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회 편집국장 (국문/정외·15)

 

사랑이 넘치는 사회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사랑노래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관광 명소라고 하는 곳들에는 커플들이 넘쳐난다.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절절한 짝사랑의 아픔, 헤어짐을 앞둔 연인들의 눈물 겨운 고민들이 올라온다. 혼자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든 ‘넌 왜 애인이 없느냐’는 질문의 화살들이 날아올 준비를 하고 있으며 ‘20대에는 연애를 해야지’라는 말은 클리셰가 돼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넘쳐나는 사랑에 묻혀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들춰보면 우리가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진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따르면 사랑은 형제애,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 형제애는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을, 모성애는 자식에 대한 사랑을, 성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애인에 대한 사랑을, 자기애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는 주위에서 모성애, 성애, 자기애, 신에 대한 사랑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눈에 보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 많은 교육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첫 번째 사랑인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학보사에서 활동하면서 대학, 그리고 학생 사회를 들여다봤을 때 이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학과 일부 학생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이뤄지는 성희롱 발언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수년간 내려오는 군기 문화, 학생들에게 비합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학교 본부들. 대학 사회에서 만연한 일들이, 사회 전반에서는 더욱 폭력적이고 과격하게 일어나곤 한다. 참, 사랑이 없는 사회다.

 

우리는 사랑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아직은 많이 미숙해 보인다. 

 

프롬은 같은 책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이자 노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스파크가 튀기는 한 순간의 감정이 아닌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우리사회는 서로를 사랑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이 사랑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사랑들은 연민이라는 감정에서 그쳤던 것이 아닐까. 

 

아직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청년 실업률은 IMF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고,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비정규직들은 기업의 칼에 맞지 않기 위한 발버둥을 치고 있다. 여성과 LGBT, 장애인 등 이 사회의 소수자들도 여전히 기득권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사랑 받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인간에게 품어야 할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 더 묻고 싶다. 오늘, 사랑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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