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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무지개는 ‘틀리지 않다’진정한 동행을 원하는 색각이상자
  • 전하연 기자, 천시훈 기자
  • 승인 2017.03.25 23:52
  • 호수 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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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이 보는 무지개는 빨·주·노·빨·파·남·보’
‘색맹의 세상은 보이는 색을 제외하곤 전부 회색’

위는 온라인에 만연한 색각이상자에 관한 잘못된 인식 중 일부이다. 상당수 비색각이상자들은 자신이 말하는 ‘색맹’이 무엇인지, 색각이상자가 겪는 ‘증상’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가늠치 못한 채 그들만의 잣대로 임의적인 재단을 행한다.

우리의 인식이야말로 ‘맹’하다

우리는 주변 사람이 색을 혼동했을 때, 우스갯소리로 ‘너 색맹이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색맹’이 지칭하는 바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먼저 ‘색각이상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색각이상자는 ‘망막의 원뿔세포 기능 이상으로 색을 정상적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 정도에 따라 색맹과 색약으로 나뉜다. 색맹은 ‘색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을, 색약은 ‘색의 분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특정 색에 관한 식별 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색맹으로 통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색각이상자 권리찾기 본부 ‘색치사랑’의 운영자는 “오래전부터 색약은 즉 색맹이라는 낙인이 존재했다”며 “이는 잘못된 이해로 인해 발생한 옳지 못한 인식”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국내의 색각이상자는 약 3%이다. 이는 150만 명가량에 해당하며 적은 수치가 아니다. 그러나 색각이상자들은 신체적인 불편함을 겪는 것과 더불어, 미흡한 사회적 인식으로 어려움에 직면해있다. 아직까지 ‘누구나 색각이상일 수 있다’라는 전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옳은 색깔’에 대한 강요 및 강압을 행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다음은 실제 사례들이다.

#사례1: 저도 매우 혼란스러워요
적색약을 가진 원어민 강사 숀(shaun)씨는 검정 옷이 요구된 장소에 검붉은 옷으로 등장해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숀씨는 “평소 일부 색 구분에 어려움이 있어 착각을 하곤 한다”며 “당시 적합하지 않은 색의 옷을 착용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사례2: 저는 ‘두려움’을 봐요
색각이상자들은 상당수가 초등생 무렵, 알록달록한 작은 원이 그려진 그림을 통해 자신이 남들과 다른 색을 본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색각이상 검사를 포함한 학생건강검사를 초등생 1·4학년 대상으로 실시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모씨 역시 초등생 당시 ‘적록색약’을 판정받았다. 하지만 검사 과정에서 보건선생님은 박모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를 읽으라고 재촉했고, 이에 억지로 숫자를 지어내자 꾸중을 들었다. 박모씨는 “어렸을 때 받은 색각이상 검사가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며 “한동안 ‘내가 보는 색깔은 틀렸다’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밝혔다.

 학생건강검사에서 색각이상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는 이시하라 가성동색표

#사례3: 어긋나지 않으려 ‘암기’를 해요
흔히 비색각이상자들은 자신이 보는 색만을 ‘옳은’ 색이라고 간주한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B씨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정확한 색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B씨 부모는 어린 B씨가 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림 도구를 집을 때 정확한 색의 명칭과 위치를 계속해서 주입시켰다. 이에 B씨는 “오히려 나만의 색에 관한 관념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적록색약인 정종현(체교·14)씨 역시 “내가 인지하는 신호등 색과 사람들이 말하는 신호등 색의 명칭이 달라 색깔을 외워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흐릿한 것은 ‘색감’이 아닌 사회의 ‘권리 보장’이다

색각이상자들은 일상 속 그릇된 인식만을 체감하는 것이 아니다. 공적 차원에서도 그들을 위한 사회적 뒷받침은 여전히 미흡하다. 그 일례로 기존 백열등에서 발광다이오드(아래 LED) 전구로 바뀐 교통신호등이 있다. 2000년대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효율 및 유지보수비 절감, 점등부의 높은 인식도 등을 근거로 교통신호등을 LED 전구로 교체했다. 그러나 교체 이후 일부 색각이상자들은 주위 빛이 반사돼 색 구분에 곤란을 겪는다고 호소한다. 야간이나 비가 오는 경우, 그 정도는 더욱 심화된다. 적록색약인 이모씨는 “야간에 좁쌀처럼 군집된 형태인 적색 및 녹색 LED 신호등을 보면 확실히 빛이 퍼져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운영과 관계자는 “LED 신호등의 빛 번짐과 관련해선 아직 검토한 바가 없다”고 전했다.

 야간 LED 교통신호등의 모습이다. 일부 색각이상자의 경우, 주위 빛이 반사돼 보인다.

