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함 퇴임교수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오는 5월 9일 조기 대선이 실시된다. 지난 수개월동안 헌정 사상 미증유의 대혼란을 겪은 후 치러지는 대선이라 이번만큼은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하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국민이 받은 상처와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사회를 치유하고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할 역사적 사명이 주어진 것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모두의 말로는 불행과 불명예로 점철되었다. 하야, 시해, 자살, 본인 또는 가족의 구속 그리고 탄핵에 이르기까지 임기 말이나 퇴임 후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성공국가의 신화를 이룩한 국가의 사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얄궂은 운명이다. 더욱이 지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정통성을 지닌 대통령이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국가지도자들의 오욕은 정치권력의 도취적인 마력과 함께 대통령에의 권력집중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홉스(Thomas Hobbes)가 지적한 인간의 권력에 대한 무한한 탐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권력자의 인성과 제도적 운영 간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할 개헌 논의가 활발하지만 결국 제도는 사람에 의해서 운영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제도개선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훌륭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제도를 운영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쟁점이기는 하나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유권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훌륭한 후보를 선택하는 일이다. 국민마다 이상적인 대통령상과 이해관계가 제각기 달라서 통일된 대통령모형을 제시할 수는 없어도 나름대로의 일반적 평가기준을 통해서 합리적 선택을 할 수는 있다.
한국의 투표행태에 관한 연구를 보면 대체로 지역주의 투표행위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이념, 세대, 계층에 의한 투표행태도 아울러 형성된 것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정당구성이나 투표행태가 이러한 사회균열구조를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의 경우 이것이 다원적 구조가 아닌 대립적으로 중첩돼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즉 호남, 젊은층, 진보, 저소득층 대 영남, 기성층, 보수, 부유층으로 이분화 되어 갈등과 분열이 첨예화되고 적대적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투표행태도 대체로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고 있어 진영논리의 틀에 갇혀 투표하기 일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통치와 국가관리 그리고 탄핵과정에서의 행태를 보면 당시 유권자의 과반수(51.6%)가 지지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가원수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 주요 이유는 대통령후보로서의 검증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능과 무책임, 불통과 독선을 검증과정에서 전혀 걸러내지 못한 것은 앞서 언급한 사회균열구조라는 구조적 문제와 정치권의 동원과 진영논리로 인해 검증과정이 소홀히 다뤄졌기 때문이다. 후보에 대한 객관적·이성적 검증이 실종된 것이다.
검증은 비전과 철학, 이념과 정책, 개성과 자질로 분류하여 이뤄질 수 있다. 국가목표와 미래에 대한 청사진, 세계관, 국가관, 인간관 등이 시대정신에 부합하고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가, 이러한 비전과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이념 정향과 노선은 타당한가, 제시된 정책들이 상호연관성과 구체적 현실성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한 후보자가 지니고 있는 개성적 특성과 성품 그리고 자질이 앞의 평가기준을 실현하기에 적절한가를 평가해야 한다. 비전과 정책분야는 개인마다 선호가 달라 일반화시켜서 논할 수는 없지만 리더십 자질과 관련해서는 신뢰할 만한 연구결과가 있다. 존경할 만한 리더십 덕목에 대한 설문조사를 15년(1987-2002) 동안 3회에 걸쳐 전 세계 7만5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설문 결과로 정직, 선견지명, 능력, 영감의 순으로 중요성이 일관되게 나왔고 다음으로는 지성, 공정성, 포용력 등이 지적됐다. 따라서 대통령은 우선 진실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며, 다음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 안목이 있고, 자신의 직무를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능력에 대한 평가는 과거 업적과 기록에 의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영감을 줄 정도로 열정적이고 긍정적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대통령후보를 냉철하고, 신중히 검증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다 자유롭게 검증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특히 정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전문가들의 매니페스토운동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물론, 가짜뉴스 같이 허위사실 유포 등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한다. 유권자들이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TV토론을 적어도 3회 이상으로 늘리고 앞에서 지적한 평가내용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장시간 토론이 전개돼야 할 것이다. 집중토론을 통해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성품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으며 지성과 임기응변 능력, 포용력과 영감 등을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대통령을 뽑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깨인 유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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