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영 보도부장 (국제관계/언홍영·14)

‘권선징악(勸善懲惡)’ 몇백 년 전 고전소설에서부터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결말이다.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이 익숙한 말은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3살배기 때부터 여기저기 얻어터지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말이다. 이처럼 ‘권선징악’은 우리 사회에 가장 기본적인 정의로 자리하고 있으며, 사회를 넘어 국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아팠던 진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았는가. 4대강 사업,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실을 알게 된 우리는 한없이 비참해졌다. 상실감. 배신감. 허무함. 바르게 살면 볕 들 날이 올 거라 믿으며 지난 세월을 묵묵히 버텨왔기에, 드러난 지도자의 뒷면은 그동안 지켜왔던 불안한 희망조차 처참히 앗아갔다. 이제는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할까? 밝혀지는 촛불 하나가 천만의 빛이 돼 결국 어둠은 몰아냈지만,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여전히 우리는 갈 곳을 잃은 채 남아있다. 이젠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

 

그럼에도 쫓아야 하는 이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더 깊이 숨겨졌던 진실이 드러나려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지난 정권뿐만이 아니라 더 이전의 과거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동안 논란은 됐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다시 심판대에 오른 것이다. 권력의 진상을 아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지만 역시 두려운 일이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온 환상이 깨질 것이 겁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진실을 갈구하고 아픔을 감수할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봐 봤자 장님에 귀머거리로 연명할 뿐, 바뀌는 것은 없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생물이기 때문에 ‘아픔’을 통해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주성을 잃고 나 자신을 잃어버릴 때,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인형으로 손쉽게 전락한다. 권력에 대해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우리 자주성의 마지노선이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기득권을 경계하고 감시하면서 진실을 쫓는 이유다.


결국, 나쁜 짓은 드러난다
 

그들이 그토록 감추려 했던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정에 섰으며, 대한민국 강물을 녹색으로 바꾼 4대강 사업은 정책 감사에 들어갔다. 진실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직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정권 교체로 하나 확실해진 사실은 있다. ‘결국 나쁜 짓은 드러나게 돼 있다.’

작은 진실을 원했던 모 대학 여대생들의 시위가 불씨가 돼 이어져 있던 연쇄 고리를 타고 점점 번져나가 결국 한 나라의 지도자를 무너트렸고, 현재는 또 다른 진실을 파헤칠 계기를 제공했다. 우리는 아직 알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고, 밝히려는 어둠 속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작은 진실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그걸 힘으로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다.

 

변화의 바람은 불어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불안하다. 이미 정의가 없는 사회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새로운 정부가 정의구현을 하겠다고 말하는 게 곳이 곳대로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나는 또 다시 기대를 하게 될 것 같다. 이 바람이 순풍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다시 부서질 환상을 다시 품는 것은 아마도 이 아픔의 결과가 권선징악으로 돌아온다는 정의를 믿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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