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우 (철학/국문·14)

26.98/100
총학생회(아래 총학) 출범 이래 최초의 공석을 메우기 위해 치러진 54대 총학 보궐선거는 투표 4일 차인 지난 3월 31일까지 26.9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당선 확률을 가늠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일로 보일 정도로 개표 가능 여부가 더없이 불투명하다. 개표 가능 투표율의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는, 유례없이 저조한 성적은 학생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이 되고 있다.

사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표어는 매우 진부하다. 이제는 ‘학생사회의 위기라는 말은 진부하다’는 감상조차 흔하고 뻔한 것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위상을 가지지 못하는 학생회와 급속도로 줄어드는 학생들의 관심에 아쉬움을 표하는 것은 일종의 관례가 됐다. 실체가 쉬 드러나지 않는 듯 보이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일정량의 책임을 묻는 것은 무엇보다도 간단하고 안전한 ‘화살 돌리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학과 같은 시기에 보궐선거가 실시된 총동연·문과대·상경경영대·생과대·교육대의 경우 모두 투표율이 50%를 넘어 개표에 성공했고, 당선 선본을 배출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과연 총학 선거에‘만’ 무관심했던 것일까? 총학의 자리가 최초로 공석이 됐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총학 선거는 매번 5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것과 동치관계에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 그래왔듯 학생들의 무관심만을 안타까워하기에는 우리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의 대표자는, 학생들이 원하는 대표자여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 말이다.

다, 함께
단독 선본은 선거정책자료집에서 2016년 총학생회 <Collabo>에 대해 ‘소통은 있었지만 그 안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평했다. 그리고 ‘소수자·약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일이 학생사회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며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여성과 성소수자는 소수자라는 규정 안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물론 그들을 위한 정책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수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들을 ‘가시화’하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총여학생회와 역할을 분담하려 했다’거나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는 해명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다함께 따뜻한 연세를 만들겠다’며 내건 ‘신문고 장학금 활성화’ 공약은 신문고(申聞鼓)가 신문‘고등학교’로 번역되는, 기본적 성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해프닝을 함께 남겼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총학 선거로 인해 말미암아 떠오른 사실은 ‘학생들이 또 한 번 학생 공동체를 등졌다’는 것이 아닌, ‘연세 학생사회의 대표자가 갖춰야 할 자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자
사전적 정의 :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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