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교수 (우리대학교 행정학과)

 부패도 진화하고 변화한다. 후진국의 부패는 돈과 권력을 직접적으로 주고받으며,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규제해 부패가 일상화돼있다. 중진국으로 가면, 부패의 형태가 은밀해지고, 그에 대한 규제는 사회적 정당성을 띄지만, 실제 실효적 규제는 여건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진다. 선진국에 이르면, 부패의 빈도와 수준 자체가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사회적 의식과 철저한 법적 처벌이 공존하게 된다.

부패를 규제하고,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패에 대한 통제가 일차적인 조건이다. 이를 위해 세계 50여 개 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가 내부고발자 보호법이다. 중진국 수준을 넘어갈수록 부패가 교묘해지고 은밀해지기 때문에, 내부로부터의 정보와 이탈자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부패를 적발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한국의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2년간의 주요 부패관련 사건을 따져보니, 약 50.1%가 내부고발에 의해 조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부패방지법의 초기 모델은 지난 2001년 만들어졌다. 이 법은 부패행위 제보자의 범죄가 드러난 경우, 그의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고, 이 규정을 공공기관의 징계처분에 준용한다고 명문화해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자 보호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의 내부고발자 보호는 2011년 제정된 공익신고자보호법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기존의 공공기관에 한해 적용하던 범위를 넓혀 민간에서 발생하는 공익 침해 사례까지도 넓혀 놓았다.    

그런데, 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일까? 첫째, 현재의 공익신고자보호법은 기본 방향을 신고자가 기존의 조직에서 ‘생존’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생존을 하면 다행이겠으나, 현실은 기존의 조직에서 생존하지 못하고 퇴출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내부고발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고 탄식한다. 그들은 용기의 대가는 해고였고, 배신자로 낙인을 찍혀 정상적인 삶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다고 고백한다. 고발의 대상이 됐던 조직 밖으로 나오게 해, 다른 생활과 삶을 시도할 수 있도록 방향설정을 해줘야 한다.

둘째, 보호의 수준이 미약하다. 우선, 경제적 보상의 경우, 최대 30억까지 보상해 주는 정책을 정부가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공공부문 내부고발자들에 대한 1인당 보상액은 필자가 조사했을 당시 3천만 원 수준이었다. 3천만 원과 배신자라는 낙인을 교환하고, 평균 3년여를 재판에 매달리다, 가계가 파탄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UBS은행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 내부고발을 했던 직원은 정부로부터 1,175억 원을 보상받았고,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는 상장기업의 부패를 막기 위해 만든 부패고발제도에 의거, 내부고발자에게 350억 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한 사례도 있다.

셋째, 내부고발의 대상이 되는 범위가 현재는 정부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민간의 경우는 건강, 안전, 환경, 소비자, 권익침해 등으로 국한돼있다. 그 결과 민간기업에서 대우조선 분식회계, 최순실 관련 삼성전자 뇌물사건, 배임, 횡령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내부고발보호의 대상에서 제외돼있다. 내부고발을 장려하고, 내부고발자를 충실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대상의 범위를 현실적으로 중요한 부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까지 몇 년 동안 한국사회를 공포와 탄식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원자력발전 관련 비리의 사슬도 젊은이의 내부고발에 의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전국민의 생명을 원자력의 위험 앞에 담보로 하는 부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었다. 계속되는 걸 넘어 국토의 일부분이 송두리째 우라늄에 오염되고, 수십만 명의 국민이 생명을 이미 잃었을 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을 예방한 셈이다. 내부고발은 그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부패에 관한 한, 한국사회는 지금 중진국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패를 거부하는 규범은 명백히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으나, 실제 부패에 대한 시민의식과 법의 통제는 미약하다. 온정주의, 집단주의, 권력의 미신에 속아 자신의 삶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선진국으로 가는 질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부고발자로 하여금 조직 내부에서 생존하도록 설계한 기존의 보호법을 고발자가 조직외부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게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면, 243개 자치단체와 323개 공공기관이 모두 부패를 통제하고자 감사를 두고 있는데, 감사실 직원을 선발할 때 내부고발의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가점을 주면 된다. 그러면, 내부고발을 이미 한 사람도 살고, 그 사람을 뽑은 조직도 부패를 엄정하게 통제할 수 있다.

마지막, 내부고발을 한 사람에게 정부와 사회가 보상해주는 수준이 중요한데, 이를 대폭 증액시켜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현재의 예방, 회수된 재원의 일정 비율이 아니라, ‘예방’된 효과의 일정 비율을 관련 위원회가 형량해 보상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