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 및 자사고 폐지해야

송준원 (사학·16)

2017년, 여러 가지 의미로 봄바람이 불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문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이 주목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외고 및 자사고 폐지’다. 외고와 자사고가 고교서열화를 심화시켜 중학생들의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 이유다. 새 정부는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면 고등학교 수준이 대체로 평준화되고 사교육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그 방식은 현재 외고, 자사고가 일반고보다 먼저 신입생을 뽑는 제도를 개정하여 똑같은 시기에 학생을 뽑게 한다는 것. 그렇게 하면 외고와 자사고가 우수한 학생들을 선점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교평준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모교에 미안하지만 자사고 출신인 나도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해야 한다.’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완전히 평등해지기는 어렵다. 개인의 타고난 지능, 그리고 가정과 지역의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전반적인 교육환경과 같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능력과 환경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국가의 제도는 이러한 자연적 차이를 보완해줘야 한다. 그래야 모든 학생에게 어느 정도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고와 자사고의 존재는 오히려 이러한 차이를 부각하고 있다.

837만 원. 이 숫자를 보았을 때 연세대 학우 여러분은 본인의 1년 치 등록금이 떠올랐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국 사립 외고의 평균 1년 치 학비에 해당한다. 자사고도 평균 825만 원으로 별반 차이가 없다. 공립 외고는 500만 원을 웃돌아 그나마 낫다. 그래도 100만 원에서 300만 원 정도의 일반고 학비보다는 아주 비싼 수준이다. 많은 외고와 자사고가 공부환경이 좋다고 알려져 있고, 대부분의 일반고보다 입시실적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돈을 쓰는 만큼 결과를 낸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입시실적이‘공부를 잘하는 만큼’이 아니라 ‘돈을 쓰는 만큼’ 나온다는 점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도 외고나 자사고의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면 해당 학교 입학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일부 외고와 자사고는 신입생을 선발할 때 면접을 보거나, 학교 외적인 활동이나 성적을 요구하고 있어 사교육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에게는 상황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셈이다. 사교육 시장도 쓸데없이 커지게 한다. 실제로 학구열이 뜨거운 것으로 유명한 강남의 D 지역에서는 자사고인 H고가 신입생 선발 방식을 추첨에서 면접으로 바꾼다고 알려지자 그 지역에 면접 학원이 우후죽순으로 새로 생겨났다. 기존의 논술학원도 ‘H고 면접 준비반’과 같은 강의를 재빠르게 신설해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학생들이 ‘재력’이 아니라 ‘실력’으로 기회를 보장받고,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외고 및 자사고의 폐지는 필수다.

외고, 자사고를 폐지하면 대학 입시에서 수시 제도의 허점도 개선할 수 있다. 현재 수시가 가장 비판받고 있는 점이 고등학교마다 수준 차가 있음에도 내신 성적을 일괄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외고의 내신 3.7과 일반고 내신 3.7은 같다. 물론 대학마다 수준 차를 고려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있어도 학교가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만큼 신입생 선발기준이 모호해 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해 어느 정도 고교평준화가 이뤄지면 내신 성적에 대한 비판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외고, 자사고를 폐지한다고 모든 학교의 수준이 비슷해질 수는 없다. 고등학교별 수준 차는 줄어들어도 지역별 편차는 여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외고와 자사고가 있어 지나치게 서열화되어있는 것보다는 낫다.

정리하자면 학생들의 평등한 교육권 보장, 그리고 수시 제도의 정당성 확보, 이 두 가지가 내가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아무쪼록 문재인 정부는 외고 및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실현해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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