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장애인 참정권

19대 대통령 선거(아래 대선)에서 ‘투표하는 것’은 쉽다. 시간에 맞춰 지역구의 투표소에서 투표하면 된다. 사전 투표를 하는 것은 더 쉽다. 굳이 지역구의 투표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근처의 어떤 사전투표소에서든 투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쉬운’ 투표가 장애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투표 뿐만이 아니다. 선거 공보를 읽고, 선거 방송을 보고, 뉴스를 보는 것 모두 장애인에게는 난관으로 가득하다. 

 

투표하기 진짜 힘드네!

 

9일(화)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한 A(22)씨는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지난 4일 신촌동 자치회관(아래 자치회관)으로 향했다. A씨는 전동휠체어에 탄 채 주차된 차를 어렵게 지나 경사로를 올랐다. 자치회관 안으로 들어가자 A씨 앞에는 이미 줄을 선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투표소는 1층에 설치돼 있었다. A씨는 기표소에 들어갔다 나오며 전동휠체어를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를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기표소 간 간격이 좁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투표권과 관련된 문제로는 ▲휠체어 사용에 불편한 환경 ▲점자유도블록의 미흡한 설치 ▲수화 투표 도우미 인력 부족이 있다.
우선 지체장애인은 휠체어를 사용하기 불편한 환경 때문에 투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환경은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1층에 위치한 사전투표소는 전체 사전투표소 3508개 중 약 48.29%인 1694개로 50%가 채 되지 않는다. 특히 1층이 아닌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시설을 갖추지 못한 투표소는 641개로 약 18.27%에 달한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유도블록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은 투표소도 많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20대 총선 당시 전체 투표소 1만 3837개 중 8354개인 60.5%는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20대 총선 이후 1년이 흐른 현재 서대문구 투표소의 사정도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연희동 주민인 시각장애인 윤(23)모씨는 “점자유도블록이 중간에 끊겨 있기 때문에 이 길을 모르는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혼자서 찾아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연희동 주민센터 앞의 점자유도블록은 건물까지 이어져 있지 않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많이 찾는 신촌동 자치회관 앞에도 점자유도블록은 끊어져 있다. 신촌동 자치회관은 연희동 주민센터와 달리 차도에서 바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안전 문제가 더 심각하다.
현재 수화 투표 도우미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수화 투표 도우미는 투표소에 배치돼 청각장애인에게 수화로 투표 과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수화 투표 도우미 제도는 지역별 최소 배치 인원이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일괄적으로 수화통역사를 모집해 필요한 투표소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서대문구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모든 투표소에 수화 투표 도우미가 배치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애초에 수화통역사의 숫자가 적다”며 “관내 청각장애인이 많은 투표소에 수화통역사가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이번 대선에서 서대문구 관내 모든 투표소에는 수화 투표 도우미가 배치되지 않았다. 이에 우리대학교 청각장애인 B씨는 “사전투표소는 관내인 뿐 아니라 관외인도 투표가 가능한 만큼 수화 투표 도우미가 배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으로는 못 읽는 선거 공보

 

물리적으로 ‘투표를 하러 가는 것’도 어렵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어떤 후보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후보자들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선거 공보가 시각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형태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 공보에 대한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은 일부 개선된 상황이다. 개정된 『공직선거법』 제65조 4항에 의하면 선거 후보자는 점자형 선거 공보를 제출하거나 바코드나 QR코드와 같은 전자적 표시를 통해 음성형 선거 공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는 시각장애인용 선거 공보물 제작이 처음으로 법제화됐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에도 불구하고 시각장애인용 선거 공보에는 ▲중증 시각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음 ▲선거공보 제공 형태가 후보자의 재량에 달려있다는 것 ▲점자형 선거 공보의 면수 제한으로 인한 정보 누락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음성형 선거 공보는 중증 시각장애인이 사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음성형 선거 공보는 카메라와 공보물 간의 거리, 각도, 카메라의 초점 등을 정확하게 맞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중증 시각장애인은 사용하기 어렵다. 시각장애인 C씨는 “중증 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어렵다”며 “주변에 도와줄 보호자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C씨는 “장애인 스스로 주변의 도움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선거 공보가 나와야 할 것”이라 덧붙였다.
게다가 현행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선거 공보를 점자형으로 제공할지 음성형으로 제공할지에 대한 선택권이 장애인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자에게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 유권자는 일방적으로 점자형 혹은 음성형 선거 공보를 제공받을 수밖에 없다. 장애의 정도와 유형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같은 시각장애인일지라도 누군가는 점자형을, 누군가는 음성형을 선호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점자와 음성 중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줬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점자형 선거공보를 의무화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이 점자형 선거 공보를 일반 선거 공보의 면수 이내에서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 김보일 교수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되는 한글과 달리 점자는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표기하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표시하더라도 면수가 더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행법은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결국 이에 따라 점자형 선거공보에 들어가는 정보는 일반 선거 공보에 비해 몇 가지 누락돼 빈약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이러한 규정은 차별적인 정보 제공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유권자의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눈으로도 못 듣는 선거 방송

