일 바나나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집에서 먹더라도 신선한 채소를 다양하게 구입할 경제력과 위생적인 조리환경을 갖추지 못했다면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할 수 없다. 실제로 나도 채식 일주일째에 어지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채식을 하기로 한 2주가 끝나자마자 그 날 새벽에 치킨마요동을 먹었고, 평소 강철 같은 소화력을 자랑하던 나인데도 갑작스런 동물성 단백질에 위가 놀랐는지 그만 체하고 말았다. 내 2주간의 채식은 그렇게 깜짝 놀란 위장과 함께 끝났다.

 

글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조승원 기자
jennyjotw@yonsei.ac.kr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이혜인 기자
hyeine@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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