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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학술로 성장하고, 나눔으로 무르익다한국청소년학술대회 KSCY 이세영 사무국장을 만나다
  • 조승원 기자, 하은진 기자
  • 승인 2017.03.19 04:17
  • 호수 1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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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를 보고 꿈을 키운 소년이 있다. 꿈이 우주인이냐고? 아니다. 우주식품을 연구해보고 싶어 탐구보고서를 쓰게 됐다는 그 초등학생은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한국청소년학술대회 KSCY(Korea Scholar’s Conference for Youth, 아래 KSCY)의 사무국장과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청소년 학술 연구의 대중화를 꿈꾸는 우리대학교 이세영(문헌정보·15휴학)씨를 만났다.
 

학술은 거창하지 않다
 

Q. KSCY는 어떤 단체인가.
A. KSCY는 ‘한국 청소년 학술 문화의 대중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된 청소년 학술대회다. 국내외의 청소년들이 각기 다른 주제의 연구를 하고 연구논문을 발표한다. 학생들은 주로 시의성 있는 주제를 가져오는 편이다. 기억에 남는 주제로는 일베 논란, 메르스 방지책 등이 있다.
사실 KSCY는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설립한 교내동아리로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사회과학을 연구하던 교내 동아리가 추후엔 연합동아리로, 또 그 후엔 학술대회를 전문적으로 여는 동아리로 탈바꿈해 현재 인문과학‧공학‧사회과학‧자연과학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재 KSCY에는 대회를 개최하는 KSCY 조직위원회가 있고, 그 안에 사무국,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멘토가 있다. 멘토는 주로 대학교수들로 이뤄져 있고, 학생들에게 심도 깊은 학술적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퍼실리테이터는 주로 KSCY 대회 참가자 출신으로 구성돼 있으며 멘토와 참가자를 연계하고 도와주는 형, 누나들이라고 할 수 있다.

 

Q. 학술의 대중화에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학술의 대중화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겪었던 여러 순간들에서 깨달은 것이다. 21살 짧은 인생에도 전환점이 있다면 연구 활동에 대한 생각이나 방향이 바뀌었던 세 순간을 꼽고 싶다.
우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학술에 눈을 뜨게 됐다. 당시가 이소연 박사가 한국인 최초로 우주로 가던 때여서 SBS에서 이소연 박사가 한국형 우주식품을 먹는 모습을 방영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 깊어 우주식품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식품연구원 김성수 박사께 다짜고짜 메일을 보냈다. 놀랍게도 바로 답장을 주시며 50만원 상당의 우주식품을 보내주셨고, 주신 음식을 가지고 연구를 한 것이 첫 번째 탐구보고서가 된 것 같다.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이 초등학생인 내게 선뜻 도움을 줬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연구를 통해 평소 만날 수 없던 사람과 관계를 맺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신기했다. 무언가를 연구한다는 것, 모르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이 때 깨달았다. 당시의 경험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반환점은 중학생 때였다. 본래 과학고를 준비하다 조기입학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반항심이 들더라. 항상 과학 논문만 쓰다가 그 해에 인문사회계열의 논문을 써봤다. 다문화 가정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의외로 이 과정을 통해 내가 자연과학계열보단 인문사회계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진로를 바꾸게 됐다.
마지막 반환점은 고교시절 동아리를 운영하면서다. 청소년 자치법정에 대해 쓴 논문이 국제청소년학술대회 ICY(International Conference for Youth, 아래 ICY)에서 우승을 했고, 동아리가 더 커지는 계기가 됐다.
결국 연구활동을 하고 논문을 쓰다 보니 진로도 바뀌었고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다. 학술 논문이야말로 이 시대에 알맞은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됐고, 더 많은 학생들에게 학술을 알리고 싶어 청소년 학술 대중화에 뛰어든 것 같다.
 

