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지 보도부장 (econ·15)


“나는 결혼에 적합한 여자가 아니야. 나는 결혼에 따라오는 제반의 의무를 이행할 의지도 자신도 없어.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결혼은 집안과 집안과의 결합이야. 그러니까 나는,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닌 그냥 나로 살고 싶어.”

- KBS2 주말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 중 -

시대와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면서 그 변화를 담아낸 인물들이 드라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변혜영은 고구마를 먹은 듯한 답답함 일색이었던 그동안의 청순가련 여주인공과는 달리 사이다 같은 시원한 성격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변혜영이 한국사회의 결혼에 대해 비판하며 비혼주의적 입장을 내세웠고, 20대 30대 여성들은 이에 환호했다. 우리가 환호한 이유는 단순하다.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어야 한다는 것.

‘의무’ 아닌 ‘선택’


얼마 전 취업을 앞둔 20대 후반의 지인을 만났다. ‘어차피 결혼하면 일도 그만둬야 할 텐데 취업하지 말고 결혼이나 할까 봐’라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만큼이나 중요한 ‘의무’다. 그리고 이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여성은 희생을 강요받는다. 결혼하면 ‘출산’이라는 또 다른 ‘의무’가 생기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실이다. 이로 인해 힘들게 쌓아 올린 경력이 한순간에 단절되는 일도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선택’이 아닌 ‘의무’로 여겨져 왔다.
너무나도 진부하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네가 어디가 부족해서 결혼을 못 했어?”


어디가 부족해야만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마치 인생의 최종 미션에 실패한 사람처럼, 마치 불완전한 존재인 것처럼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사람들이 똑같은 결혼 생활을 영위하고 똑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왔고, 겪어온 경험도 다르다. 그러니 서로 다른 결혼관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선택’하지 않을 자유


최근 중국에서 S 화장품 브랜드 광고가 화제였다. 광고는 학벌도 좋고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여성이 ‘자신과 어울리는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전근대적 가치관을 지닌 부모와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 여성은 결국 결혼을 위한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주장했고, 비혼만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며 중국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전했다. 타인에 의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결혼을 ‘선택’할 권리를 뺏기지 말라는 것이 이 광고의 핵심이다.

물론 비혼을 무조건 찬양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런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 등 수없이 많은 말들에 휘둘리고 흔들리지 말자.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와 외부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내린 결정은 아니기를 바란다.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분명히 있다. 나를 위해 선택하고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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