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팩트체크는 신촌 중에서도 연세대를 대상으로 합니다. 연세대 학생이라면, ‘연세대의 언더우드 동상에는 총탄 자국이 있다’는 얘기를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겁니다. 연세대가 옛날에 전쟁터였다는 얘기인데, 이 말은 과연 사실일까요? 신촌 팩트체크에서 자세히 짚어봤습니다.

 

신촌이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상당히 가능성 있는 얘기입니다. 전쟁 초반에 연희고지(지금의 연희동 일대)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정도로 서대문구 일대는 수도 입성의 관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촌 역시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위치에 있었죠.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가 북한군의 침략 베이스캠프였고, 언더우드관이 김일성의 집무실로 쓰였다는 소문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제 연세대에 있는 언더우드 동상에 총탄 자국이 있다는 주장을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일단 현재 있는 언더우드 동상 자체에 총탄 자국은 없습니다. 언더우드 동상은 1927년 10월 30일에 처음 세워졌는데,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제에 의해 파괴됐습니다. 두 번째로 세워진 동상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파괴됐죠. 지금 있는 동상은 지난 1955년 세워진 세 번째 동상이니, 총탄 자국이 남아있을 리가 없습니다.

다만, 동상이 아니라 동상 아래의 기단부는 처음 만들어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현재 기단부에는 총상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여러 군데 있는데요. 이 흔적이 70~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생긴 총상이라는 설도 있지만, 언더우드 동상이 전쟁 도중 북한군에 의해 파괴된 것을 볼 때 아무래도 한국전쟁 당시 생긴 상흔이라고 보는 설이 더 유력합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더 직접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연세대 내의 주요 산책 코스인 청송대에 한국전쟁 당시의 전사자 시신들이 묻혀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청송대에서는 지난 2008년에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전적지의 전사자 유해 발굴’이라는 명목 하에 발굴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연세대 교기(校旗)와 한국전쟁 간에 얽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1941년 제작된 연희전문학교 당시의 깃발은 한국전쟁 와중에 잃어버렸다가 지난 2011년 이를 우연히 보관하고 있던 미군 참전용사의 반환으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깃발까지 잃어버릴 정도로 정신없던 전투가 연세대에서 벌어졌던 셈이죠.

이런 다양한 증거들을 볼 때, 정확히 연세대가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물론 김일성이 언더우드관을 집무실로 사용했다던가, 어떤 건물이 교도소로 쓰였다던가 하는 여러 소문들까지는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연세대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직 역사만이 알겠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촌, 특히 연세대가 오래 전부터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어 왔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신촌을 둘러싼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다뤘던 ‘최형우 기자의 신촌 팩트체크’는 이번 기사로 마지막입니다. 『The Y』 다음 호부터는 더욱 참신하고 재미있는 새로운 기사로 함께하겠습니다.

 

글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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