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통일연세’를 외치지만, 과거 우리의 구호는 ‘민주연세’였다. 또한 지난 1988년, 당시 박영식 전 총장은 민주주의를 위해 청춘을 내걸고 투쟁한 이한열 열사를 ‘민주연세의 상징’이라 불렀다. 이에 우리신문사는 지난 5월 31일, 이 열사의 희생의 의미를 기리고자 만들어진 이한열기념사업회(아래 이한열사업회)의 이경란 이사를 만났다.


이 이사는 우리대학교 동아리에서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해결하기 위해 여러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현재 이 이사는 이한열기념관의 관장직을 겸임 중이다.


      
Q. 이한열사업회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이한열사업회는 지난 1987년, 이한열열사추모사업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으며 2010년, 지금의 명칭을 갖게 됐다. 추모가 돌아가신 분을 애도한다는 의미라면, 기념은 그분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이다. 이에 이한열사업회에서는 이 열사의 뜻을 이어받고자 ‘추모’에서 ‘기념’으로 단체명을 바꿨다.
따라서 현재 이한열사업회는 이 열사의 뜻을 구현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한열문화제 주관 ▲이한열장학금 수여 ▲이한열기념관 운영이 있다. 이한열문화제는 매년 6월 9일 저녁, 한열동산에서 우리대학교 동문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이한열 추모의 밤’으로도 불린다. 이한열장학금은 이 열사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고 여겨지는 대학생에게 지급되며, 주로 장학생들이 사회운동을 해나가는 데 있어 지원금 역할을 한다. 이한열기념관에서는 이 열사의 유품과 6월 민주항쟁과 관련된 유물을 보존 및 전시하고 있다.

 

Q. 이한열기념관은 유족의 노력과 시민들의 후원으로 지어진 국내 유일의 ‘민간’설립 기념관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A. 누구나 자기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살아간다. 지금은 경제적 측면 및 개인의 삶이 중요한 문제지만, 우리세대 때는 정치적 사안이 큰 문제였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죽었다. 이러한 희생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가 끝났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나마 정착됐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는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이는 고스란히 반복된다’라는 문구가 있다. 과거 어떤 역사가 존재했던 것을 다음세대들이 기억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국가가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그러나 국가는 적극적이지 못했고, 이에 뜻있는 개인들이 행동한 결과가 이한열기념관이다.

 

Q. 웹사이트 ‘이한열사업회’에 등장하는 ‘최루탄 가스로 얼룩진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이에 담긴 이 열사의 염원은 무엇인가?
A. 위 구절은 이 열사가 자신의 소속동아리 ‘만화사랑’에 남겼던 낙서이다. 최루탄 가스가 가득한 현실에서도, 이 열사는 ‘사람 사는 세상·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해당 표현을 자주 쓰곤 했다. 위 구절에는 최루탄 가스로 상징되는 당시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자신이 열망하던 세상을 실현하고 싶다는 이 열사의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Q. 올해는 6월 민주항쟁 30년이자 이 열사 30주기를 맞는 해이다. 이와 관련된 이한열사업회의 계획은 무엇인가?
A. 이한열사업회에서는 ‘2017이 1987에게’라는 주제로 ▲전시회 ▲문화제 ▲학술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회는 7일(수)부터 오는 7월 8일까지 우리대학교 백주년기념관 1층 기획전시실과 이한열기념관에서 동시 진행된다. 80년대 우리사회와 우리대학교를 보여주는 여러 사진에 더해, 최근 보도된 당시 외신기자들이 찍었으나 미공개된 사진들도 전시할 예정이다. 문화제는 9일(금) 시청광장에서 이한열 장례재연행사로 시작한 뒤, 안치환·4·16합창단 등의 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학술제는 오는 15일 낮 1시부터 이한열기념관에서 ‘6월 민주항쟁의 의미와 오늘날의 청년운동’을 주제로 진행된다.

 

Q. 6월 민주항쟁 30년을 맞은 올해, 국민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맞서 촛불시위를 행한 결과로 민주화에 더 다가서게 됐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A. 선배가 그러더라. ‘돌 한번 안 던졌는데 정권이 무너졌다’고. 이렇게 온 국민이 나서서 수개월 동안 평화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표현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이에 ‘30년 전의 6월 항쟁 같은 희생이 없다면, 이것이 가능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최루탄에 쫓기면서도 직선제 요구를 관철했던 시민들의 경험이 밑바탕이 돼, 작년 겨울의 지난한 투쟁을 해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경쾌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사회가 훨씬 성장했다고 느낀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감시하지 않으면,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처럼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권리를 지키려면 끊임없이 따지며 제대로 요구해야 한다.

 

Q. 촛불시위의 주역에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온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한열사업회의 이사로서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누구나 자기의 시대를 산다. 또 누구나 자기 앞의 문제를 해결하며 산다. 비록 문제의 성격과 내용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 문제의 근본에는 ‘나는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이 놓여있다. 그리고 최루탄을 맞으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우리세대나 지독한 경쟁으로 신음하는 지금세대나 모두 이런 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옆에서 알려주지 않아도 자기 자신은 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이다. 자기 앞에 놓인 질문에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답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Q. 향후 이한열사업회의 활동방향성에 대해 알고 싶다.
A. ‘이한열’이라는 이름은 이한열 개인을 넘어, 80년대를 살며 사회문제에 목숨까지 내놓고 행동했던 사람들을 대표한다. 나아가 그 시대 자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이 열사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모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한열사업회는 1980년대에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갈 것이다. 비록 천천히 갈지라도 쉬지 않고 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이한열사업회의 바람이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