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사회
당신의 4월 16일
  • 주은혜 홍란 박혜지 송경모 이영준 전하연 하은진 기
  • 승인 2017.04.01 19:41
  • 호수 1790
  • 댓글 0

‘전원 구조’ 뉴스에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네”

이상했다.
전원 구조라는데 화면상 그 근처에
정박한 선박은 거의 없었다.

‘그럴 리 없다. 지금 구조돼서 나왔는데 여기에 애들이 몇 명 없다...’

TV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리 힘드냐”고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2014년 4월 16일. 아직도 많은 사람의 시간은 그때에 머물러 있다.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과 그 아픔을 지켜본 국민은 여전히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3주기를 앞둔 지금, 그들의 기억을 다시 꺼내어 본다.

2014년 4월

이화여대 서현정(커뮤니케이션미디어·15)씨
여느 때처럼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의 봄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국어 모의고사를 풀고, 밥을 먹었다. 수요일 오전 수업은 중국어 시간이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공상에 잠겨있을 때, 상념 사이로 선생님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배가 가라앉았단다” 수업이 끝나고 노트북을 꺼내 포털 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를 클릭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화면 가득, 시커먼 바다에 푸른 선체가 푹 박혀있었다. 언젠가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광경은 그곳에 없었다. 아름답게 물결치는 바다도, 사명감 넘치는 선장과 선원도 없었다. 작은 모니터엔 배를 집어삼킬 듯 감싸 도는 기름 섞인 바닷물과, 눈을 의심하게 하는 실종자 통계 자막뿐이었다.

안산동산교회 고등부 담임목사 A씨
매주 단원고에서 점심시간마다 기도모임을 진행했다. 기도모임에 참여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당시 2학년, 사고를 당한 아이들이었다. 사고 전 주에도 수학여행을 조심히 잘 다녀오자는 내용의 모임을 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사고 당일 아침, 소식을 접했다. 놀라서 언론보도를 찾아보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전원구조’라는 언론보도가 났고, 단원고 한 학생과 전화 연결이 됐다. 아이는 불안해하는 목소리였다. 당연히 모두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아이로부터 ‘그럴 리 없다. 지금 구조돼서 나왔는데 여기에 애들이 몇 명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진도로 출발해 내려가는 도중 수많은 언론보도가 있었고, 점점 더 상황은 심각해졌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기 싫었고, ‘아이들이 차가운 물 속에서 몇 시간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뿐이었다.

당시 의무경찰 일경, 우리대학교 한태광(건축·12)씨
그 날은 오랜만에 휴가를 나온 날이었다.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다리며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고등학교 동창 단체 카톡방에 ‘진도에서 배가 침몰했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 녀석들 또 장난치는가 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찰나, 인터넷 속보로 그 내용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한참 기울어지고 있는 배를 보며 ‘얼른 구조돼야 할 텐데’라는 걱정이 앞섰으나, 곧이어 전해진 ‘전원 구조’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네’라는 생각과 함께 약속에 나갔다. 
한참 뒤, 집에 들어왔을 땐 TV를 통해 ‘전원 구조’뉴스는 오보였으며, ‘아직 다수가 실종상태다’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 순간, 아까의 무수한 뉴스는 죄다 무엇이었는지 화가 나고, 왜 구출이 더뎌졌는지 답답해져 왔다. 

당시 육군 상병, 오성연(26)씨
오전 일과를 마치고 생활관에 올라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TV에서는 ‘수백 명의 승객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우들은 저마다 “이게 무슨 일이냐”,“얼른 구조돼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간부들은 혹시 세월호 탑승객과 연관 있는 전우가 있을 것을 우려해, 오후 일과 도중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를 하도록 지시했다. 통화를 끝내고 우리 부대에는 승객과 관련된 전우들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일과를 하면서도 뉴스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피곤해서 거의 바로 잠들던 평소와 달리 그날은 걱정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고3인 동생이 떠오르며 동시에 수학여행을 간다고 들떠있었을 학생들과 그 가족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에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성남외국어고등학교 교사 이재민(47)씨
사고 소식에 내려앉은 가슴은 종일 무거웠다. 세월호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자율학습을 지도하던 중, 한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안산 출신의 그 학생은 자기 친구가 단원고에 다닌다고 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우는 학생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일하면서 틈틈이 인터넷으로 뉴스와 현장 동영상을 검색했고, 기상 상황과 조류로 인해 구조가 지연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난 구조 전문 인력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나, 왜 구조 과정에 투입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더없이 답답했다. 
퇴근길, 속상한 마음으로 해장국 집에 들러 혼자 술을 마셨다. 식당 TV에서는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리 힘드냐”라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학부모 윤수영(48)씨
여직원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TV에서 세월호 소식이 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이상한 것이 전원 구조라는데 화면으로 보기에는 그 근처에 정박한 선박이 거의 없었다. 
퇴근 후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나에게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브리핑하듯 이야기했다.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학부모들이 얼마나 애가 탈까’ 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틀었다. 아이에게 학원숙제를 시키는 것도 잊고 못에 박힌 듯 앉아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TV를 봤다. 

2017년 4월

안산동산교회 고등부 담임목사 A씨
세월호 소식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이제 그만 해라’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이런 입장을 접할 때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을 사회적으로 품어줄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교회에 다니던 희생자 한 명의 가족은 지금 한국에 없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언론이 보여준 행태와 사회의 냉소적인 반응에 상처를 받고 이민을 선택했다. 이 가족을 보며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잔인한 모습을 실감했다.

이화여대 서현정(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부·15)씨
내 머리를 맴돌던 그날의 잔상은 점점 커져 죄책감으로 변모해 아직까지 가끔 마음을 옥죈다. 그 고통의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아프다가도 역설적이게 이렇게 아파서 다행스럽다. 아직 잊지 않아서, 그렇게 고통을 나눌 수 있어서.

글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송경모 기자 songciety@yonsei.ac.kr
이영준 기자 zero6@yonsei.ac.kr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사진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주은혜 홍란 박혜지 송경모 이영준 전하연 하은진 기  gracechoo@yonsei.ac.kr pphhjj@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