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병제, 그 달콤한 거짓말

박재호 (경영·12)

우리나라에서 모병제 이슈는 다양한 사회 상황을 배경으로, 간헐적이면서도 꾸준하게 논의돼 오고 있다. 잠잠하게 지속돼 오던 모병제 도입 주장은 2014년 4월 ‘윤 일병 사망 사건’과 같은 해 6월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사건들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줬고, 그동안 묵혀왔던 병영 부조리와 군대 문화에 대한 성토의 장이 열리게 됐다. 이는 현행 징병 제도에 대한 반발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됐고, 대안으로써 모병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일부 대권 주자들의 모병제 정책 제시로 인해 정치적인 배경에서 다시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모병제가 실제로 병영 문화를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와 ‘현재 대한민국의 안보 경제 문화적 상황에서 모병제 도입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먼저, 모병제는 병영 문화 개선을 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병영 문제에 대해 모병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병영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이 아니다. 이는 문제의 본질은 배제한 채로, ‘사건 사고가 많은 군대에 내 아들을 보낼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미봉책일 뿐이다. 일각에서는 모병제 하에서 병영 부조리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군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사회 인식을 고려해보면, 모병제가 실시되고 사병을 직업으로 선택하는 사람의 지원 이유는 대체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나 애국심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진심으로 원하지 않지만 병역 대신 납부해야 하는 국방세에 부담이 있는 저소득층이거나 취직 실패 등 경제적인 이유로 지원하는 비율이 더 클 것이다. 이로 인해 소득이나 학력 격차에 따른 직업 분화가 더욱 심화돼 갈등이 조장될 수 있고, 모집된 사병들은 징병제 하에서보다 더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축적된 불만은 수직적 위계구조를 따라 하급자에게 해소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모병제 하에서 군인은 평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하급자들은 조직 내 시선을 보다 의식하게 돼 오히려 지금보다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서 모병제 도입 정책은 타당하지 않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우리나라의 군인 경시 풍조 하에서, 국방력을 유지할 수 있는 현재 수준의 인원이 모집될 가능성이 낮다. 저 연령층의 감소로 인해 이미 국방력의 약화가 걱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모병제로 인한 군 규모 감축은 이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다. 또, 만약 군이 현재 규모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원이 활발할 것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예산 문제가 남아있다. 현재 사병의 월급은 인당 15~20만 원 수준이다. 모병제를 통해 사병을 직업으로 대우하려면, 시급과 추가 수당들을 보수적으로 추정해도 150만 원~200만 원 수준의 월급이 지급돼야 할 것이다. 이미 급여만으로도 열 배의 금액이 필요하며, 식사나 주거 등의 복지 수준을 현재보다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마지막으로 국가 안보의 측면에서 아직 모병제를 논할 만한 큰 상황적 개선이 없었다. 사실 상황적 배경을 제외한다면 이념적으로 모병제가 징병제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진화된 제도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북한과 ‘휴전’ 중인 상태이다. ‘휴전’이란, 단어 그대로 전쟁을 쉬고 있다는 의미이다. 평화협정을 맺거나 통일이 되기 전까지 계속 휴전 상태가 이어질 것이며, 이는 언제나 전쟁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북한이 크고 작은 무력도발을 지속해오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모병제 도입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가장 빛날 수 있는 20대에 가족과 사회를 떠나 군인으로써 청춘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참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갔다 와야지’라거나 ‘나라를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라는 생각으로 입대하기에는 2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이러한 마음을 공략하는 군 관련 정책을 심심찮게 애용해왔다. 현재 대권 후보들이 주장한 모병제 도입이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매번 정권 교체 시기가 오면 군 관련 정책은 입대를 앞둔 남성들과 그 가족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포퓰리즘 수단으로 이용돼 왔다. 모병제 도입은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 상황이 완화돼서 우리가 조금 더 평화에 가까워졌을 때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서, 모병제는 너무나도 달콤한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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