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적 협력과 도전정신

문일 교수 (우리대학교 화공생명학과 /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 본부장)

 북위 79도. 서울로부터 6400km. 북극의 노르웨이령 니알슨 마을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마을인 니알슨에는 한국의 다산 과학기지와 함께 10여 개 국의 과학기지가 모여있다. 지난 3월 8일, 필자는 니알슨을 향해 떠났다. 4번의 비행으로 모스크바, 오슬로, 트롬소를 지나 니알슨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롱이어빈에 도착했다. 하지만 롱이어빈의 하늘은 니알슨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할 때쯤, 헬기는 쏟아지는 눈보라를 겨우 뚫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눈보라치는 구름 아래와 달리 구름 위는 햇살이 비치고 평화로웠다. 극지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이었다.

3일간 5번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니알슨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아문센 동상이었다. 로알 아문센, 우리에게는 1911년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탐험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문센은 남극점 정복에 나서기 전인 1900년대 초 이곳 북극을 탐험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훗날의 남극점 정복을 위한 자양분을 쌓았다. 아문센은 북극의 원주민인 이누이트들과 거리낌없이 협력하고 교류하면서 그들의 지혜를 배웠다. 훗날 남극점 탐험에 나설 때, 아문센은 이누이트들의 털가죽 코트와 개썰매를 선택했다. 비슷한 시기 남극점 정복에 나섰던 스콧은 영국제 모직 방한복과 말(馬)을 고집했다. 이 세기의 대결의 승자는 협력과 교류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아문센이었다.

100여년 전 아문센이 북극에서 보여줬던 협력과 교류를 오늘날 북극의 니알슨에서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10여 개국의 과학기지가 모여있는 니알슨에서는 매일같이 과학자들의 협력이 이뤄진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과학자들이 지하 100m까지 온도를 측정한다면,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지하 1m까지만 측정하되 지하 5cm, 10cm, 20cm와 같이 보다 정밀한 단위로 온도를 측정한다. 이탈리아의 과학자들이 33m의 탑을 설치하면, 다른 나라들이 그 탑에 필요한 측정 장비들을 협력하여 설치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서로가 측정한 데이터를 교환하며 밤까지 열띤 토론을 이어나간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과학자들을 이토록 협력케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세기, 과학은 경쟁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체제 속에서 각 나라의 과학자들은 조국의 부강(富強)을 위해 뛰어야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상대를 눌러야 하는 제로섬 게임의 시대였다.
21세기, 과학은 경쟁이라는 굴레를 벗고 협력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세계를 두 조각으로 나눴던 냉전체제는 와해됐고 이제 지구는 하나의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됐다. 기후, 질병, 핵 등 한 국가에만 영향을 끼치는 문제는 흔치 않다. 촘촘해진 그물망 속에서 빠르게 퍼지는 전지구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게임의 룰은 제로섬에서 포지티브 섬으로 바뀌었다.
니얼슨의 과학자들이 협력에 몰입하는 이유다.

그러나 협력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협력을 위해서는 상대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이해와 공감을 쌓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둘러싼 알을 끊임없이 깨내는 일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이 도전정신을 연장삼아 자신의 좁은 세계를 깰 수 있는 것이다.

‘도둑질 빼고는 다 해봐라’

어릴 적 나의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인류문명과 과학문명이 여지껏 걸어온 진보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그 담대함에 때로는 경이감마저도 든다. 이 담대한 진보의 최전선에 있던 과학자들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도전은 과학자가 놓치지 말아야 할 숙명이다. 일상 속에서라도 작은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나가자. 당장 수첩을 펴고,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새로운 일을 해보고 적어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평범한 도전의 축적이 비범한 진보를 이뤄낼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갈 과학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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