Q. KSCY는 여러 단체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대학생의 신분으로 어떻게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A. 단순 후원 뿐 아니라 유명한 장관, 전 총리 등 대단하신 분들이 대회 기조연설을 해주시는 등 많은 도움을 주셨다. KSCY라는 단체가 잘나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학생 참가자들의 발표 사진을 보여드리고, 그 학생들의 논문을 보여드리면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다. 학생들 간의 네트워킹, 세미나와 토론 중심의 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우리대학교 연세사회혁신센터도 이와 같은 경우다. 해당 센터가 학생들에게 social innovation을 교육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의 연구의식을 도울 수 있는 캠프에 대한 제안서를 냈는데 기꺼이 받아주셨고, 올해 대회부터는 KSCY와 공동주관자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Q. 비경쟁, 학술교류 중심의 대회로서 참가대상자 전원에게 ‘우수청소년학자상’이 제공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비경쟁’을 중시하는 이유가 있나.
A. ICY에 참가했다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해당 대회는 학원가에 대비반이 생길 정도로 경쟁이 심했는데, 결국 학생들이 토론하고 연구하는 취지의 대회가 아닌 스펙 쌓기로서의 대회가 됐다. 학생들이 부모님의 차를 타고 와서 15분 발표를 하고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부모님의 차를 타고 와서 수료증을 받아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KSCY가 스펙위주의 대회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만족한 논문들에게 동일하게 ‘우수청소년학자상’을 수여하고 있다. 하나의 스펙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네트워크 및 연구 활성화에 기여하는 KSCY를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Q. 본인에게 학술이란?
A. 사실 학술 자체에 대한 논의는 교수님들이 더 잘하실 것 같다. 내게 학술은 청소년 시기의 학술이므로 청소년 학술에 대해 대답하겠다. 내게 청소년 학술이란 청소년 시기에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파헤칠 수 있는 기회이자 청소년 시기에 생기는 수많은 한계를 창의적으로 극복해나갈 수 있는 수단이다. 대회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학생들이 절대 교수, 석사생들이 쓰는 논문을 따라잡을 순 없다는 것이다. 그 나이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들, 해결 방법들을 찾는 것이 청소년 학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KSCY의 비전도 첫째는 앞서 언급한 ‘청소년 학술 대중화’지만 둘째는 ‘청소년 학자 정신의 확산’이다.

 

나의 것을 공유하다

 

Q. 지난 2014년에 창의성과 추진력을 바탕으로 KSCY를 설립해 또래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됐다며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한 것으로 안다. 또한, 지난 2013년에는 도전 골든벨 최후1인 상을 수상했는데,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A. 대한민국 인재상은 단순히 어떤 분야에서 뛰어나다고 수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성장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이어서 사실 수상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럼에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만 재능을 나누고자 하는 나의 다짐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큰 공부가 된다고 생각해왔다. 일례로 개인적으로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지만 관심이 많아 혼자 공부해 다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재능 기부를 했다. 남의 부탁으로 홈페이지를 제작하거나 디자인을 하게 될 땐 훨씬 열심히 하곤 한다. 이러한 재능 기부가 인정받아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러한 신념을 잃지 않고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외에도 해당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나와 뜻이 비슷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생긴 인적 네트워크가 KSCY의 설립 및 운영에 도움을 준 것 같다.
골든벨 수상의 경우 부상으로 떠난 미국 유학이 가장 큰 의미가 있던 것 같다. 한 달 동안 미국의 대학들을 방문하면서 세미나식 교육, 토론식 교육을 목격했고, 이와 같은 세미나식 교육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Q. KSCY를 운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참가자 100여명 정도로 예상했던 KSCY 첫 대회에 300명이 나타난 그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첫 대회가 아마 지난 2014년도 3월,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당시 대회를 개최할 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았고, ‘고등학생이 개최하는 컨퍼런스에 학생들이 많이 참가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장소 대관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던 연세대학교를 찾았는데, 대관 가능한 100석 강의실이 없다며 300석 강의실을 주더라. 빈 강의실을 보며 걱정도 되고 다짐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첫 대회 당일에 그 강의실이 꽉 찼다. 그 때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나.
A. 지금까지 대회를 개최하고, 또 재능을 나누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지금까지 만났던 멘토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후츠파 정신*을 가지고 다소 뻔뻔하고 당돌하게 도움을 요청 드린 분들이 많은데 그 때 ‘아 너 학생이잖아 가서 공부나 해’와 같이 말하며 밀어낸 분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 목표는 우선 이분들처럼 남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고, 또 도움 요청이 있을 때 내가 받았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또 학생들이 편하게 도움을 청하고 질문을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 세 가지가 있다면?
A. 핵심(Center), 상담가(Consultant), 기업가(Entrepreneur)인 것 같다.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 ‘핵심으로 다가가라’였다. 그 말 덕분에 수많은 멘토들에게 선뜻 다가갈 수 있던 것 같다.
둘째로 상담가로서 성장해나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남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성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나를 멘토로 생각하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요청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기업가가 되고 싶다. 몇 년째 대회를 열면서 내가 가장 행복할 때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만연한 문제를 기업가 정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기업가가 되고 싶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300석의 강의실은 채우기까지의 그의 노력은 가늠할 수 없다. 청소년 학술이 우리나라 교육이 추구해야할 바라고 확신하는 그의 눈빛에서 그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우리 교육에 어떻게 기여할지, 그 미래가 기대된다.

 

*후츠파 정신: 어려서부터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며, 때로는 뻔뻔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당당히 밝히는 이스라엘인 특유의 도전정신

 

글 조승원 기자 
jennyjotw@yonsei.ac.kr

사진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조승원 기자, 하은진 기자  jennyjotw@yonsei.ac.kr, so_havel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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