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인 매거진부장 (국문/정외·15)

 신문을 보는 족족 당황스럽다. 점심시간에 참모들과 커피를 마시며 청와대를 산책하는 직장인 같은 모습의 대통령이나, 페이스북에 하루 일과를 올리는 대통령은 한국에는 ‘원래 없는’ 줄 알았다.

작년 봄에 정치학개론 수업을 들으며 권위에 대한 막스 베버의 이론을 배웠다. 권위에는 전통적 권위, 카리스마적 권위, 합법적 권위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고 했다.
 
‘박근혜의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당시 강의실에 앉아 있던 거의 모든 사람이 가졌던 의문일 거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이던 당시에도 위안부 합의와 세월호 특검 무산, 테러방지법 표결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퍽 나빴다. 교수님께서는 “참모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박근혜 대통령도 나름대로 카리스마가 있다고 하더라”며 “말을 아끼는 대신 눈빛을 쏜다더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친구들과 함께 대통령 욕을 할 때면 나는 중간에 양념처럼 “그래도 눈빛이 장난이 아니래”라는 말을 중얼중얼 주워섬겼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만한 코미디가 없다. 국민이 대통령의 권위를 도저히 확인할 길 없어 ‘눈빛을 쏜다더라’느니 수군거리고 있었다.
또 참 애잔하다. 박근혜가 아니라 내가. 맘에 안 차는 대통령을 욕하면서도 ‘우리나라 대통령도 어찌 되었건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확인할 수 없는 소문을 믿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정권교체 며칠만에 위안부 합의를 이행할 수 없다는 일본 총리와의 통화가 있었고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체, 정윤회 문건 사건 은폐에 대한 진상 조사가 지시됐다. 국정 교과서도 폐지됐다. 대통령의 권위를 국민들은 ‘눈빛’ 운운하는 찌라시 소식이 아닌 언론에서 확인받았다. 그리고 대통령의 권위는 국민들이 애써 이유를 붙이고 발굴해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제 할 일을 할 때 스스로 생기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또한 권위에는 ‘쏘는 듯한 눈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스스로 외투를 벗고, 식권을 내고 식판에 계란볶음밥을 타 먹는 대통령도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지난한 과정을 지나 여당은 야당이 되었다. 며칠 동안 정부는 전임 정권의 적폐를 정리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정권이 국민들의 바람에 부응하며 대통령의 권위를 지켜 나갈 것인지는 5년 동안의 행보가 결정할 것이다. 그 권위는 대통령이 ‘보여줘야’하는 것임을 이제 국민들은 안다.

기대된다. 앞으로 새 정권은 어떤 권위를 보여줄 것인가. 또, 전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 이후에 문재인 정권이 제시할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연세인들에게 이번 대선은 유권자로서 치르는 첫 대선이다. 나 또한 유권자로서 첫 한 표를 행사한 만큼 이번 정권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크다. 이에 실망하는 일이 없으려면 결국 우리들은 다시 비판적 지식인으로 돌아가서 대통령의 권위에 한 치의 거품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지금 품었던 기대를 앞으로도 잊지 않겠다. 새 정권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남기는 발자취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지켜보며 역사의 증인이 되고자 한다. 촛불을 들었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대통령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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