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존재하는 투표권 사각지대

제19대 대통령선거(이하 대선)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에게 이번 대선은 조금 더 특별하다. 국민이 광장에서 목소리를 높여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대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뜨겁다. 대선 후보를 꼼꼼하게 검증하려는 유권자와 투표권 행사의 의지를 보이는 유권자가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투표권 행사,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

 

 #1.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장미대선이라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징검다리 연휴와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도 특수하다. 이에 일부 유권자는 투표권 행사와 함께 휴가까지 즐길 수 있게 됐지만 이로 인해 투표를 하지 못하는 유권자들도 있다.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근무하는 황모(58)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긴 연휴를 맞아 마트에서 여러 행사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사전투표일이었던 지난 4일과 5일 역시 일을 하느라 마트에 꼼짝없이 묶여있었다.
외식업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정진영(22)씨 또한 이번 연휴가 두렵다. 외식업 특성상 휴일에 손님이 많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처음 맞는 대선이지만 평소보다 바쁜 가게 상황에 사장님에게 사전투표를 하고 오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오전부터 요리준비를 보조해야 하지만, 선거일에는 꼭 중간에 투표하고 오겠다고 말해 볼 계획이다.
타임스퀘어의 한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A씨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연중무휴에 오전부터 오후까지 근무하는 매장 특성상 투표를 할 수 있는 3일 모두 매장에서 근무해야하기 때문이다. 일부 브랜드 매장에서는 사전투표일과 선거일에 교대로 휴무를 정해 직원들이 투표할 수 있었지만, A씨와 같이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한 직원들이 많았다.

 #2.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김종환(48)씨는 보통 아침 7시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한다. 선거일도 예외는 아니다. 사전투표일인 지난 4일과 5일도 평소와 같이 아침부터 출근해 현장에서 일했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 선거도 투표하러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3. 투표권 사각지대에 놓인 병원 근로자도 많다. 경기도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강모(32)씨는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3교대로 근무하는 직업 특성상 근무시간이 투표시간과 겹치게 되면 사실상 투표는 불가능하다. 강모씨는 선거당일, 근무 전에 잠깐 투표소에 다녀올 예정이지만 선거일마저 투표시간과 근무가 겹쳐 아쉬워하는 동료가 많다.

 

투표권 행사에도 양극화 현상?

 

우리나라는 투표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지난 2013년 1월, 사전투표제를 도입했다. 사전투표 기간 동안 유권자는 별도의 신고 없이 전국의 사전투표소 어느 곳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 유권자가 미리 부재자 신고를 해야 투표가 가능하던 부재자투표의 한계점을 보완한 것이다. 실제로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6년 총선유권자 인식조사에서 5.58%의 유권자가 사전투표제 도입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처럼 사전투표제는 ‘보다 많은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에 기여하고 있지만, 투표권 사각지대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타개책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재 선거일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 휴일로 지정돼 있다. 이에 따라 관공서 근로자의 선거일 휴무는 법적으로 보장되지만, 사기업 근로자는 그렇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사기업의 선거일 휴무 여부는 기업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선거일 휴무 지정은 노사 간에 합의를 거쳐야 한다. 한편 사기업에서도 기업 규모에 따라 ‘선거일 휴무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은 기업 운영, 수익, 대체 근로자 고용 등의 측면에서 선거일 휴무를 도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다만 「근로기준법」 제10조 ‘공민권 행사의 보장’과 「공직선거법」 제6조 2항에 따라 근로자가 선거일에 근무할 경우, 고용주에게 투표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 고용주가 이를 거부할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재해 해당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에 따르면 투표 전, 각 사업장에 투표시간 요구 관련 사항에 대해 안내를 내리고 있다. 그 이후에 법의 준수 여부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투표시간 요구를 거절한 고용주에 대해 근로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고용주에게 시정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비정규직 근로자,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마저도 활용하기 어렵다.
우선 해당 법 조항을 알지 못하는 근로자가 대다수다. 김씨는 “투표시간 요구가 법적으로 보장되는지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만약 알았다고 하더라도 정해진 업무 할당량, 생계 등을 고려해 투표시간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당 법 조항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투표를 요구하지 못하는 근로자도 많다. A씨는 “투표시간 요구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만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잃을까봐 투표시간 요구를 생각해보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소중한 한 표’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상황에서 투표권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이 ‘선거일의 유급휴일 법제화 및 노동자의 투표권 보장’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은 “민주사회의 첫 번째 기본권은 투표권 보장”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투표권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개정안이 발의된 적도 있다. 지난 2016년 6월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선거일을 유급공휴일로 보장하자’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지만 무산됐다. 이 의원은 “현행 제도는 비정규직 근로자, 비조합원 등 정치적 취약계층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제도 개정은 고용주와 근로자 입장 모두를 고려해야 하고 노사간 합의도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36)씨는 “업무 특성상 선거일 유급휴무를 시행하면 대체근로자를 구하거나 매장을 잠시 닫아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경제적 손실 때문에 시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거일 공휴일 법제화나 유급휴무 보장과 함께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서도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은 보궐선거에 해당돼 선거 당일의 투표시간이 2시간 연장 된 저녁 8시까지 투표가 이뤄진다. 하지만 보궐선거가 아닌 임기만료 후 치러지는 일반적인 선거의 공식 투표시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다. 이에 임기만료 후 치러지는 다음 선거는 이번 대선보다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지난 1998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했다. 이에 선거법 개정 전 50%에 머물던 투표율이 2009년 69.7%까지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사업장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현실적으로 전면 공휴일, 유급휴무가 어렵다면 투표시간 연장은 현 선거제도의 맹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표권은 일정 연령 이상의 모든 국민이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이다. 하지만 여전히 투표권 사각지대에서 투표권 행사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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