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소외계층, 노년 디지털 문맹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가속화된 디지털화로 ‘디지털 문맹(Digital literacy)’은 우리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문맹은 디지털화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소외계층을 말하는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이용 등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장애인, 이민자 등을 칭한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문맹 문제는 빠른 고령화와 맞물려 심화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미비한 상태다. 이들은 과연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을까?

어떤 이에게는 불편해진 일상

#1. 은행 업무가 노인에게는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 아직 대다수의 노인은 은행 점포에서 거래하고 있지만 폐점하는 은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국내 6개 주요 은행의 176개 이상의 점포가 사라졌다. 올해 폐점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포 역시 415개에 달한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을 확대하고 점포를 통폐합으로써 은행의 운영비용 감축과 동시에 금융소비자의 편리를 증대한다는 것이 은행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인 금융소비자의 편리성과 금융접근성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뱅킹 이용자 중 60대 이상의 비율은 5%에 그친다. 근처 은행이 폐점돼 매번 버스를 타고 은행에 방문한다는 이진숙(64)씨는 “휴대전화로 전화와 문자만 겨우 하는 사람이 모바일은행 업무를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버스를 타고 은행을 오가는 것이 번거로워도 창구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 대중교통 이용에서는 디지털 문맹이 경험하는 디지털 격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속버스는 몇 년 전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예매, 좌석 지정 등을 할 수 있는 앱 서비스를 강화했다. 이에 전보다 편리함을 느끼는 탑승객이 많아졌지만, 앱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디지털 문맹은 오히려 고속버스 자리예매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됐다. 모바일 예매로 금방 매진되는 표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버스 출발 시각보다 훨씬 일찍 오거나 매진된 버스의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4일 저녁,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 강릉행 버스 앞에 서 있던 대학생 김표진(26)씨는 “10시 버스로 예약했다가 늦을 것 같아 앱을 통해 다음 버스표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버스 앞에 서 있던 김남기(71)씨는 “몇 시간 전부터 10시 이후 차는 모두 팔려 버스표를 구매하지 못했다”며 “혹시 예매취소나 빈자리가 생길까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철도도 마찬가지다. 한국철도공사는 코레일 앱을 통해 기차 시간 안내, 예매, 마일리지 특실 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코레일 측에 의하면 해당 앱에 가입한 회원 중 77.84%가 20~40대다. 반면 60대 이상은 전체 앱 이용자 중 7.16%에 불과하다. 디지털화로부터 소외된 디지털 문맹은 일상에서 시간을 더 소비해야할 뿐만 아니라 각종 혜택의 기회도 박탈당하고 있다.

#3. 최근 무인 자동판매기가 영화관,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영화관의 경우, 무인 자동판매기 개수보다 매표창구 개수가 현저히 적은 상영관도 있다. 이에 무인 자동판매기 이용이 어려운 디지털 문맹은 영화상영시간보다 훨씬 일찍 와서 매표창구를 통해 표를 구매하거나 영화 시작 전,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패스트푸드점 역시 빠른 속도로 무인 자동판매기를 늘려가고 있다. 현재 다수의 패스트푸드 매장이 카드결제는 모두 무인 자동판매기로만 거래를 하거나 특정 시간에는 무인 자동판매기로만 주문을 받고 있다. 이에 편리해졌다는 고객들의 평가도 있지만, 노인 등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주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탑골공원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해당 지점은 노인이 주 고객층임에도 불구하고 무인 자동판매기를 도입했다. 이 지점의 직원은 “무인 자동판매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전했지만,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이마저도 한계가 있었다. 무인 자동판매기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백성업(66)씨는 “젊은이들은 편할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자동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햄버거 하나 먹기도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 탑골공원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 자동판매기

신분증마저 모바일화?

한편 신분증도 곧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폐공사 김화동 사장은 지난 2016년 11월,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전자여권 등 모든 신분증을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화폐, 유가증권 등 특수 보안제품을 제조하는 공기업 한국조폐공사는 최근 ‘블록체인(block-chain)’*을 활용한 모바일 신분증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년 디지털 격차도 무시할 수 없지만 특히 신분증은 대체품이 없는 만큼 모바일화에 대해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모바일 신분증 개발이 완료돼 행정자치부, 외교부 등 관련 주체들과의 협의가 이뤄지면 주민등록증과 여권이 모바일 신분증으로 대체 발급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조폐공사 관계자는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 사업 주체나 구체적인 세부계획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 신분증 상용화가 목표”라고 전했다.
물론 모바일 신분증은 개인정보 유출방지나 분실위험방지와 같은 기대효과가 있다. 하지만 특히 노년층의 경우, 대체품이 없는 모바일 신분증화는 불편함과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 이에 모바일 신분증의 점진적 도입이나 사전교육 등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디지털격차해소팀 김봉섭 팀장은 “모바일 신분증을 도입한다면 노년 디지털 소외층을 위한 대책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년 디지털 문맹과 상생하는
시대가 되기 위해선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015년 9월부터 3개월간 정보격차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장·노년층의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56.3%에 그쳤다. 김 팀장은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이나 사용률 자체를 보면 표면적으로 접근성이 높아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디지털 소외계층이 디지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앞서 말한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웹사이트를 개편하거나 보조기기 마련,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정부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나 노인복지기관은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IT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 규모 등의 면에서 아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다수의 복지관은 수강생 대비 강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강사도 대부분 봉사자나 한두 달 근무하는 단기인력이다. 이에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힘든 실정이다.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IT 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하는 박모(71)씨는 “수업을 들으며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수강생에 비해 강사가 부족해 일일이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김 팀장은 “고층건물이 발달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분을 위한 엘리베이터도 함께 발전하지 않았느냐”며 “상생을 위한 노력이 이뤄진다면 기술발전은 모두에게 조금 더 나은 일상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빠른 적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 소외계층을 도외시한다면, 격차 심화로 인한 사회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제는 갈수록 벌어지는 디지털 격차를 좁히기 위한 상생의 방향을 고민해 볼 시점이다.

*블록체인(block-chain): 가상 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

 

글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그림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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