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광주에 가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즈음 여자가 말한다.
먼저 가신 임들을 위해 묵념합시다.

『소년이 온다』 中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군인의 총에 죽어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을 위한 묵념 그 자체다. 2017년 5월, 그 묵념의 문장들을 따라 전남도청과 5·18 민주광장, 전일빌딩, 그리고 전남대 병원으로 향했다.

▶▶ 시민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옛 전남도청 별관.

그 사람들은 나라가 아니다

소설은 ‘너’인 중학교 3학년 동호가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을 도와주며 친구 정대를 찾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동호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역에서 벌어진 군인들의 무차별 총격으로부터 도망치던 중 정대의 손을 놓쳤다. 정대를 찾으러 온 전남도청에서 동호는 수피아여고 3학년인 은숙과 시민군이자 대학생인 김진수를 만나고, 일을 도와달라는 은숙의 부탁에 시신을 수습하고 장부를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다. 은숙과 김진수의 일을 도우면 정대의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동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각종 집회를 열었던 5·18 민주광장.

기자는 소설의 주된 배경이지만 이제는 허름한 건물로 남은 옛 전남도청 별관(아래 별관) 앞 5·18 민주광장에 섰다. 별관은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이 항전을 벌였던 곳이며 동시에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식이 있었던 곳이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 시민군 김진수는 계엄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마주하지만, 결국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김진수는 약 40만 명이 사는 광주에 약 80만 발의 탄환을 가지고 들어온 계엄군에 맞서 총기를 ‘소지’하기만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죽이지 않고 죄 없는 시민을 계엄군으로부터 보호했던 김진수는 극렬분자로 분류돼 비녀 꽂기*,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한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중략…)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곳에 태극기로 감싸진 수십 개의 관이 놓이고, 추도식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보며 동호와 은숙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도식을 지켜보며 시신 수습을 마무리하던 은숙은 동호에게 시민을 죽인 정부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작가는 은숙의 대사를 통해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않는 정부는 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5·18 민주화 운동 이후로도, 대한민국 정부는 종종 사람의 죽음을 방관하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3년이 지나서야 인양됐으며, 공권력의 힘에 농민이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은숙의 ‘그 사람들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말은 37년이 흐른 현재에도 유효한 말이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지 않는 정부는 먼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기자가 바라본 5·18 민주광장의 모습은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9일간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화로웠다. 별관 옆으로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들어서 있으며 광장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 속에서도 별관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지난 2013년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설립이 논의되면서 별관은 철거될 위기에 처했지만,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의 반발로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한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별관을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하려고 시도하고 있어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이와 관련해 5·18 민주유공자유족회가 별관 바로 앞에 천막을 치고 별관을 복원하기 위해 농성 중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총탄

▶▶ 5·18 민주광장 내 분수대와 최근 헬기 사격의 흔적이 발견된 전일빌딩

기자는 동호의 시선을 따라 옛 전남도청 건물에서 분수대로 움직였다. 이곳 분수대를 바라보며 동호는 정대를 잃어버린 날을 떠올린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소설에서 동호는 총격이 있던 전일빌딩에서 분수대 쪽으로 달리다가 정대를 잃는다. 기자는 동호의 움직임을 거슬러 분수대에서 전일빌딩 앞으로 갔다. 최신식 건물이 들어선 금남로 거리에는 별관과 전일빌딩 단 둘만이 1980년 5월에 머물러 있었다.

시상에, 옥상이여.
네 옆에 서 있던, 머리가 반쯤 벗어진 아저씨가 숨차게 중얼거렸다.
……옥상에서 영규를 쐈어.

기자는 10층짜리 전일빌딩의 맨 꼭대기 층과 옥상을 올려다봤다. 그동안 이곳에서 계엄군이 총을 쐈다는 사실은 심증으로만 남아있었다. 이 건물에서 총알이 날아왔다는 사람들의 증언만이 있을 뿐, 탄피나 탄흔과 같은 결정적 물증이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16년 8월 광주시가 전일빌딩을 공공도서관, 컨텐츠 영상 미디어 센터 등 복합콘텐츠 개발 센터로 조성하기 위해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중 10층에서 탄흔이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10층 벽에는 수많은 탄흔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탄흔이 퍼진 모양을 통해, 헬기를 상공에 띄우고 계엄군이 그 안에서 기관총을 연달아 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광주시는 전일빌딩 리모델링 사업을 계속 진행하되 10층과 전면부 건물은 원형대로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탄흔이 전두환의 ‘5·18 당시 공수부대의 헬기 사격은 없었다’라는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에서는 이 탄흔을 당시 계엄군의 광주 시민 학살에 대한 전두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증거로 보고 있다.

