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폐지 예정이던 장애등급제, 현실은?

▶▶ 광화문역사 지하보도에 위치한 장애등급 폐지 농성장의 모습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복지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몇 해째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장애등급 족쇄’

장애등급제란 한정된 예산으로 장애의 정도에 따라 장애인에게 효율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89년에 도입된 제도다. 우리나라는 현재 15개의 신체적·정신적 장애유형을 의학적 기준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나누고, 이에 맞춰 차등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줄곧 장애등급제에 대해 ‘장애인 각자에게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지적이 있어 왔다. 서울 소재 장애인복지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김모(29)씨에 따르면 “현행 제도는 의학적 기준에만 의존해 복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장애인 개개인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장애의 성격이 달라 장애인 각각에게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다른데도 정부는 등급에 따라 일률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기획관리실 관계자 A씨는 “같은 지체장애* 1급이라도 개인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복지서비스가 다르다”며 “하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1급 지체장애인 모두가 일률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행 제도상 1~3급 외의 장애인은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하기 어렵다. 대학생 B씨는 “등교나 수업 중 이동 등을 차질 없이 하려면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만 4급으로 판정받아 활동보조인 신청이 어렵다”고 전했다. 학교에 다니거나 직업, 상황에 따라 활동보조인이 필요한데도 4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복지서비스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한편 대부분의 장애인이 재판정을 꺼린다는 점도 문제다. 장애인들은 장애등급 소멸시효가 지나면 등급 재판정 통지서를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등급 재판정을 위한 비용이 부담될 뿐만 아니라 재판정 시 장애등급이 하향조정되는 경향 때문에 재판정 시기를 미룬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등급 재판정 시 1급 장애인과 2급 장애인의 등급 하향비율은 각각 약 37%에 달했다. 장애등급 재판정 시 등급이 하향조정되는 이유에 대해 묻자 A씨는 “복지제공 주체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수 년 간의 치료와 재활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현재 등급재판정시스템은 개개인에 알맞은 복지를 제공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복지제공 대상에서 제외할 장애인을 늘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에 많은 장애인들이 복지서비스 신청에 필요한 장애등급 재판정을 미뤄 그나마 제공받던 복지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장애복지정책은 수년째 제자리걸음

장애등급제 완전폐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이후 장애등급제 폐지에서 장애등급제 개편으로 계획을 뒤집었다. 등급 완전폐지가 아닌 기존 1~3급의 장애를 중증으로, 4~6급의 장애를 경증으로 기존 등급을 간소화한다는 것이다. 장애등급 간소화에 대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는 2013년 6월부터 12월까지 일부 서울 지역을 대상으로 1차 시범사업을 시행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현재, 3차 시범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애초 약속했던 장애등급 완전폐지가 아닌 등급 간소화로 시범사업이 이뤄지고 있어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크다. 장애등급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 220여 개 장애인단체 연합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폐지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부터 광화문역사 지하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농성을 수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시위에도 참여했다는 B씨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장애등급 완전폐지”라며 “장애등급 간소화는 현 제도의 문제점을 답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제19대 대선 기간 동안 주요대선후보들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선거 기간 중 장애인의 날 열린 시위에서 장애등급제 폐지를 약속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 이후 ‘장애등급제 완전폐지 실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범사업 세부내용이나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해 논의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장애등급제 완전폐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선별적 복지가 이뤄지지 않아 과도한 행정비용을 초래하거나 중증장애인에게 돌아갈 혜택은 도리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장연 관계자 A씨는 “장애등급제 폐지를 놓고 우려하는 의견 중 다수는 오히려 현재 제도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며 “오히려 장애인의 요구가 아닌 예산에 맞춰 등급과 복지서비스를 제공해 중증장애인에게 적절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장애등급을 매겨 차등적인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그마저도 의학적 기준으로만 장애등급을 판정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장애인 개개인의 상황에 맞춰 장애등급을 판정해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장애복지제도는 오히려 장애인이 ‘장애등급이라는 장벽’에 직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장애인 각각에게 알맞은 복지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정책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 정부가 4년째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장애복지정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지체장애: 선척적 또는 후천적인 원인으로 골격·근육·신경 계통의 질환, 손상, 기능 및 발달 이상이 발생해 신체의 이동과 움직임 등에 제약을 초래하는 신체적 기능의 손상.

 

 

글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그림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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