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의 비도덕적 행위는 우리 사회의 수치

이지아 (IS·16)

최근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충격적인 불륜이 기사화되면서 공인의 도덕성에 대한 이슈가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이 둘의 열애설에 도덕성 문제가 제기되었던 이유는 홍상수가 아내와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김민희의 배우로서의 활약과 공인으로서의 비도덕성 문제가 동시에 대두되는 가운데,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요구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선,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없다는 입장의 논거를 살펴보자. 그들의 주논거는 공인의 도덕성과 공인의 업무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펴면 그만이고, 연예인은 방송을 잘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가령 정치인이 ‘설거지는 여자의 몫’이라는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여성에게 돼지발정제를 먹인 ‘강간 모의’ 경험이 있다 해도 정치인이 남녀차별적인 정책을 펴거나 사람에게 돼지발정제를 먹여도 된다는 법안을 합법화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결코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공인이 우리 사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의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대표자를 선출한다.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내가 뽑은 정치인이, 혹은 우리 사회의 다른 누군가가 뽑은 정치인이 ‘설거지는 여자의 몫’이라는 남녀차별적인 발언을 했다. 정치인은 사회 구성원들을 대표하기 때문에, 정치인의 발언은 결국 사회 구성원들의 발언을 대표하게 된다. 정치인의 비도덕적인 언행은 우리 사회를 비도덕적 사회로 비춰지게 만든다.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 

연예인의 경우, 그들이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자로 선출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의 문화를 대표하는 엄연한 우리 사회의 얼굴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가 빌보드차트에 오르면서 전세계적 유명세를 타자, 국내에서 두 가지 반응이 있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는 반응과 부끄럽다는 반응이었다. 싸이는 그저 노래가 주업무인 연예인일 뿐인데, 왜 싸이의 유명세를 두고 국내에서 이런 반응이 나왔을까? 그 이유는 연예인이 우리 사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노래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서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싸이가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미지가 고급과는 거리가 멀게 인식되는 것을 우려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연예인도 우리 사회의 얼굴로 인식하기 때문에 연예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사회에서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모든 나라에 이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올해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마크롱 이전에 두 번이나 프랑스 대통령을 지낸 미테랑이 있다. 미테랑은 임기 중에 젊은 시절의 뷸륜 행위와 그로 인한 혼외 딸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큰 도덕적 오점이 밝혀졌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이를 그의 직무와 무관하다고 판단하여 그를 정치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나는 프랑스 사회에서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는 이 사건으로 봤을 때 공인의 업무와 도덕성을 아주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고 공인이 비도덕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이를 그 사회의 수치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프랑스 사회와는 매우 다르다. 나는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사람이 돼지발정제를 이용해, 강간 모의를 한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믿는다. 내가 우리 사회에서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인을 우리 사회의 얼굴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에서 공인에게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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