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디자인, 그 속에서 모두가 공존하다

‘나는 부자를 위해 2억 달러짜리 요트도 디자인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살 수 있는 2달러짜리 우유병도 디자인한다.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 제품을 사용할 사람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갖고 디자인한다. 디자인의 시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 필립스탁(Philippe Starck)

위는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필립스탁이 남긴 명언이다. 그는 사용자를 위해 존재하는 디자인을 통해 ‘모두를 위한’ 디자인 윤리의식을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의식은 ‘유니버셜 디자인’의 구현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의,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디자인

유니버셜 디자인이란 장애·연령·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제품·건축·환경·서비스 등을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디자인이다. 이는 ‘공공을 위한 디자인’을 기조로 삼고 있다. 또한 유니버셜 디자인은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인 ‘배리어프리’를 현실화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비장애인들도 신체기능이 달라 동일한 상황에서 상이한 반응을 보일 수 있음을 고려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경기도청 건축디자인과 디자인정책팀 김정일 팀장은 “유니버셜 디자인은 특수인을 넘어 노약자 및 임산부 등 모두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라고 강조했다.
일상에서 유니버셜 디자인의 적용성을 판별하는 대표 기준으로는 ‘유니버셜 디자인 7원칙’이 있다. 이는 유니버셜 디자인을 처음 정립한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가 건축가·엔지니어·산업 및 환경 디자이너 등과 협력해 명시한 것으로 지금도 널리 활용되는 지표이다. ‘▲공평한 사용 ▲사용의 융통성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인지할 수 있는 정보 ▲실수에 대한 관대함 ▲적은 신체적 노력 ▲접근과 사용을 위한 크기와 공간’이 그에 해당한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유니버셜 디자인이 담긴 사례로는 수도꼭지·문손잡이 등이 있다. 과거 수도꼭지는 돌려서 사용하는 형태였으며 온수와 냉수가 별도의 손잡이로 구분돼 있었다. 따라서 수도꼭지를 돌리는 과정에서 많은 힘이 들어갔다. 이와 달리 지금의 수도꼭지는 하나의 손잡이 내 상하 이동은 물의 양 조절을, 좌우 이동은 온도 조절을 하는 구조로 변모했다. 이에 손에 힘이 부족한 사용자도 수도꼭지를 이용하기 용이해졌다. 과거의 문손잡이 역시 동그랗게 튀어나온 형태로, 힘을 주며 돌리는 구조였다. 그러나 현재는 상하로 가볍게 누르면 문이 열리게 돼 사용자의 손의 힘과 손가락 형태에 구애받지 않게 됐다. 이처럼 유니버셜 디자인은 어느덧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 유니버셜 디자인이 적용돼 상하좌우로 움직여 물의 양 및 온도 조절이 가능한 수도꼭지

유니버셜 디자인, 과연 ‘유니버셜’ 할까?

이미 상당수 선진국에는 ‘고령사회로의 진입’과 ‘배려를 중시하는 문화’가 맞물려 유니버셜 디자인의 필요성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선두에는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이 위치하며, 이미 일본 내에는 제품·건축·교통 등 사회 전방위적으로 유니버셜 디자인이 조성돼있다. 또한 미국·유럽·캐나다는 법 제정을 통해 공공시설 및 도시정비 등에서 유니버셜 디자인 도입 기준을 명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한 인지도가 낮으며, 이는 추가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유니버셜 디자인의 도입이 디자인 설계 당시부터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후에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한 필요가 발생할 경우, 초기 설계 단계에서 이를 도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후 조치 비용이 요구된다. 김 팀장은 “처음 기획할 때부터 유니버셜 디자인이 도입된다면, 차후 부수적인 경비가 필요치 않다”며 “이미 완성된 시설물에 적용하려 하기 때문에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일례로 기존 공공청사의 출입문은 여닫이문 형태로 설계된 구조였다. 그러나 이용자의 편의 증진을 위해 정부에서 자동출입문 형식으로 교체하자, 상당한 추가비용이 발생하게 됐다. 김 팀장은 “이러한 비용부담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유니버셜 디자인은 상당한 돈이 든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유도한다”며 “일종의 악순환이 초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유니버셜디자인협회 성기창 소장은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는 교육에서 출발한다”며 “정규교육 과정에서 인권에 환경 차원으로 접근한 유니버셜 디자인에 관한 소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유니버셜 디자인, ‘소통’에 접어들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유니버셜 디자인이 처한 현실은 명칭 그대로 ‘유니버셜’하지는 않다. 하지만 조금씩 우리나라도 유니버셜 디자인을 향한 경직된 시선에서 벗어나고 있다. 시설을 이용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필요에 맞춰 시설을 디자인하는 ‘소통’ 중심의 디자인철학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례로 대형문화시설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아래 DDP)의 경우, 노약자·장애인이 겪는 보행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니버셜 디자인을 광범위하게 적용했다. 길 전반에 경사로를 정비해 유모차 및 휠체어의 편의를 고려하고 안전 펜스를 보조적으로 설치하는 등이 그에 해당한다. 또한, 지난 2011년에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유니버셜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의 담당자였던 경기도청 건축디자인과 디자인정책팀 김정일 팀장은 “사회적 약자들이 지닌 핸디캡을 직접 부여한 체험 활동을 통해 문제점을 발견해나갔다”며 “그 결과로 노약자 및 임산부의 눈높이에 맞는 시설을 발굴하고 개선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현재 경기도는 위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물리적 환경에서의 복지를 활성화하고 있다.

▶▶ 노약자·장애인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유니버셜디자인이 적용된 DDP의 경사로 전경

한편 「유엔세계인구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 출생아를 기준으로 한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88.4세까지 늘어나 세계 2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기존 산업사회의 제품 및 시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이 늘어나면서, 향후 유니버셜 디자인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김 팀장은 “노령화와 맞물려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유니버셜 디자인은 꼭 정착돼야한다”며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누리는 것은 모두의 권리”라고 덧붙였다. 김정윤(생디·15)씨는 “노령 인구를 포함한 모두가 여러 시설 및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유니버셜 디자인의 확대가 필요하다”며 “유니버셜 디자인은 모두의 권리 보장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디자인”이라고 답했다.
유니버셜 디자인의 다른 명칭에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이 있다. 이처럼 유니버셜 디자인은 사회구성원 모두를 사용대상자로 고려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 사용자의 참여를 끌어들여 사용자 중심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성 소장은 “애초에 유니버셜 디자인은 인권적인 차원에서 출발했다”며 “향후 사회의 제도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모두를 동등하게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간 산업사회에서는 소수 사용자의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는 일반적인 디자인 방법론이 지배적이었다. 즉, 인간은 배제된 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행했던 것이다. 이와는 달리 유니버셜 디자인은 ‘인간을 위한다’라는 철학이 디자인에 가미된 형태이다. 우리 사회에 모두를 안고 가는 따뜻한 디자인이 확산될 수 있도록 인식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글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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