한편 과거에는 색각이상자를 대상으로 한 취업 및 진학 기준이 매우 까다로웠다. 최근엔 관련 기준이 점차 완화돼 그들이 겪는 불평등한 대우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러나 일부 색각이상자들은 아직까지 ▲색각이상 제한 규정이 필요 없는 직업군에서도 이를 적용한다는 점 ▲색각이상 등급이 존재하지 않아 색각이상자들이 동일 범주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현재 국내에서 색각이상 규정이 가장 까다로운 곳은 항공 관련 직종이다. 해당 분야의 모든 직종은 색각이 정상이어야 하며 미미해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련 직종 내에는 색각이상이 불편함으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색치사랑’ 운영자는 “항공정비사나 파일럿과는 달리 시각적 요소가 직무와 직접 연관되지 않는 일반 승무원과 같은 항공직종들까지 색각이상에 제한을 두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명확한 기준 없이 ‘색각이상은 모두 규제대상’으로 분류되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색각이상에도 개인별로 증상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 정도에 따라 겪는 불편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공 분야에선 이들 모두를 단일한 ‘색각이상’ 범주로 취급한다, 따라서 타 증상들처럼 정도에 따라 급수를 나누자는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항공 계열을 희망했다는 정승화(신학·13)씨는 “항공 직종에서 색각이상의 종류와 정도를 구별 않고 일괄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자세한 분류와 판단이 없는 진로 제약은 철폐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공항공사 인사팀 관계자는 “향후 제약 변동은 예정된 바 없다”며 “법으로 제한된 규정에 따라서만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공군 지원 요강 역시 색각이상에 등급을 나누지 않고 있다. 이모씨는 “시각적 판단능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공군 헌병마저 색각이상을 제약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색각이상도 정도에 따라 급수를 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공군 지원 시, 색각이상자에게 추가로 시험을 치르게 해 색 구별에 큰 지장이 없으면 신체검사를 통과시킨다. 정씨는 “부족한 사회적 고려와 변별 없이 부가되는 제도적 제한에 대한 재고 모두 필요하다”고 밝혔다.

‘색’을 통한 발상의 전환에서 길을 찾다

결국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색각이상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배려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색각이상의 경우, 발상의 전환은 ‘색’을 매개로 이뤄져야 한다. 색은 정보인지 및 습득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함에도, 색인지에 곤란을 겪는 색각이상자들에게 범용적인 요소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공정하고 공평한 색적용이 중요하다. 실제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색각이상자들이 생활에서 동등한 주체로 자리한 사례가 있다. 해외의 경우, 교통신호등의 색뿐만 아니라 모양을 달리하는 작업이 꽤 이뤄지고 있다. 각 신호의 모양을 원형·삼각형·사각형 등으로 다양하게 하거나 유사한 색상의 구분이 용이하도록 기호를 추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색각이상자가 겪는 곤란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색각이상 중에선 녹색약이 가장 많고 뒤이어 녹색맹·적색맹·적색약 순이다. 즉, 상당수 색각이상자들은 적색이나 녹색에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그러나 위 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사회의 색적용으로 인해 일부 색각이상자들은 일상 환경에 불편을 호소한다. ‘색치사랑’의 회원 A씨는 “사회에서 적색과 녹색을 대비 색으로 사용해 가끔 혼란을 겪는다”고 답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이를 반영해 색각이상자를 포용할 수 있는 환경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일례로 시각적 요소가 중요한 게임산업에서는 몇몇 업체들이 색약사용자를 배려한 게임 환경 업데이트를 진행한 상태다. 대표적으로 리그오브레전드(아래 LOL)·월드오브탱크·심시티 등이 해당한다. 이는 색각이상자를 포함한 가능한 모든 사람에게 웹 사이트상의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도록 이용자 입장에서 만든 옵션으로, 웹접근성*을 높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LOL 관계자는 “고객 문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접수된 색약사용자들의 불편사항을 반영한 것”이라며 “설정 메뉴에서 색약 모드로 전환하면 적색과 녹색 계통의 색이 색약사용자들도 구분하기 쉬운 색으로 변경된다”고 전했다. 기자가 현재 색약 모드를 따로 적용하지 않은 게임업체에 문의하자, 업체 관계자는 “차후 업데이트에서 게임옵션으로 색약 모드를 추가하도록 할 것”이라며 “당장 도입은 어렵지만, 시간 나는 대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또한 ‘색각이상자도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노선도’가 배포되고 있기도 하다. 지하철 노선도는 상세한 정보가 얽혀있어 색으로 이를 구분해 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적록색각이상자들은 기존 노선도로 2·4·7·9호선 등을 명확히 식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의 눈에는 해당 호선의 색이 모두 짙고 옅은 황갈색으로만 보인다. 따라서 노선도의 색을 걷어내면, 빼곡한 역명과 엉킨 선만으로는 경로탐색이 어렵다. 이에 색약자들이 정보 소외계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각 호선 고유의 문양을 개발해 적용한 노선도가 고안됐다. 해당 노선도를 고안한 송민영(41)씨는 “공공시설물 중 색각이상자들의 편의에 위배되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다가 문양을 고안하게 됐다”며 “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기존의 지하철 노선도(위)와 고유 문양으로 노선도를 구분한 ‘색각이상자도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 노선도’(아래)


위의 사례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용자의 관점에서 색채설계를 진행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실태 및 건의사항 등을 충실히 수렴해 모두가 이용하기 편리한 디자인으로 진일보하게 됐다. 서울대 박달(컴공·13)씨는 “생활에서 색각이상자가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체제가 필요하다”며 “구축된 체제를 통해 피드백의 조속한 반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색각이상자는 우리와 ‘다르게’ 볼 뿐이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무지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눈에 비치는 무지개는 전혀 ‘틀리지’ 않다. 우리의 인식과 사회 제도적인 배려가 가미된다면, 그들은 더욱 선명한 무지개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웹접근성 :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웹 사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

 


글 전하연 기자
seiyeonii@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자료사진 삼성전자 블로그, 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전하연 기자, 천시훈 기자  seiyeoni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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