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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dom, for EVERY Sex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

스무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콘돔과 섹스는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꺼내기엔 민망한 소재다. 실은 열다섯보다도 어린 때부터 성(性)얘기는 비밀스러운 금기의 영역이었고, 발랑 까지거나 문란한 학생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알아도 모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십대의 터널을 지나와야 했다. 아마 이 터널을 채 못 벗어난 스물 언저리의 나이에서 어떤 콘돔이 좋은지, 애초에 콘돔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보기란 여전히, 그리고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 숱하게 지나치던 학원가나 길거리에서 콘돔을 접할 수 있었다면 좀 달라졌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주요 학원가와 길거리에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며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인스팅터스의 ‘EVE콘돔’ 박진아 대표의 이야기를 담아봤다.

이브콘돔(사진출처 인스팅터스)

Q. 회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A. ㈜인스팅터스는 지난 2016년부터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슬로건을 필두로 건강하고 깨끗한 제품과 다양한 소셜 프로젝트를 통해 성(性)문화를 개선해나가는 소셜 벤처 회사다. ‘누구나’라 함은 연령·성별·성정체성·지역·직업 등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 모두의 보편성을, ‘안전하게’라 함은 비단 피임(protected sex)뿐만 아니라 성(性)관련 제품들의 성분적 안전성, 혐오와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환경 등을 의미한다.

 

Q. EVE콘돔 브랜드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A. 보통 콘돔을 공산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콘돔은 의료기기다. 우리 몸 가장 민감한 부위와 접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성분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는 콘돔에 어떠한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돼있어도 체내로 들어오는 성분을 세척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찝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스스로도 그랬고. 이러한 지점들을 고려해 건강한 콘돔을 개발하면 생식건강을 증진하는 동시에 콘돔은 야한 성인용품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생활용품이자 헬스케어 제품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에 1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EVE’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됐다.

 

Q. 브랜드명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A. ‘EVE'라는 브랜드명은 아담과 이브에서의 ‘이브’다. 대놓고 여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기존의 콘돔시장은 콘돔을 남성용품이라고만 치부하며 노골적인 섹스어필만을 강조해왔다. 여성은 배제된 소비자 층이었던 거다. 그러한 흐름은 콘돔 자체에 대한 인식을 격하시켰을 뿐만 아니라, 콘돔이 여성의 인체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게 했다. 이는 동시에 여성의 피임 참여를 어렵게 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겪었던 것들은 EVE 브랜드가 만들어지는 데에 큰 영감이 됐다.

 

Q. EVE 콘돔의 장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EVE는 콘돔을 헬스케어적 관점에서 접근해 니트로사민(국제암연구소 기준 2등급 발암물질)은 물론, 파라벤, 합성착향료, 합성착색료, 노녹시놀-9, 글리세린 등 인체에 조금이라도 유해할 수 있는 화학물질은 첨가하지 않는다. 우리 몸 가장 예민한 곳에 닿는 물건이기 때문에 먹거리, 화장품 같은 재화보다 더욱 더 성분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콘돔이 서 있는 자리가 워낙 음지이다 보니 제조사도 소비자도 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찾아보니 이미 세계보건기구나 유수의 연구기관들에서는 콘돔 제조사들로 하여금 고무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니트로사민 검출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해왔지만, 법적 규제가 없다보니 아무도 이런 정보를 잘 모르고 있더라. 성분적 안전성이 우리 브랜드의 슬로건에 들어가는 이유다. 그 외에도 비건* 인증, 크루얼티프리** 인증, 소셜벤쳐 인증 등에 신경을 썼다.

제품성을 갖추기 위해 성감도 고려했다. 많은 콘돔들이 002, 003 같은 숫자를 달고 출시되는데, 대부분 그 숫자보다 훨씬 두껍다. 두께를 표기할 의무가 없으니 과장광고인 듯 아닌 듯한 경계선에서 판매를 하는 거다. EVE의 울트라씬은 철저하게 얇다. 또한 촉촉하기도 하고 쫀쫀하기도 하다.

 

Q. EVE 콘돔의 패키징***에 대해서도 설명해달라.

A.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지키는 콘돔의 본래적 의미를 환기하기 위해 비거니즘, 에코페미니즘 등의 가치를 패키지에 반영하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기존의 콘돔 브랜드들은 섹스어필에 초점을 맞춰왔다. 자극적인 색상이나 원색적인 브랜딩이 주를 이뤘는데, 이런 부분이 청소년과 여성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콘돔을 인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예쁘다고 느낄 수 있는 ‘desirable’한 콘돔을 만들고 싶었기에 심미적인 부분을 고려해 건강한 가치를 담고자 노력했다.

Q. 현재 청소년들을 위한 콘돔이라는 새로운 컨셉 아래 다양한 소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A. 다년간 'FRENCH LETTER PROJECT' 라는 소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온라인 신청을 통해 청소년에게 우편으로 콘돔을 무료로 보내줬다. 하지만 즉시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여전히 성인들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대치동 학원가나 홍대 대로변과 같이 번화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대문짝만하게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 청소년이 판매 거부나 신분증 검사를 당하는 부담 없이 언제든 쉽게 가져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성인들도 이 기기의 문구를 보고 ‘청소년도 콘돔을 살 수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Q.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었나?