시민군 마지막 날, 전남대 병원에서는

▶▶ 5·18 민주광장 내 분수대와 최근 헬기 사격의 흔적이 발견된 전일빌딩

동호의 이야기만큼이나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살아남은 은숙의 기억이다. 은숙은 시간이 지난 후 1980년 광주의 기억을 희곡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희곡을 쓰기 위해 은숙은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증언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다. 별관에서 함께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을 인터뷰하기 전날, 은숙은 시민의 총격이 있었던 전남대 병원의 마지막 밤을 떠올린다. 은숙은 그날 밤 계엄군의 공격을 피해 별관에 있던 여자들 몇몇과 남동성당 골목을 지나 전남대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은숙은 그곳에서 사람들의 공포를 목격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시민군의 마지막 저항소리를 듣는다.
은숙의 기억을 함께 되짚으며 기자 역시 큰 길이 아닌 남동성당을 통해 전남대 병원으로 향했다. 전남대 병원은 전일빌딩에서 도보로 15분 쯤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은숙의 기억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 기자는 전남대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별관이나 전일빌딩과 달리 전남대 병원은 사람이 아직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다.

어쩌까나. 군인들이 들어온담서.
부상자들은 전부 총살해버린담서.
(…중략…)
군인들 퇴각하던 날에도 총알이 날아와서,
여그 창가에 걸어논 옷에 구멍이 뚫렸다마시.
사람이 서 있었으면 어떻게 됐겄는가.
(…중략…)
엄마, 창문 닫어줘. 닫았어.

더 꽉 닫어. 꽉 닫었다니까.

은숙의 기억 속 전남대 병원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부상당한 여고생도, 그녀의 어머니도, 간호사도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저 평범했던 광주 시민들이 느꼈을 공포를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중략…)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기자는 2층으로 올라가 은숙처럼 전남대 병원 창문가에 기대봤다. 불 보듯 뻔한 시민군의 죽음을 예상하며 은숙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귀도 막지 않고 눈도 감지 않은 은숙은 동호와 김진수를 떠올린다.

소년이 온다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에 기자는 천천히 전남대 병원 계단을 내려왔다. 전남대 병원 한쪽에 마련된 비문을 지나며 이 소설의 후반부를 떠올렸다.
결국 동호는 계엄군의 마지막 공격 날 죽는다. 진수는 사상범으로 복역한다. 은숙만이 살아남는다. 은숙은 그날 동호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죄책감과 부채의식 때문인지 은숙은 녹음테이프에서 환청처럼 발걸음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날, 은숙은 그 발걸음 소리의 주인인 동호와 상상 속에서 마주본다. 적어도 은숙에게는 그 발소리의 주인은 동호다. 은숙에게는 그 소년이 오고 있었다.

고요히, 더 고요히 울리는 발자국 소리.
느린 춤의 스텝을 연습하는 아이처럼,
반복해서 제자리를 딛는 두 발의 가여운 울림.
(…중략…)
……동호야.

그러나 그 발소리의 주인이 꼭 그 소년 하나뿐인 것은 아니다. 작가는 그 소년은 ‘서로 스미고 번져 하나가 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몰라.
언제나 같은 사람인지,
그때마다 다른 사람인지도 몰라.
어쩌면 한 사람씩 오는 게 아닌지도 몰라.
수많은 사람들이 희미하게 번지고 서로 스며들어서,
가볍디가벼운 한 몸이 돼서 오는 건지도 몰라.

그 소년은 동호이기도 하고, 김진수이기도 하고, 은숙이기도 하다. 그 소년은 결국 군인의 총칼에 짓밟힌 사람의 군집이고, 양심 때문에 사람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한 사람의 군집이고, 어린 아이를 살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의 군집이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그 소년이다.
전남대 병원을 나와 광주송정역으로 가기 위해 잡은 택시 안에서 기자는 택시 기사에게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택시 기사는 자신의 삼촌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9일간의 기억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흔,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 금지까지. 기자는 택시 기사의 모습에서도 ‘소년’을 봤다.

광주를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다. 묵념 다음은 기억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묵념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우리에게는 어떤 소년이 오고 있을까.

*비녀 꽂기 : 손가락 마디 사이에 볼펜을 끼우고 그 볼펜을 꺾어 손가락 뼈를 으스러뜨리는 고문.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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