 

청각장애인은 토론회와 방송연설 등의 선거방송을 볼 때 불편을 겪고 있다. 수화 방송, 자막 해설 방송 등의 장애인 지원 방송 제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현재 청각장애인 장애인 지원 방송은 ▲수화 방송 장면의 크기와 부족한 수화통역사 수 ▲후보자와 방송사의 선택에 달린 장애인 지원 방송 제공 여부라는 문제점이 있다.
우선 현재로써는 수화 방송 장면이 전체 화면에 비해 작으며, 토론회의 경우 수화통역사가 한 사람 뿐이어서 토론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어렵다. 또 수화통역사의 노동 강도 또한 강하다. 이와 달리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수화 방송 장면이 크고 수화통역사 또한 여러 명이다. 이에 이경화(언홍영・14)씨는 “특히 이번 대선의 경우 후보자가 5명인만큼 여러 명의 수화통역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명의 수화통역사가 2시간 정도 혼자서 5명의 역할을 하다 보니 노동의 강도가 큰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또한, 장애인 유권자는 후보자・선거방송토론위원회・방송사의 선택에 따라 장애인 지원 방송이 제공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세 주체 모두 장애인 지원 방송을 제공할 법적 의무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화를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은 물론, 구화를 할 수 있는 청각장애인도 입 모양만으로 완전히 화자의 말을 이해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자막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주로 수화를 사용하는 신(21)씨는 “자막도 띄우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 자막만으로는 화자의 발언의 의도나 전체 문맥을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정치 토론회나 연설에서만이라도 수화와 자막 방송이 법제화돼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이씨는 “법적 의무가 없더라도 방송사는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장애인 지원 방송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도 볼 수 없는데, 정치 참여를?

 

시・청각장애인은 선거철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접하는 뉴스에서도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B씨는 “이러한 정보 비대칭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행동”이라며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일상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정보 비대칭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의 대책만이 있을 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장애인 지원 방송의 예능・교양 장르 편향성 ▲양적 기준에 치우진 장애인 지원 방송 평가 등이 있다. 
현재 장애인 지원 방송은 특정 장르에 편중돼 있다. 이에 따라 시・청각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정보 비대칭은 일상에서 뉴스를 접할 때도 존재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6년 방송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 방송 중 대부분은 교양과 오락 장르에만 집중돼 있으며 뉴스를 포함한 보도 장르에는 장애인을 위한 지원이 미미하다. 그러므로 시・청각장애인은 교양과 오락과 관련된 정보는 비교적 편하게 얻을 수 있지만 뉴스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접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방송통신위원회는 장애인 지원방송을 일정 비율 편성하도록 의무화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아래 방통위)의 「2015년도 장애인방송 편성의무 평가 결과」에 의하면 자막 방송, 화면 해설 방송, 수화 방송의 의무 편성 사업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대부분의 사업자가 의무 편성 비율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화는 장애인 지원 방송이 특정 장르로 치중돼 편성되는 것을 방지하지 못한다. 방통위가 장르별로 장애인 지원 방송 비율을 정하지 않은 채 방송사업자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방통위가 정한 장애인 지원 방송 의무 편성 목표치는 화면해설의 경우 평균 약 6%, 수화통역의 경우 평균 약 3%에 그친다. 이 수치는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관계자는 “목표치를 한 번에 올리기는 어렵다”며 “매해 목표치를 상향 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애인 지원 방송에 대한 평가가 양적 측면에 치우쳐 있어 유의미한 평가로 보기도 어렵다. 몇 시간 동안 장애인 지원 방송을 방영했는지 그 양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만으로는 그 방송을 완전하게 평가할 수 없다. 청각장애인 남희진(26)씨는 “수화 방송 장면의 크기나 해설 방송의 전달력 등이 떨어진다고 느낀다”며 “질적 부분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방통위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장애인 지원 방송에 대한 질적 평가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선거는 참정권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참정권의 의미는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넓은 의미의 참정권은 충분한 정보를 얻고 그를 통해 공론장에서 여론 형성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참정권. 하지만 장애인들은 평상시 ‘일상의 정치’에서부터 ‘선거’에 이르기까지 소외되고 있다.

▶▶연희동 주민센터 앞. 보도와 주민센터 간 보도블럭과 점자블럭 포장이 완벽히 되지 않은 상태이다.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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