A. 현실적인 장벽이 너무 많았다. 일단 자판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건물주의 동의가 필요한데, 많은 이들이 껄끄러움을 이유로 설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울시청과 유관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다들 관심이 없거나 거절하기 일쑤였다. 자판기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고 회의감이 들었던 부분은 재정 문제보다는 이런 문제에 공공기관에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사실 청소년들의 생식건강이나 콘돔에 대한 접근성, 실효성 있는 성교육은 공공기관에서 당연하게 담당해야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기를 만들고, 콘돔을 기부하고, 소요되는 비용까지도 전부 부담할 테니 설치할 공간만 좀 할애해달라고 부탁드리는 건데도 다들 차가운 반응만을 보였다.

이브콘돔의 청소년 콘돔 제공 프로젝트 '프렌치레터' 속 글귀(사진출처 인스팅터스)

Q. 청소년의 성(性)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EVE콘돔의 청소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이 궁금하다.

A.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섹슈얼리티는 마치 성격처럼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삶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폐쇄적인 성문화 내에서는 성인의 섹슈얼리티도 이상한 왜곡이나 유머를 빙자한 격하의 형태를 띠지 않으면 여전히 ‘남사스러운’ 일로 치부된다. 그런 와중에 10대의 섹슈얼리티는 아예 없는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삭제되는 거다.

모순되는 점도 많다. 이를테면 10대 때 성적 왜곡으로 점철된 포르노를 접하는 건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너무나 흔히 사용되는 모티프다. 그렇다는 건 10대에 성적인 경험이 시각적이든 신체적이든 시작됨을 인지한다는 건데, 그러면서도 피임교육이나 실질적인 섹스에 대한 논의는 피하고 본다. 10대 때는 ‘어허, 하면 안 돼’라고 가르치다가 막상 성인이 되면 성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지 않는 건 방임이다. 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거나 배워본 적이 없으니 ‘무엇이 상호합의인가’ 같은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사회적 정의(定意)가 부재한다. 이런 빈틈으로 인해 데이트 폭력이나 성폭력 같은 범죄가 발생하는 것이다. 나는 건강한 성문화의 전파는 10대 때에 그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의 성은 결국 비청소년의 성과 불가분하다.

나는 청소년기에 성에 있어서 이렇다 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강조하는 20살이 되고나니 아무도 가르쳐주지도 도와주지도 않더라. 알아서 하라고 던져진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경험들은 나를 아프게 했다. 다른 사람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 청소년의 섹슈얼리티 회복이라고 생각한다. 10대야말로 건강한 성에 가장 적극적으로 노출돼야할 사람들이고, 그 변화가 곧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성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실마리일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하고 살아갈 권리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건 연령과 무관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다.

 

Q. 왜곡된 성 문화를 개선시키기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A. 문화는 굉장히 거대하고 그 변화도 점진적이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꾸준히 이 주제를 환기하고 변화를 주장하는 지속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Q. EVE 콘돔의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하다.

A. 우리 사회에는 성에 있어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10대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권리가 돌아갈 수 있도록 환경과 문화를 바꿔나가는 것이 EVE가 하고 싶고 또 해나갈 일이 아닐까 싶다. 비단 콘돔에만 국한되지 않는, 성과 관련된 전 영역에 있어서 긍정적 변화를 만드는 균열의 시작점!

 

결국 ‘모두’의 ‘성(性)’을 수면 위로 끌어내는 것은 이다지도 길고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콘돔은 그나마나 성관계와 세상 사이의 관계를 ‘건전한 피임 기구’라는 이름하에 비교적 꼼꼼히 연결시키고 있는 매개이기에, 이 작은 고무가 섹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에 대해 우리는 조금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콘돔을 큰 소리로 발음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를 누리자.

 

*비건 :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그 생산과정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

**크루얼티프리 인증 :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기구 ‘크루얼티프리 인터내셔널’에서 발급하는 인증

***패키징 : 제품 포장

 

글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유채연 기자  imjam@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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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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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20 00:19:03

    처음 청소년을 위한 콘돔 자판기라는 헤드라인을 보았을 때는 솔직히 청소년의 "음란한 성문화"를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천천히 읽으니 음지에서 하는 부끄럽고 기형적인 행위에서 성을 끄집어 내어 더 안전하고 따뜻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전제 되는 성을 지향하는 가치관이 보였습니다. 좋은 취지, 좋은 기사 응원합니다.   삭제

    • 1234 2017-05-27 23:11:12

      결혼도 안한 남녀들끼리 여기저기 외간남녀와 성병 안걸리게 성관계 하는 방법, 건강하고 문란한 문화 옹호글 잘봤습니다. 합의만능주의에 기반한 쾌락주의적 성에 대한 왜곡된 사고방식. 왜 간통죄 마저도 폐지되었는지 알만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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