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일일호프, 이대로 괜찮은가

XX대! XX과! 오늘 일일호프 합니다! 많이 놀러 오세요~

무거운 하루를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신촌의 어느 골목 술집으로 들어가는 기분. 모두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거다. 대학 시절의 새로운 낭만과 추억, 기분 좋은 흥얼거림으로 가득한 그 날. 바로 일일호프가 열리는 날이다. 본래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을 목적으로 도입된 일일호프. 그러나 최근의 일일호프는 이러한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나 과도한 이윤을 추구하고 유흥주점의 부정적 면모를 답습하며 ▲지나친 선정성 강조 ▲학생들의 시민의식 부족 ▲지역 업주들과의 갈등 등의 문제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일호프는 무엇?

 

대학생 일일호프는 하루 동안 특정 주점을 대관해 그곳에서 구입한 술과 안주를 방문객에게 재판매하는 행사로, 일일호프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기부나 봉사 또는 학생 단체 자치비용 마련 등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쓰인다. 주로 학생회, 동아리, 소모임 등의 각종 학생 자치 단체들이 직접 주관하는 행사인 만큼 일일호프는 단순한 술집을 넘어 경품 뽑기, 밴드 공연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더해가며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를 반영하는 하나의 장(場)으로 재탄생했다.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의 개념을 넘어 대학 시절의 소중한 추억과 낭만을 만들 수 있는 행사로 굳건히 자리 잡은 것이다. 연세대 김선경(Econ·16)씨는 “일일호프에는 주로 같은 소속 동기들이 있고, 음식이나 자리 등 모든 것이 술집 안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행사보다 좀 더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일호프가 ‘자금 마련’이라는 특정한 목적을 가졌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각종 자치 단체의 의례적인 행사가 되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일일호프를 여는 목적이나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자치단체는 드물다. 이 같은 고민의 부재는 일일호프의 획일화와 일반 유흥주점의 부정적인 문화 답습 등 여러 문제를 낳는 데 한몫을 했다. 연세대 이지아(IS·16)씨는 “친구들끼리 편하게 놀러 온 사람들에게 자꾸 합석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어서 난감할 때가 많다”고 전했다.

▲붐비는 신촌 거리

흔들리는 윤리의식, 방황하는 일일호프

 

일일호프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하기보다 이윤만을 추구하려는 태도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낳는다. 일일호프 홍보를 둘러싼 성 상품화 문제도 매년 불거지는 문제다.

일일호프는 그 특성상 지인의 방문에만 의존하면 적자를 면하기 힘들다. 이에 학생들은 지인이 아닌 일반 손님들을 유입하려 선정적인 의상, 합석 보장 문구 등을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연세대 E씨는 “학과대표였을 당시 일일호프를 기획하며 많은 사례를 봤는데 여학생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E씨는 “기획단 내부에서 여학생들이 섹시한 컨셉의 의상을 입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었다”며 “해당 의견이 나왔을 때 여학생들을 포함한 기획단 학생 중 크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5월에는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채로 행인에게 팔짱을 끼고 일일호프 홍보를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제보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연세대 김선주(경영·13)씨는 “일일호프의 특성상 짧은 시간 동안 수익을 내야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홍보 방법을 통해 손님을 모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과도한 합석 문화도 이로 인한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된다. 많은 일일호프들은 ‘합석 유도’ 캐치프레이즈를 통한 홍보 효과를 노려 ‘합석을 위한 일일호프’로 일일호프의 의미를 변질시키기도 한다. 연세대 박시영(철학·15)씨는 “일일호프의 분위기가 합석을 위한 것으로 흘러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서빙을 하던 동기들이 직접 합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일호프를 진행하고 난 후 학생들의 태도 개선 또한 요구된다. 학생들이 일일호프를 홍보하기 위해 바닥에 붙여놓은 각종 ‘발바닥 스티커’나 홍보 전단지 등이 골목 거리 미관을 훼손시킨다는 지역 주민 및 행인들의 신고가 빈번하다. 실제로 학생들이 일일호프 영업을 종료한 이후 바닥에 붙여놓은 스티커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구청 직원들이 진땀을 빼는 경우가 많았다. 서대문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이런 홍보물들이 옥외광고물에 해당하지는 않기에 따로 벌금을 매길 순 없다”며 “단지 신고가 들어올 경우 구청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직접 정리를 하고, 저지할 뿐”이라고 전했다.

 

이해관계 사이에 낀 계약서

 

신촌 일대의 주점 업주들은 일일호프에 참여하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다. 학생들과 업주들은 크게 두 가지 계약 방식을 통해 일일호프를 운영해나가고 있다. 계약 방식에는 ▲비교적 높은 금액의 기본 대관료를 책정하는 대신 수익을 온전히 학생들이 가져가는 방식 ▲비교적 적은 대관료를 책정해 일정 시간까지의 수익을 학생들과 업주들이 배분하는 방식이 있다.

일일호프에서 발생한 수익을 학생들과 업주가 나누는 계약의 경우, 학생들이 많은 수익을 낼수록 업주들이 가져갈 수 있는 몫이 커진다. 이에 따라 일부 업주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연세대 A씨는 지난 2016년 모 술집에서 진행된 일일호프에서 수입을 높이기 위한 업주의 지나친 개입 때문에 불쾌함을 느꼈다고 전했다. 김씨는 “여학생들이 따로 모여 있자 업주가 ‘여자애들이 여기 모여 있으면 어떡하느냐’며 한 학생을 가리켜 ‘네가 가장 예쁘니까 (손님을 맞이하러) 내려가자’는 식으로 얘기해 과대표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높은 수익을 내기 위해 업주들이 비윤리적인 방법까지 불사하는 것이다.

다수에게 지적받는 일일호프의 높은 메뉴 가격은 계약 시 책정되는 전반적으로 높은 대관료와 무관하지 않다. 일일호프가 주로 열리는 금, 토 기준 일일 대관료는 대략 85만 원 선이다. 통상적으로 학생들은 이러한 높은 대관료를 메꿔야 하는 사정으로 메뉴에 높은 마진율을 붙여 가격을 책정하곤 한다. 이에 대해 연세대 김영빈(정산공·14)씨는 “대체로 전년도 자료와 대관료, 뒤풀이 비용을 고려해 가격을 산정한다”며 “적자가 나지 않는 선에서 수요를 예측해 가격을 산정하는데, 대관료가 비싸다 보니 주최 측에서도 불가피하게 가격을 높게 책정하게 된다”고 전했다. 또한 김씨는 “대체로 일일호프 문화를 처음 겪는 새내기들과 합석을 목적으로 일일호프를 찾는 일반인들이 소비자를 이룬다. 이들이 가격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높은 가격에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업주들이 바라보는 일일호프

 

업주들은 일일호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촌 ‘ㅂ’ 술집 사장 B씨는 “우리는 가게만 대관해줄 뿐 사실상 학생들의 수익과 크게 상관없기에 편하다”며 “인건비도 크게 줄어 일일호프가 가게 매출에는 도움이 되는 편”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주는 일일호프의 ▲예약 및 운영 ▲분위기 및 뒷정리 등의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일부 업주들은 학생들의 빈번한 예약 취소나 일정 변경에 대해 난처한 입장을 보였다. 신촌 술집 ‘ㅊ’ 관계자 C씨는 “3월 말이나 4월 초와 같이 바쁜 시기에 갑자기 예약이 취소되면 그 부담은 가게에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어 C씨는 “일일호프 장소를 대관할 때 일정한 예약금이 요구되는데, 갑자기 예약이 취소되더라도 주 고객인 학생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통 금액을 다시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한 업주들은 일일호프 운영 중 발견되는 일부 학생들의 미성숙한 태도에 대해서도 말을 덧붙였다. 신촌 술집 ‘ㄴ’ 사장 D씨는 “다른 대관보다 일일호프 대관이 특히 힘들다”며 “학생들이 자신의 주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술을 지나치게 마셔 가게 곳곳에 구토하거나 가게를 지나치게 어지럽혀 곤란했다”고 전했다. 일일호프가 끝나고 난 이후의 상황도 마냥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신촌 술집 ‘ㅎ’ 윤영진 사장은 “행사가 끝난 이후의 뒷정리가 가장 힘들다”며 “대부분의 학생이 분위기에 취해 기분이 고조돼 있다 보니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하룻밤의 즐거움을 넘어서

 

그러나 모두가 일일호프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홍기범(컴과·11)씨는 “일일호프를 운영하면서 많은 동기들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자치단체 행사로서 큰 의미를 갖는 것 같다”고 말하며 일일호프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대부분의 업주들 또한 일일호프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술집 ‘ㅎ’의 윤 사장은 “아무래도 일일호프를 진행하면 손님이 많아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서로 기본적인 규칙만 잘 지켜주면 바람직한 문화가 정착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일호프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문화다. 따라서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일호프로의 변화를 도모하는 학생들과 업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연세대 윤리인권위원회 인권센터 관계자는 “현재 최초 목적성을 상실해 변질된 일일호프에 대한 학생들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보인다”며 “잘못된 음주문화와 특정 성(性)을 소비하는 문화를 건전하고 목적성을 가진 행사로 바꿔나가려는 학생들 스스로의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세대 권상윤(GLD국제통상·15)씨는 “일일호프가 끝나고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뒷골목을 보거나 자주 들려오는 학생들의 예약취소 소식을 들으면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며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일호프. 하룻밤의 즐거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건전한 대학문화 정착과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통한 일일호프 문화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글 신유리, 조승원, 유채연 기자

shinyoori@yonsei.ac.kr, jennyjotw@yonsei.ac.kr, imjam@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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